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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원 분화

식도원 분화
안순환, 명월관에 이어 식도원도 설립

안순환은 1921년 명월관이라는 옥호를 '장춘관'에 팔고 (돈의동 명월관이 된다), 이후 한성은행, 지금의 태평로1가 인근에 '식도원'을 차린다.
1920년대는 따라서 돈의동 명월관과 안순환의 식도원 사이의 경쟁이 치열했다.
식도원은 투자자본이 수십만원을 넘으며 일 년의 매상도 명월관에 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면적도 수백평에 이르고 점원도 5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식도원의 자랑은 음식과 건물의 아름다움에도 있지만 내외국인 손님들이 자주 찾는데 있었다. 외국에서 오는 손님들은 조선음식의 정통함을 맛보기 위해서 식도원을 찾았다고 한다. 게다가 방석, 병풍의 배치와 거문고, 장고를 치는 기생들의 실력에 몇 시간씩 보내고 갔다고 전해진다.

1932 조선 최고의 요릿집 명월관과 식도원의 비교표
구분 명월관 식도원 비고
주소 경성부 돈의동 남대문통 1정목
경영인 리종구 정원익 안순환이 유력 출자자
투자액 30만원 수십만원 측정
토지평수 1,200평 수백평 당시 평당 백원, 토지값 12만원
건평 600평 백여평
영업이익 년평균 20만원 좌동
종업원수 120명 50명 숙수, 인력거꾼 뽀이 포함
개업일시 1920년 1922년 1920년 안순환이 홍상주식회사 매각, 이종구 3만원에 상호와 기구를 인수
주인약력 대한 제국 외국어 학교 졸업, 주식취인소 잡화상 운영, 원적 서울, 부친 이규진, 육군 정위, 군관학교 교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