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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와 명월관 편

내용요약 - 곧은 심지 하나 세상의 창을 밝히고···

1.


1975년 8월 17일 오후, 여느 해처럼 폭염이 내려쬐고 있었다. 이날 동아일보 석간을 장식하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항일 독립투사이며 전 국회의원인 장준하씨가 17일 오후 2시반경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 3리 약사봉에 등산 갔다가 하산 길에 벼랑에서 실족, 추락 별세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날은 장준하가 광복군의 OSS대원으로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을 위해 이범석, 김준엽 등과 여의도 공항에 도착한 지 만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저녁 늦은 시각에 찾아간 면목동 장준하의 전셋집에는 조문객들이 빈약한 주머니를 털어 소주를 사오고 저녁을 거른 사람들은 라면을 사다가 끓였다. 상가에서는 조문객들에게 저녁을 대접할 양식도, 변변한 술안주도 없었다. 세상에는 높고 낮은 초상, 빈자와 부자의 초상이 많지만, 조문객들이 추렴해서 술사고 라면을 사와서 끓이는 ‘저명인사’의 초상집은 그 때 장준하의 집 말고 또 있었단 말을 듣지 못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비좁안 안방에 앉아있는 조문객들을 사진 속 장준하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2.


환하게 웃고 있는 장준하, 멀리서 열일곱의 앳된 아내가 수줍은 듯이 서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지만 좀처럼 다가가 지지를 않는다. 힘껏 팔을 휘저으며 손짓을 해보니 아내도 그제서야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준하가 손을 내밀자 아내는 조용히 작은 손을 얹어 놓는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일까. 준하는 새삼 느끼는 이 작은 온기에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이 느꼈다. 손을 잡고 함께 걷는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아내는 사라지고 풀밭 한가운데다. 이리저리 돌아봐도 온통 어두운 밤이다.

보름달이 뜬 밤. 그러나 보름달을 둘러싼 구름에 가린 달이 좀처럼 머리를 내밀지 않아 뿌옇고 어두운 그런 밤이다. 수수밭, 붉은 수수밭 사이에 누군가 머리를 내민다. 다시 사라지고 수숫대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다시 수숫대가 일렁이더니 빠른 발걸음으로 준하를 향해 누군가 달려온다. 복면을 쓴 그는 준하를 놓치고, 준하는 다시 달리고. 그러나 준하 앞에 또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준하의 아내. 준하에게 빨리 다가오라며 손짓하자 준하가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이내 사라지는 그녀. 준하의 뒤에서 활을 겨누는 남자. 활시위가 팅 하고 당겨진 순간 번쩍 눈을 떴다.

꿈이다. 꿈이었구나. 준하는 식은땀을 닦고 몸을 일으킨다.

1945년 12월의 아침,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다. 준하는 머리맡의 자리끼 한 사발을 마시고 다시 주변을 살핀다.

어제 준하는 만취했었다. 한 성냥공장의 사장이 임정요원들을 초청해 만든 술자리에서 성냥공장 사장이 준하에게 계속 술을 권하며 아양을 떨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최근 공장 문을 열고 임정 요원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 정확한 내역은 알지 못했지만 장준하는 마치 덜 익은 고기를 입에 넣은 듯 불쾌한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연거푸 술잔을 비워댔고, 취한 채 어찌 온지도 모르게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임정요원들의 환영파티는 연일 계속되었고 그러던 차에 광복군의 환영회를 갖는다고 연락을 받은 준하는 유명한 요정 명월관에 들어섰다. 과연 문을 들어서자 당대 최고라 할만한 명월관의 자태가 버티고 있었다. 어지러운 나라의 형세에 비한다면 이곳은 마치 다른 세상과 다른 시간이 지배하는 듯 또 다른 차원의 장소처럼 느껴졌다. 처마 끝에 달려 있는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명월관 내를 흐르고 있었다.

잠시 딴 세상에 온 듯 정취에 젖어들려는 차에 조금씩 왁자한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이런 감상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예약된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국내지대 간부와의 술자리에서 미간을 찌푸리는 장준하> <국내지대 간부와의 술자리에서 미간을 찌푸리는 장준하>

방에 들어서자 이미 국내지대 간부 30여명과 그에 각기 짝을 맞춰놓은 듯한 수의 기녀들이 자리 잡고 술잔이 돌고 한바탕 노래와 춤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준하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돌아갈 구실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준하가 노래 부를 차례가 되었다. 기녀들과 간부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준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가 중국에서 광복군 기치 아래 모인 것은, 이런 환영을 받는 광복군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기쁘다기보다는 괴로운 자리일 것입니다.”

준하는 군가로 노래를 대신했다.

<군가를 부르는 장준하> <군가를 부르는 장준하>

“요동 만주 넓은 들을 쳐서 파하고 청천강수 수병 백만 몰살하옵신~.”
그리고 몸이 아프다고 핑계대고 서둘러 요정을 빠져 나왔다.

아무 방향으로나 발 닿는 대로 한참을 걸었다. 서늘한 밤공기에 심호흡을 해본다. 눈을 들자 멀리 어두운 산그림자가 그런 그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육중하게 내리눌리는 대기 속에 유독 솟아오른 산의 의지가 가슴에 밀물처럼 몰려 왔다. 준하는 산에게 묻는다.

‘왜, 나는 회의하는가? 조국에 돌아오지 않았는가?’
‘임정의 각료가 전부 입국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산은 말이 없고, 준하는 다시 묻는다.

‘우리들의 의지가 환영으로 대접받기 위한 것이었던가?’

그제야 준하는 비로소 마음속을 뒤덮고 있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듯 회의의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후, 서울운동장에서 ‘임시정부 개선환영회’가 열렸다. 그러나 준하는 무력한 임시정부, 무익한 논쟁만 계속되는 국무회의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답답한 마음에 준하는 사무실을 지키겠다며 홀로 남았다. 저녁 무렵 사무실의 문을 잠그고 준하는 고향후배 최기일을 찾아 나섰다.

준하의 2년 후배인 최기일은 현재 돈암장)에서 이승만 박사를 모시고 있었다. 고향 선후배가 해방공간의 민족지도자인 김구와 이승만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준하는 최기일의 주선으로 가끔 돈암장에서 이승만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기도 하면서, 두 지도자가 협력하여 통일민주국가를 건설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 최기일과 의기투합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풋내기’에 불과한 준하나 최기일에게 끼어들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구나 이승만이나 자신들이 추구하는 노선과 추종세력이 있었고, 이념과 이해를 달리하는 수많은 정파, 여기에 전승국 미국이 설치한 미군정이 해방정국을 요리하는 칼자루를 쥐고 흔들었다.

<이승만을 만나는 장준하> <이승만을 만나는 장준하>

어지러운 시국 탓에 회의와 좌절감에 빠져들고 있을 무렵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동생 명하와 익하(영하?)가 찾아오고 다음에 장모가 아내 김희숙을 데리고 어렵게 넘어왔다. 17세 소녀같던 아내가 19세의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온 것이다. 준하는 혹시나 꿈이 아닌가 부여잡은 손을 잡고 또 잡았다. 아무 보장도 없는 미래라 할지라도 함께 있다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준하는 어지러운 마음을 털기로 했다.

비록 ‘해방조국’은 이미 두 쪽으로 나뉘어 외세의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이럴때 일수록 김구 주석이나 요인들의 심정을 잘 헤아려야 한다. 마음속으로 준하는 민족통일국가 건설의 꿈을 이뤄야 한다. 아내의 손을 잡은 준하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도 다잡고 있었다.


3.


1975년 8월 17일, 오전 11시 장준하는 호림산악회 김용덕과 회원들 40여명이 함께 포천의 약사봉 계곡에 도착했다. 계곡의 넓적바위에서 모두들 점심식사 준비를 위해 배낭을 풀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장준하는 문득 조용한 산행도 좋을 듯 해 배낭을 둘러매고 일어선다.

“나 산에나 좀 올라갔다 오겠소”

장준하는 김용덕에게 그리 말하고 발길을 옮겼다. 무더운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나무들은 여전히 선선한 기운들을 안고 있었다. 한발씩 발걸음을 떼니 나무들이 서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정상에 도착하니 문득 30년전의 일이 떠올랐다. 한때 젊은 장준하의 침묵의 스승이며 벗이었던 산에게 준하는 자신의 회의를 묻고 또 물었었다. 산은 침묵했고 준하는 침묵 속에서 한줄기 해답을 들었었다. 다시금 산에게 묻고자 하니 무슨 소원 비는 아이처럼 무슨 질문을 하는 것이 좋을까 망설여지기까지 한다. 잠시 생각하다 준하는 그만 허허 웃고 만다. 그러니 산도 허허-하고 웃어 주는 듯 했다. 왠지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