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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손기정 편

내용요약 - 어느 노교수의 회상

1.


“내가 무용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다 최승희 선생 때문이었습니다. 일제 말 1943년 전남 광주 극장에서 최승희 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세계적인 무희’ 어쩌구 하고 쓰여진 최승희 공연 포스터를 봤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무희가 있나?’하면서 가서 봤죠. 그때 최승희가 추던 보살품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걸리면 영락없는 정학감이었지요. 그날 최승희 공연을 본 후로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2002년, 평양 애국열사릉에 함승희의 유해가 안치되면서 남한에서는 다시 최승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잡지사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최승희 연구에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왔다는 노교수와의 인터뷰를 청했고 그에게 들었던 첫마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무용은 그저 여자들만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최승희 공연은 그동안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지요. 우리 춤에 관심을 갖게 되었음은 물론 직접 무용을 배우겠다는 생각까지 갖게 한 것입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상경해 오로지 모집요강에 강사가 최승희라는 말만 보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끝내 최승희는 만날 수가 없었지요. 나중에 안 일인데 그해에 최승희가 월북했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었죠.”

노교수는 당시 상사병 앓았을 옛 청춘을 되새기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일제시대 ‘민족의 꽃’으로서 억눌린 심정을 해소해주는 마음속의 스타라고 했다. 최승희의 공연때면 그것이 일본이라도 마치 조선인양 우리말로 목청 돋워 떠들곤 했다며 당시 민족의 우상 셋을 꼽았다. 평양축구, 최승희, 그리고 손기정이라고······


2.


“선생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최승희는 얇은 코트를 걸치고 머리를 매만지며 거울을 본 후 집을 나섰다. 그녀가 향한 곳은 명월관. 오늘 손기정의 세계 재패를 축하하는 자리에 그녀도 초대되었다. 여운형과 송진우 등 민족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승희는 평소보다 매우 침착하고 조심스레 행동하는 듯 보였다.

그녀가 착석하고 시간에 늦은 두어 명이 모두 자리에 앉자 연회는 시작되었다. 몇몇 지도자의 인사말이 있는 동안 최승희는 손기정을 찾아보았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지라 사진과 닮은 그를 찬찬히 찾아보았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인 만큼 이 자리를 만든 여운형의 주변에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앉아있었다. 다소 부산스럽고 말이 많은 송진우는 손기정에게 귓속말을 하기도 했지만 손기정은 나이와는 다르게 더욱 점잖은 듯 미소로만 답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몇 지도자들의 인사말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자리를 만든 여운형이 손기정에게 박수를 보내자며 손기정 만세를 외치자, 손기정은 다소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박수 때문인지 벌떡 일어나 좌중을 진정시키는 듯한 손짓을 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저는 여러분께 길게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운동하는 놈이 무슨 말주변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뜀박질만큼은 제가 여기서 일등이겠지요?”

자리를 메운 이들은 그의 털털한 모습에 다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의 육체는 의지와 정신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는 불가능할 것 같던 그 길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던 그 시간을 단축시켰습니다. 신기록을 세웠다지만 이게 끝이 아니지요. 여러분들도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맞서십시오. 그 날이 좀 더 빨리 오도록 열심히 달려주십시오. 저 역시 계속 달릴 것입니다.”

큰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는 단호하게 말하던 방금과는 다르게 수줍은 미소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 때 여운형이 다시 입을 뗀다.

“오늘 이 자리에 소개할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우리 손군처럼 우리 조선을 빛내고 있는 애국자지요. 최승희양이 저기 앉아계십니다.”

우익 정계의 거두 송진우와 좌파 정치인의 대표자인 여운형은 모두 최승희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최승희를 소개하는 순서가 되자 최승희는 조용히 목례했다. 몇몇이 일어나 인사말이라도 하라는 부추김에 그녀도 조용히 일어선다.

“저는 춤이 좋아 춤을 추는 것뿐인데 애국자라 하시면 여러분께 너무 부끄럽습니다. 여러분이 있어 저는 더욱 마음 편히 춤을 출 수 있어 감사드릴 뿐입니다. 손기정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열심히 춤을 추겠습니다. 조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역시 큰 박수가 나왔고 그녀의 외모에 대한 칭찬도 쏟아져나왔다.

손기정은 명월관에서 처음으로 최승희를 만났다. 얼핏 보아도 큰 키에 늘씬한 몸매하며, 세련된 모습은 도저히 조선여인이라 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민족의 두 영웅을 만나 참석자들의 반가운 인사와 들뜬 찬사가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함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손기정은 당당히 인사를 건네는 최승희의 말투와 몸짓에서 춤을 추는 사람은 이렇구나. 세계적인 무용수란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감사합니다.”
“3년 전, 경성공회당에서 봤습니다.”
“제 무용을 보러오셨나요?”
“전 예술은 잘 모릅니다. 친구 녀석이 하도 졸라 가보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반도의 무희라는 영화도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예술을 모르신다더니? 관심이 많으시네요.”
“춤을 계속 추세요. 춤추는 모습이 더 좋아 보이십니다.”

좌중이 한참 무르익고 저마다 찬사를 쏟아내고 있는데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귀에 거슬리는 몇 마디가 섞여들어 온다. ‘친일파’어쩌고 하는 등의 소리였다.

“황국위문공연이다 뭐다 해서 벌은 돈은 다 갖다 바치고, 일본에서 계속 활동해온 최승희가 친일이라는데 뭐가 잘못된 말이야! 뭐 입이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

갑자기 축하의 자리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식어버렸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인사는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계속 술을 부어대며 중얼거리고 있었다.최승희는 언짢기도 하고 괜히 분위기를 망쳤다 싶어 자리를 뜨려하는데, 조용히 미소짓고 있던 손기정이 폭발하듯이 한마디 내뱉는다.

“그렇다면 내가 그때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뛴 것도 친일행위로 볼 것이오?”


3.


노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손기정 옹을 생전에 자주 뵈었었습니다. 그때도 그 분은 최승희의 친일파 논란이 나올 때면 늘 흥분하시며 자신도 일장기를 달고 뛰었는데 그렇다면 자신도 친일로 볼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곤 하셨지요.”

그가 조용히 지갑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 한장을 꺼내 보인다. 최승희와 손기정이 함께 명월관 모임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걸 보니 난 그 속에서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최승희와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는 손기정의 모습 속에서 마치 살아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보는 것 같아 그립고 또 그리워졌다.

<손기정과 최승희> <손기정과 최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