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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네고시앙, 중개업, 중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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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와인에 있어서 19세기는 커다란 도약과 성공을 거둔 시대이다. 이시대는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시작해서 1914년 1차대전 발발 까지를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은 와인산업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 준다. 혁명을 통해서 유복한 포도재배자와 유산계급들에게 포도원(토지)의 재분배가 이루어진다. 그때까지 교회가 소유한 포도원들이 사라지는 순간들이다. 재분배과정에 재산을 몰수해 국유한 포도원들은 특히나 그랑크뤼 포도원들은 파리의 재력가나 뉘(Nuits)지역의 유산계급에게 돌아가게 된다. 소유주의 이전으로 인해 주목해야 할 사항은 포도원의 팽창에 있다.19세기 까지 꼬뜨도르 지역의 총 포도원 면적은 10,500헥타르에 달했으나 1880년까지 23,000헥타르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철도의 건설로 이동과 수송의 시간과 노력이 절감되면서 자유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19세기말 비극이 찾아온다. 다름 아닌 미국에서 날라온 필록세라라는 조그마한 진딧물이 1865년 가르(Gard)란 프랑스 남부지역에 출현하게 된다. 점점 시간과 함께 프랑스 전역을 황폐화 해나간다. 이곳 부르고뉴는 1878년 처음으로 뫼르소에서 발견된다. 이듬해 부르고뉴 지역 15개마을이 전염되며 1886년에 거의 부르고뉴 전체가 이 필록세라의 피해를 입게된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포도원은 황폐화되어가고 경제도 바닥을 향해 곧두박질하게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절망에 빠져들게 된다.
20년대까지만해도 조그만한 포도재배자들은 알려지지 않았다.이들은 커다란 네고시앙들에게 자신들이 재배하고 만든와인을 판매하였다. 1차 대전의 종전으로 땅값은 하락하고 조그마한 도멘의 와인을 사는 커다란 네고시앙은 줄어들면서 하나둘씩 조그만한 도멘들은 문을 닫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에 지금의 유명한 도멘들은 문을 닫는 조그만한 도멘들을 하나하나 사들인다. 게다가 이 당시의 경제적 어려움은 이들에게 살아남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보르도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수 있는 직접판매(la vente direct)이다. 이들은 직접 손님들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결국 30년대 말 부르고뉴의 도멘 와인들이 미국에서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후 부르고뉴 와인시장은 네고시앙들과 새롭게 등장한 도멘소유주들이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와같이 생산자들의 다양화는 곧 지금의 부르고뉴 와인의 다양성과 각 크뤼의 다양성과 개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예로 50헥타르의 그랑크뤼 포도원, 끌로드 부죠는 그안에 80여명 의 다른 소유주가 있듯이 80여개의 다른 맛을 가진 끌로드 부죠가 있는 셈인데, 부르고뉴 다양성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