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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옥 편

내용요약 - 위험천만한 ‘문 밖 놀이’

명월관에 나가던 남도출신 기생 현산옥의 집, 밤이 늦었는데도 현산옥의 방에는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림자는 단 두 개.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감사는 되었고, 부디 살아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뜻 보아 이십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오성륜이다. 행색도 초라하고 얼굴이 많이 상해 있다.

“몸을 추스르세요. 어딜 가던 몸이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단아하고 청초한 모습의 기생 현산옥이다.

<창문에 비치는 현산옥과 오성륜의 그림자> <창문에 비치는 현산옥과 오성륜의 그림자>

“얼마나 머물 계획이십니까.”
“일주일 후에 독일로 떠날 겁니다.”

몇 마디 건네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를 맴도는 공기 속에는 무언가 결연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오성륜은 현산옥의 방을 나와 현산옥의 어머니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현산옥은 얼마 전 의열단의 뒤를 봐주는 한 선배 기생에게 부탁을 받았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현산옥에게 오성륜을 숨겨달라는 것이었고, 현산옥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허나 그녀가 걱정되는 것은 오성륜의 상황이었다. 그는 상해에서 의열단에 가입하고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저격했으나 실패하여 체포되었다가 취조를 받던 중 조선으로 탈출한 것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명월관에서 연락이 오면 집을 나서던 현산옥은 요즘 들어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새벽 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집 주변을 살피는 것이 일이 되었다. 혹시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누가 밀고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에 그녀는 평소 즐기지도 않는 아침 산보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렇게 아침 나절 주변을 돌아보고 난 후, 그녀는 밥상을 차려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간다. 둘이 먹던 밥상이라 비좁긴 해도 오성륜은 넉살좋게 농도 던지며 유쾌한 아침식사를 만든다.

<현산옥과 그녀의 어머니, 오성륜이 식사하는 모습> <현산옥과 그녀의 어머니, 오성륜이 식사하는 모습>

“오선생님, 목소리를 좀 낮추셔야겠습니다.”

현산옥의 말에 오성륜은 빙그레 웃어 보인다. 숨어 지내며 노심초사해야 할 그가 생각 없이 여유로운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현산옥과 그의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안심시키고자 하는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명월관에서 연락이 오고 현산옥은 인력거를 타고 명월관을 향한다. 요 며칠 현산옥은 노래도 춤도 잘 되지 않아 동료 기생들에게까지 몸이 안 좋은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걱정을 듣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갓 스물을 넘긴 기생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으니 그 마음고생이 오죽할까. 쉴 틈이 생기기라도 하면 이내 집에 숨어 지내는 오성륜을 떠올리곤 심장이 쿵쾅쿵쾅 두방망이질을 치는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는 현산옥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굴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현산옥은 명월관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인력거를 탄다. 인력거꾼에게 돈을 주고 내리자 인력거꾼이 거스름돈을 준다. 동전 몇 개가 딸랑 손으로 떨어지는데 그 속엔 새끼 손가락만한 문서가 하나 들어있다. 현산옥은 얼른 지갑 속에 동전과 그 문서를 넣는다.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얼른 집으로 들어간다.

<인력거꾼에게 쪽지를 받는 현산옥> <인력거꾼에게 쪽지를 받는 현산옥>

그녀는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니 오성륜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를 맞이한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이런 종이 문서를 전달해주셔야 합니다.”

그것은 오성륜의 지금 상황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문서이기에 현산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종이를 펴 본 오성륜은 그들만의 암호를 이해하고는 다시 현산옥을 바라본다.

“감사합니다. 누구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지요?”
“네.”
“오늘은 무슨 노래를 부르셨습니까?”

심각한 표정의 현산옥에게 오성륜이 웃으며 묻는다. 그러자 한참 긴장해있던 현산옥은 그제야 표정이 좀 풀어진다. 헛헛한 마음을 놓고 둘은 그만 웃고 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오성륜이 조선을 뜨기 하루 전날이 되었다. 그날도 변함없이 현산옥은 명월관에서 퇴근하는 길, 인력거를 탔다. 삯을 치루자 인력거꾼이 잔돈을 건넨다. 그 속엔 며칠 전 처럼 작은 종이 문서가 들어있었다. 이 때였다. 어디선가 불어온 돌풍에 그 작은 종이문서가 날아가 몇 바퀴 공중회전을 하고는 땅에 떨어진다. 현산옥이 깜짝 놀라 눈이 토끼처럼 커져서는 그 종이문서를 얼른 주워 손지갑에 넣기 바빴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는 산옥. 그러나 멀리서 이를 보는 눈빛이 있었다.

집으로 급히 들어온 현산옥은 마당에서 기척을 낸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라였다.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두 명의 형사였다. 숨이 멎을 것 같은 현산옥, 그 때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뭐냐, 도대체?”
“아니, 누구시오?”
“그 쪽지를 내놓아 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형사 중 하나가 밖으로 뛰어 나가고 하나는 현산옥이 꼭 움켜쥔 지갑을 빼앗아 종이 문서를 꺼낸다.

“이게 무어냔 말이야?”

종이문서를 편 형사. 그러나 종이엔 마치 아이가 낙서해 놓은 듯한 글자만 있고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현산옥은 기지를 발휘했다.

“그냥 문밖놀이에 나오라는 기별 쪽지요.”

이 때 방금 뛰어나갔던 형사 하나가 아까 그 인력거꾼을 잡아왔다.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오는 인력거꾼을 보자 현산옥은 더욱 기가 막혔다.

“이 작자에게 물어 답이 같으면 살 것이지만 혹 다르면 둘 다 황천길로 갈 줄 알아.”

인력거꾼은 산옥을 바라보며 우물쭈물 했다.

“어서 말 해.”
“그저 저 기생 아가씨와 문밖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형사. 그러나 그는 이를 쉽게 믿지 않았다. 산옥은 심장을 쓸어내리며 형사에게 대꾸한다.

“거 보십시오, 우린 내통하는 사이라 그렇소. 기생이 사내와 내통하는 것이 뭐 그리 큰 일이라도 된단 말이오? 어서 나가시오.”

형사는 그렇게 인력거꾼의 덜미를 놓고는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형사 하나가 무작정 현산옥 어머니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현산옥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문을 벌컥 열자 현산옥의 어머니가 속옷 바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란 형사는 다시 문을 닫았다. 들키는 줄로만 알았던 현산옥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대들 듯이 쏘아붙인다.

<현산옥의 어머니 방을 덮친 일본 순사들> <현산옥의 어머니 방을 덮친 일본 순사들>

“이게 무슨 행패요. 나이가 들었지만 우리 어미도 여자이거늘, 지금 부녀자를 욕보이겠다는 것이오?”

형사는 당황해 고개를 숙이고는 대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 인력거꾼도 눈치를 보다 자리를 떴다. 현산옥은 그렇게 혼자 남자 바닥에 풀썩 주저 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없어진 모양이다.

그 때 어머니 방 문이 열리고 어머니 잠자리 옆에 이불 더미가 보인다. 어머니가 이불을 젖히자 오성륜의 얼굴이 보인다. 현산옥은 반가운 눈물인지 놀라서 흘리는 억울한 눈물인지 눈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그렇게 마당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현산옥을 오성륜이 일으켜 방안으로 들이고는 또 평소처럼 넉살 좋게 웃어 보인다.

“간이 콩알 만해 졌지요? 어디 한 번 봅시다. 강낭콩만한가 완두콩 만한가? 하하하.”

오성륜은 쪽지를 전해 받고 그 다음날 의열단 청년들과 함께 독일로 떠났다. 그 날의 일은 오성륜에게도 그리고 현산옥에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으리라. 그리고 당시 긴박하게 돌아가는 조선의 독립을 바랐던 젊은 두 남녀의 스릴 넘쳤던 에피소드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