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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아침의 다향 (茶香)

경칩이 지났는데도 흐린 탓인지 시계가 7시를 가리키는데도 창밖은 아직도 밤의 색이 남아 있다. 일찌감치 잠에서 깬 김성수는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한기에 괜히 몸이 뻐근한데 눈치 빠른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찻잔을 내려놓고 간다. 소리 없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김성수는 잠시나마 평화로운 기분을 느꼈다.

1924년 1월, 이광수 의 사설 ‘민족적 경륜’이 나간 이후로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조국이면서도 조국이 아닌 지금의 시국을 생각하면 일제 치하이후 언제 한번이라도 바람 잘 날이 있었던가 싶기도 해 쓴웃음이 입가에 떠오른다.

작년 가을, 김성수는 북경에 계신 안창호 선생을 만나 뵙고 오라 이광수에게 청을 넣었었다. 이광수는 “지금은 나아갈 때가 아니고, 나아갈 준비를 할 때”라는 말로 선생의 뜻을 전해줬다. 한때 무력 행동을 역설한 적도 있었던 안선생 이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산업개발과 교육진흥에 매진할 것을 주장하는 쪽이었다. 결국 선생을 뵙고 온 이광수의 사설 속 요지는 일제 치하의 조선 땅에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저항하려면 일제 통치의 틀 안에서 합법적인 정치운동이라는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지금까지 해온 독립운동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필자 이광수의 개인 의견을 넘어 동아일보 편집진의 현실 인식 또는 정치 노선로 보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김성수는 이 일이 불러일으킬 파장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마루야마 경무국장의 대처는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조용히 빠르게 시작되었다. 마루야마가 일본에서 박춘금(朴春琴)을 불러들인 것이다.

학교 한번 다닌 적 없지만 어릴 적부터 비상한 머리와 주먹에는 자신이 있었던 박춘금. 그러나 가진 게 없으니 큰 포부를 갖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도 점원이며 갱부니, 노무자니 밑바닥 인 생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박춘금이 아니었다. 깡패면 어떻고 도둑놈이면 어떠랴 세상에서 특히 조선 에서 자기를 무시해오던 배웠네, 출신이 어쩌네 하는 것들에게 반드시 본때를 보여주리라 이를 갈아온 그였다. 그런 그에게도 기회가 왔고 더 이상 하류, 상것 무뢰배 박춘금이 아니게 해준 것이 바로 일본이었다. 뭐라 해도 좋고 돌을 던지고 침을 뱉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 살자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다. 일본에서의 폭력배 생활동안 그가 배운 신념이었다. 그런 그가 마루야마의 연락을 받고 다시 조선에 발을 들였을 때는 그런 개선장군이 또 있었을까. 귀국한 박춘금은 마루야마의 지시대로 그날부터 동아일보사를 제집 드나들듯이 휘젓고 다녔다.

보무도 당당하게 경무국장 승용차로 나타난 박춘금에게 거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자격지심이 더해진 탓인지 두드리고 부시고 휘저어놓고 온갖 행패란 행패는 다 부려댔다. 잘나신 배운 것들이 자기 발아래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일의 내용보다는 통쾌한 마음에 필요이상의 억지도 점점 강도를 올리게 되었다.

눈을 감은 채 이런 저런 생각이 골몰하다보니 결국 적당한 차의 온도를 놓치고 말았다. 김성수는 식은 찻잔을 쓰게 들이키고는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천도교 최린 선생의 가옥에 모인 연정회(硏政會) 회원들은 박춘금의 이야기를 듣고 동조(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원 중 하나가 마루야마 경무국장이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이라는 친일단체 연합회를 결성하도록 배후 조종했다는 정보를 가져왔다. 송사장이 다시 작은 눈을 치뜨고 언성을 높였다.

“절대 안 될 일이야. 내일이라도 당장 신문에 사실을 알려야하네.”

말이 끝나자 모두들 김성수를 바라보았고, 김성수는 당장이라도 원고를 보낼 것을 약속했다.

다음 날, 동아일보 조간신문이 집집마다 뿌려졌고, 송사장은 오후께 김성수를 찾아 온다. 손엔 김성수의 사설 ‘각파유지연맹의 행태, 총독부의 친일집단 조장책이다.’가 실린 신문이 들려져 있었다. 이미 한 잔 걸친 송사장의 걸음걸이가 평소와 다르다.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송사장에게 김성수는 못내 웃어 보인다.

“내 자네를 모시러 왔네. 오늘 자네가 쓴 글 때문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풍재가 우릴 보자고 하지 않는가.”

이풍재(李?載)는 각파유지연맹의 단원이다. 그런 이가 오늘 이 둘을 보자고 하는 이유는 분명 사설과 동떨어진 일은 아닐 것임을 김성수는 직감했다. 갈색 톤의 양복 정장을 입은 송사장과 희다 못해 옥빛이 나는 두루마기를 입은 김성수는 그렇게 차에 올라 전 명월관(사진6) 사장 안순환(사진7)이 경영하는 식도원(사진8)을 향했다. 술이 좀 되어 얼굴이 발그레해진 송사장도, 차에 올라 옷섶을 매만지는 김성수도, 그 날이 일생 일대의 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식도원에 도착하자 여러 환영 인사를 받으며 둘은 조용한 구석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차려진 술상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둘은 이풍재를 기다렸다. 입이 쓴 송사장이 전 몇 점을 집어먹는 동안 김성수는 또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받아 놓은 술잔만 찰랑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흔들리는 술잔을 잡아 입에 대려던 그 순간 천둥 우레 소리처럼 우당탕탕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곧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한 손에 단 검을 든 박춘금이 거기에 있었다. 박춘금의 뒤에 있던 일당이 그 둘을 떼어 놓고 포박하기 시작했다. 완강히 거부하는 송사장과는 달리 잘못한 것이 없으니 태연하다는 식의 김성수를 보자 박춘금은 더욱 흥분하여 상을 엎기까지 했다.

포박을 하고 조용해진 틈을 타, 박춘금이 단검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에 칼자국을 내기 시작했다. 칼을 어찌나 잘 갈아놓았던지 종이는 소리도 없이 잘려져 바닥에 흩뿌려졌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겠지?”

박춘금은 일당들에게 둘을 맡기고 그는 새 상을 받아 조용히 혼자 술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박당한 채 3시간. 김성수와 송사장에게는 마치 3년과도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물론 그 사이 그들에게는 거침없는 발길질과 오물이 뿌려졌다. 그리고 다시 김성수를 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송사장이 박춘금을 만류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김성수를 위협하는 박춘금> <김성수를 위협하는 박춘금>

“그렇다면 위로금 차원으로 3천원.”
“역시 돈이냐? 네가 팔아먹은 양심이 과연 몇만 몇억원이 될 것인지 내 지켜볼 것이다.”
“미련한 놈, 너 같은 글쟁이 샌님이 뭘 알아. 난 세계 평화를 위해 나 뿐 아니라 조국도 포기할 수 있다.”

세계 평화란 말에 김성수는 그 와중에도 실소가 터지고 만다. 그 위로 소나기 같은 매질 세례가 더해진 것은 당연했다. 박춘금이 이를 듣고 화를 참지 못해 김성수에게 달려가 단검을 뽑아 들었다. 날이 선 검이 김성수의 목을 향해 내리 꽃히기 전, 바로 그 때 박춘금을 뒤에서 끌어안는 이풍재. 마치 자신이 꾸민 일이 아니었다는 듯, 천연덕스레 박춘금을 말리며 칼을 빼앗아 들었다. 그러나 박춘금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김성수의 배를 수차례 가격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이풍재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송사장은 ‘주의 주장은 반대하나 인신공격한 것은 온당하지 못한 줄로 증(證)함’이라는 글을 적고 자비 3천원을 내어 준다는 김성수의 약속을 받고서야 식도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김성수는 총독부로 마루야마 경무국장을 찾아갔다. 2월 초부터 박춘금 일파가 저질러온 난동과 전날의 행패를 알려 준 뒤 김성수는 보따리에 싸온 3000원을 내놓았다.

“내가 3000원을 주겠다고 한 것은 그 자의 육혈포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그 자를 곱게 보고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마루야마 상의 체면을 생각한 것이니, 이 돈을 그들에게 줄 때 경무국장께서 입회하시거나 직접 전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당황한 마루야마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박춘금은 종적을 감췄다.

4월9일 민간유지 40여 명이 총독부의 비호 아래 벌어진 이 ‘식도원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벌인 집회는 강제 해산됐고 관련기사를 게재한 신문도 모두 압수되고 언론탄압은 교묘한 형태로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박춘금 사건은 총독부의 언론탄압 실상을 일반에게 알리는 효과를 가져왔으나 파장은 의외의 곳으로 번져나갔다.
민족 대변지를 자처하는 동아일보의 사장이 총독부 끄나풀인 폭력배에게 사과를 하고, 그 내용을 친필로 써준 것은 동아일보의 품위를 떨어뜨린 일이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김성수는 서재에 앉아 잠시 물끄러미 찻잔의 둥그런 테를 따라 바라본다. 무엇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는 때가 살다보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생을 그렇게 살게 되리라는 절망은 해본 일이 없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도 어찌하다보면 어그러지기도 하고 부지불식간에 한 일도 때로 큰 일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리라.

김성수는 그렇게 어둑신한 날의 아침이면 늘 이렇게 한 잔의 차와 함께 마음을 다잡아 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는 구름에 잠시 해가 가린 것뿐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 구름을 시원스레 날려줄 한 점 서풍이 불어올 날이 머지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