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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관 화재 편

내용요약 -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그 동네 사람들은 오늘 따라 해가 일찍 뜬다 했을 것이다. 또는 아름답다 했을 것이다. 1918년 어느 날, 동이 트기 직전 새벽 6시경 광화문 동명월관의 뒷방 집고각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길이 점점 강해지고 하늘도 붉게 물들었다.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곧 붉던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인다. 이 때 명월관 맞은 편의 경관파출소 순사가 이를 발견했고 소방대에 연락한다. 순사는 명월관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불이야, 불났어요. 대피하시오.”

자던 기생, 손님들이 대피하기 시작한다. 곧 소방대가 와서 불을 끄고 일찍 출근한 종업원들은 조그만 바가지에라도 물을 떠 나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삼십 분이 지나자 지붕은 거의 타고 뼈대만 남게 되었다. 몇 분 후 그 뼈대까지 스러지며 건물의 골자는 모두 없어지고 결국 벽돌로 쌓은 담 하나만 홀연히 남는다. 건물이 이 정도 상황이니 그 안의 세간은 말할 것도 없다. 화려한 실내 장식과 값나가는 장식품들이 모두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불을 구경하는 이들은 마치 그간 쌓아왔던 명월관의 명성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폭삭 내려앉은 건물, 그리고 간혹 보이는 비단 커튼, 침구들을 보면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불타고 있는 명월관의 모습> <불타고 있는 명월관의 모습>

갑자기 차 한 대가 서고 파자마에 양복을 걸친 이가 나온다. 그는 수개월 전 안순환에게서 명월관을 인수한 사장 민봉호다. 그와 세 명의 지인이 돈을 모아 명월관을 인수했고 거기에 자본을 더 투자해 실내 장식과 장식품들을 더욱 좋은 것들로 교체한 상황이다. 누구라도 가슴이 타고 애가 끊어질 판이다. 그는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뛰며 소방대가 늦게 출동한 것이 아니냐, 왜 바람의 방향을 못 잡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도 지른다.

<불타고 있는 명월관과 안절부절 못하는 민병호> <불타고 있는 명월관과 안절부절 못하는 민병호>

기생들 역시 발을 동동 굴렀다. 놓고 나온 세간이 아까워서인지, 앞으로 일터를 잃게 될까봐서인지, 아니면 그간 그들이 쌓아온 명성이 날아가는 것 같아 억울해서인지 그들은 그렇게 안절부절 하지 못 했다. 그 중 명월관을 시작할 때 함께 했던 이난향도 있었다. 그녀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동료 기생들 손을 꼭 잡고 불길이 사그라질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이는 불구경하러 온 동네 주민이 아닌 안순환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침착했다. 지배인에게 소식을 듣고 달려오긴 했지만, 이 곳에서 그가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후, 그는 불이 다른 인가로 번져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난향이 안순환에게 다가온다.

“사장님, 어떡해요, 정말 너무 아까워서....... 사장님이 다 이뤄놓으신 게 저렇게 잿더미로.......”

난향이 울먹이자 사장이 그녀를 달랜다.

“3개월 전부터는 어차피 내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긴 이제 그에게서 떠난 것이 아닌가. 수개월 전의 어느 날, 안순환은 조용히 난향을 불렀다. 난향은 그녀를 안채까지 부를 정도면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그의 방 앞에서 인기척을 한다.

“사장님, 들어가겠습니다.”
“응, 들어와 앉게.”

안순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게 말을 한다.

“명월관은 이제 다른 주인을 만나야 할 것 같다.”
“예?”

난향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이 명월관이란 놈이 내 손에만 있다 보니 더 크지도 나아지지도 않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눈치가 빠른 난향이지만 안순환의 사업적인 두뇌를 간파하긴 어려웠던 걸까. 실제로 그 당시 명월관은 받지 못한 외상값도 많았고, 공짜 술자리를 바라는 일본 관계자들 때문에 매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순환의 말처럼 더 크지도 질적으로 더 나아지지도 않는 요리 집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럼 광화문을 떠날 생각이십니까?”
“글쎄,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지. 당분간 아무 생각 없이 좀 쉬고 싶구나.”

그리고 며칠 후, 민봉호와 지인들 세 명이 명월관을 인수한 것이다.
민봉호는 주변 기생들에 의해 안정하고 냉수 한 사발을 마신다. 안순환이 이제야 그에게 다가간다.

“아니, 이층 온돌에서 작년에도 불이 났다지요?”

어디서 들은 소문인지 화살이 안순환에게 향한다.

“공사가 어떻게 됐길래 또 이러는 겁니까. 나 참, 정말.......”

안순환은 조용히 입을 뗀다.

“그래도 다행이 아닙니까. 어제 풍국 보험회사와 계약하셨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저 건물 하나를 그대로 세우기엔 터무니 없잖습니까.”

실제로 육만원의 손실이 추정되었고, 보험금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만원이었다. 이를 곁에서 들은 난향이 안순환 사장의 말에 힘을 싣는다.

“그래도 그것까지 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다행이지요.”
“예.”

대답은 했지만 민봉호는 쓰러진 명월관을 보고 한숨을 쉰다.

한 달 후 어느 날이다. 한 달 간 잘 먹고 잘 쉰 탓인지 안순환의 얼굴엔 살이 붙었다. 명월관 영업과 인줄 타기를 잠시 쉰 탓인지 안순환의 마음도 조금 넉넉해진 듯 하다. 그는 지금 손님으로 명월관에 앉아 있다. 민봉호가 내온 차를 마시며 그는 이완용을 기다린다. 민봉호가 입을 뗀다.

“제가 땅 보는 걸 좋아해서 좀 압니다만, 그 집도 사연이 오래된 집이지요. 아주 예전엔 영응대군 사위 구수영이 살다가 안동 김씨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주었고........ 그리고 헌종의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 사당을 들여놓았지요. 순화궁이라고 들어보셨지요?”
“예, 물론입니다. 순화궁 자리였지요.”
“합방되기 전 해인가 사당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겼지 않습니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의 입김이 있었겠지요.”

안순환이 조용히 웃는다. 민봉호는 다시 말을 잇는다.

“이완용 선생이 아주 겁을 먹었나 보더라구요. 그 집을 별장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 마당에 커다란 고목나무가 하나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환지 갑자기 벼락이 그 나무에 떨어졌다는 겁니다. 그 주변에도 큰 나무는 많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여기저기 수군수군 소문이 많았어요. 하늘이 벌했다는 둥,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에게 천벌을 내렸다는 둥.”

민봉호는 목소리를 잠시 낮췄다.
“기분이 찜찜할 만하겠지요.”
“이번 건이 잘 성사되면 민사장한테 큰 은혜를 지겠습니다.”
“하하, 뭘 은혜라니오. 어차피 명월관과 형제가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런가요. 하하.”
“그런데 그 이름을 벌서 지어 놓으셨는지...”
“태화관입니다.”

안순환은 이완용이 별장으로 쓰던 집을 인수하여 태화관을 차린다. 역시 명월관처럼 궁중요리와 서양식 요리 그리고 기생들의 접대가 있었던 것은 같았으나 안순환은 좀 더 다른 분위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태화관엔 양악대가 등장하고 나팔과 깽깽이 등 악기편성이 커지며 후에는 기생들의 서양 댄스 등을 볼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으로 유명해지게 된다. 안순환은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개척가형의 경영자였던 것일까, 아니면 시대와 연줄을 잘 이용하는 약삭빠른 상인이었던 것일까.
이완용이 방으로 들어오고 태화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이제 숙수 안순환의 경영인으로서의 삶 제2막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태화관 건물에 선 안순환> <태화관 건물에 선 안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