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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관 기생의 연애 사건 편

내용요약 -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한들.

영업 준비가 분주한 명월관의 어느 날이었다. 주인 김안기는 지배인 소림덕치에게 오늘의 예약 명부와 식자재 납품 등에 대해 보고를 받는다. 중요한 보고가 끝나자 김안기는 몇 가지 메모를 하고 나서 입을 뗀다.

“요즘 동관에선 별 일이 없고?”
“예. 조용합니다.”
“그 날 이후, 일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계집이라도 있나 해서 그렇지.”
“제가 다 입을 봉해 놨습죠.”
“자네가 신경 좀 써 주게.”

소림덕치가 나가자 김안기는 아끼는 난에 물을 주고는 잎을 마른 걸레로 조심스레 닦아 낸다. 그렇게 평온한 명월관이었다.

이 때 갑자기 마당에서부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곧 김안기의 안채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사복을 입은 경관들이 십 수명 쏟아져 들어와 김안기를 포박했다. 김안기가 놀라 소림덕치를 외쳐 불렀다. 그러나 이미 소림덕치 역시 수갑을 찬 채 김안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엔 웨이터 안거복도 함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경찰에게 연행되어 가는 소림덕치와 안거복> <경찰에게 연행되어 가는 소림덕치와 안거복>

재작년 3월경이었다. 봄이 되자 명월관 출입 기생들의 치마는 더욱 화려해지고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버드나무처럼 그들의 마음도 싱숭생숭 설레었다. 동관에 기거하는 기생들 십 수명이 마당에 나와 햇볕을 쬐는 오후였다. 그 중 유독 마음이 들뜬 명월이란 기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몇 명의 기생들은 그녀 앞에 나란히 앉아 귀를 기울이며 연신 이것저것 질문을 해댄다.

“그래서 뭐라던가요?”
“하늘의 별이 내 눈에 박힌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
“어머, 낯간지러워라.”
“그렇지? 그래도 어쩌겠어. 날 보려구 매일 찾아오잖니. 안 만나 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회계면 돈도 꽤 벌겠지요?”
“그런가봐. 식당 하나를 낸다는 소문도 있고.”
“어머나, 그럼 언니가 레스토랑 마담이 되는 거예요?”
“그런가? 하하하.”

최근 명월관 신점에서 회계로 근무하는 한욱동이 매일 밤 명월을 찾아왔다. 그리고 구애하기를 십수일, 얼굴도 잘 생기고 돈도 꽤 있는 그에게 명월도 마음이 풀어져 며칠간 데이트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매번 새벽녘에 귀가하여 통금 시간을 어길 뿐 아니라 손님을 봐야 하는 저녁 시간대에도 자리를 비우기 일쑤라 최근 소림덕치에게 잔소리를 들어 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곧 한옥동에게 시집 가 부잣집 안주인이 될 생각에 그녀는 명월관 일도 뒷전이다.
이 때 소림덕치가 들어오자 기생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일렬한다.

“오늘은 중요한 예약 손님이 있으니 각별히 신경쓰고...”

매일 듣는 이야기라 기생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서비스에 충실하고 품위 유지에 힘쓰라는 내용이다. 말을 마치며 소림덕치는 명월을 부른다. 명월이 다가가자 소림덕치는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쏘아 부친다.

<질책하는 지배인과 무시하는 명월> <질책하는 지배인과 무시하는 명월>

“한 번만 더 외박하면, 쫓겨날 줄 알아.”

소림덕치는 쫓겨난다는 소리에 명월이 움찔할 줄 알았으나 명월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새침하게 대답하고는 자리를 뜬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날 밤이었다. 역시나 통금 시간이 훌쩍 지나서까지 한욱동과 데이트를 즐기고 새벽녘에나 동관 숙소로 들어오는 명월이 소림덕치를 딱 만난 것이다. 그 옆엔 김안기도 서있었다.

“어머, 사장님까지 왠 일이세요?”
“오늘 큰 방에도 들어가지 않았다지?”
“아,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무엇보다 중요한 손님들이라고 아침에 지배인이 이야기 했을텐데.”

그녀가 죄송하다며 눈을 내리깔자 소림덕치는 그녀를 방으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마당이 시끄러워 명월과 기생들이 옷을 대충 입고는 밖으로 나와보니, 그 곳 마당 큰 기둥에 한욱동이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명월은 술이 좀 취해 잠에 빠져들었고, 동료 기생이 큰 일 났다며 그녀를 깨워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몇몇 나이가 찬 기생들이 말려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명월관에서 가장 덩치가 좋다는 웨이터 안거복이 어디서 구했는지 두꺼운 각목으로 한욱동의 배며 다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한욱동은 처음엔 반항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지만 나중엔 고통이 심해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명월이 놀라 버선발로 뛰어나와 안거복을 말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까지 각목을 휘두르려고 위협하자 명월은 김안기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김안기는 그녀를 뿌리치고는 자리를 뜨고, 그녀는 혼절한다. 동료 기생들이 그녀를 숙소로 데려갔고 안거복은 멈추지 않았다.

<명월관 마당에서 매를 맞는 한욱동> <명월관 마당에서 매를 맞는 한욱동>

실신하기 전 반항하던 한욱동은 정신이 좀들자 이제 안거복에게 빌며 울부짖었다. 죽을 만큼 두들겨 맞은 그는 또 다시 실신하고 지배인 소림덕치가 말한다.

“이제 됐다. 정신 차렸겠지.”

그리고 기생들을 향해 말했다.

“술 따르고 노래하는 너희들도 연정이 없겠냐마는, 명월관에 소속된 이상 규율을 지켜야 하는 게 너희 의무가 아니더냐.”

그리고 방안에 누워있는 명월을 향해서도 한 마디 했다.

“서운케 생각하지 마라. 다 기강을 지키기 위해서야.”

그리고 그가 자리를 뜨자 안거복도 각목을 땅에 팽개치고는 어디론가 나갔다. 아마 그도 사람을 이렇게 죽도록 패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때리느라 힘이 빠진 그도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동료 기생들이 한욱동을 기둥에서 풀고 병원으로 보냈다.

후에 이를 목격한 기생들도 서로 출두하여 이 사건에 대해 심문을 받았고 김완기, 소림덕치, 안거복 이 세 명은 살인미수죄로 기소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한동안 기생들은 외부 출입도 자제하고 연정을 품고 만나던 사내들에게 이별을 통보하기도 했다는 소식이 전해 들렸다. 또한 기생들과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 했던 사내들의 발길 역시 끊겼다고 한다.

밤은 깊어가고 달이 밝은 명월관 마당에서는 서글픈 명월의 숨죽인 울음소리만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