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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관의 광고 편

내용요약 - 광고전쟁

명월관의 안채, 안순환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냉수 한 사발을 시원하게 마신다. 아침부터 냉수 한 잔을 마시고 아침상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그. 이 때 종업원이 신문을 들고 안순환을 찾아 들어온다.

“사장님, 사장님”

목소리가 다급하다.

“숨 넘어 가겠다.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보세요.”

종업원이 들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신문이었다. 안순환은 신문을 받아 펴 본다. 별 큰 기사가 없는 듯 하자 종업원을 꾸짖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게야?”

종업원은 가쁜 숨을 들이쉬느라 말을 잇지 못해 손가락으로 신문의 한 쪽 면을 가리킨다. 그 곳엔 바로 ‘혜천관’의 광고가 있는 것이 아닌가. 미간을 찌푸리던 안순환은 돋보기를 찾아 끼고 그 광고 문구를 한참 읽어 본다. 또 읽어 본다.

<신문을 보고 인상을 쓰는 안순환> <신문을 보고 인상을 쓰는 안순환>

정결한 목욕간! 좋은 술과 풍부한 각종 과일!
조선 요리 뿐 아니라 입맛에 맞게 장국밥도 준비했습니다.
친절한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요리집을 홍보하는 문구를 신문에 넣는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안순환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지자 종업원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인다.

“오늘 예약한 단체 중 3 건이 취소되었습니다. 아마도 혜천관으로 가지 않았을까...”

안순환은 종업원을 내보낸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에 잠긴다. 아침 상이 들어왔지만 그는 몇 수저 뜨지 않고 상을 물린다. 그리고 또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한다. 요즘 외상값도 늘고 자본 규모도 점점 작아지는 그의 사정에 혜천관의 광고는 실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처럼 명월관을 홍보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 때 지배인 이기붕이 문을 열고 말을 전한다.

“송병준 선생님 약속이 11시가 아닙니까......”

“아, 그렇구나. 내 잊고 있었네.”


안순환은 송병준과의 약속을 잊고 있었던 것. 화들짝 놀란 안순환은 대충 겉옷을 챙겨입고는 집을 나선다. 송병준을 통해 돈푼 좀 가졌다는 일본 자본가들을 만나기 위해 그는 충무로 진고개로 향했다. 훗날 부정선거로 부통령이 되었던 이기붕이 당시 지배인으로 있었고, 그는 좀 크다 싶은 모임엔 지배인 이기붕을 대동했다. 진고개 그 곳은 청국인과 일본인 등 주로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일본인들이 향수를 느끼고자 만든 일본식 주점도 여럿 있었다. 그 곳에서 점심을 약속했던 그들은 서둘러 주점으로 향한다.

갈 길이 급한 그의 발걸음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인파였다. 일자로 길게 선 줄을 뚫고 지나가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아 그는 또 미간을 찌푸린다. 건장한 두 명의 청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그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줄을 길게 섰는지가 말이다. 그는 줄의 시초가 어디인지 눈으로 줄을 따라간다. 그 곳은 바로 과자점이다. 일본 과자를 파는 일본식 점포였다. 뭐 아주 특이한 것일까 했던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자 그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왜각시’였다. 기모노를 입고 뽀얗게 화장을 하고 빨간 입술이 강렬한 일본 여인이 과자를 봉투에 하나하나 닮고 있었다. 저렇게 손님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도 일본 여인 둘은 긴 소매를 이리 저리 옮겨가며 과자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손님들은 주로 한국 청년. 그들은 전통 일본 게이샤로 보이는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그렇게 가게를 찾은 것이다. 몸빼 바지 같은 헐렁한 삼베 바지를 입은 퉁퉁한 아줌마들이 거친 손으로 장국밥 그릇을 바쁘게 날라대는 한국의 국밥 가게와 사뭇 다른 상황이 아닌가.. 또한 손님들은 서둘러 과자를 봉투에 닮지 않아도 화를 내거나 인상을 쓰지 않는다. 그 기다리는 시간동안 그들은 왜각시에게 말도 걸고 그녀의 몸매도 감상하며 눈요기를 하는 것이었다. 안순환은 이마를 쳤다.

“그래, 이거다!”

<게이샤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과 이마를 치는 안순환> <게이샤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과 이마를 치는 안순환>

그는 송병준과의 만남에서 대충 인사를 하고는 금방 자리를 떴다. 그에게 떠오른 계획을 어서 빨리 시작하고 싶은 그의 급한 성격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다음 날 종로. 늘 붐비던 종로의 육의전이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아 더욱 후끈거리는 날씨다. 또한 여기저기서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 때문에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도 목소리를 높여 말해야 할 정도이다.

그렇게 분주하고 정신없는 종로바닥에 지배인 이기붕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뒤로 보이는 색색의 행렬이다. 송이송이 핀 꽃 넝쿨처럼 화려한 색의 우산이 줄을 섰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우산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길 가던 군중들이 우루루 몰려든다. 치마를 보아하니 부인네들 같긴 한데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그 때 제일 앞 선 우산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드니 그것은 바로 명월관 기생 산홍이었다. 일색인 그녀의 미소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하나 둘 씩 우산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십 수명의 우산들은 바로 명월관 기생들이었다. 그리고 그 줄의 가장 끝엔 이들의 대선배라 할 수 있는 현매홍도 서 있었다. 이미 나이 든 기생이긴 하지만 얼굴과 예기가 가장 잘 알려진 그녀가 빠질 수 없는 행렬인 것이다.

안순환의 아이디어가 바로 이것이었다. 현매홍 뒤엔 안순환도 서 있었다. 그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기생들을 따랐다. 그리고 또 독특한 것은 우산에는 여러 가지 광고 문구가 종이로 매달려 있었다. 명월관에 꽃다운 기생 산홍이 새로 왔으니 많이 왕림해 달라는, 현매홍의 가야금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저승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식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앞서가는 기생이 선창을 하자 따르는 기생들도 화답하며 그들은 명월관을 선전하고 있었다.

이런 기이하고 재미있는 상황에 종로 바닥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한 번도 기방엔 가본 적 없는 상투 튼 할아버지부터 젊은 혈기를 어디에 쏟아 부어야 할 지 몰라 불끈불끈 어깨 근육을 드러낸 청년들도 이들에게 다가와 눈요기를 하는 것이었다. 안순환은 귀에 입이 걸릴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글자 읽는 사람들만 본다는 신문에 광고를 싣는 것보다 이렇게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이득이라는 자만심에 그는 보폭도 더 커졌다. 그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자 이기붕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그런데 이 때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일본 순사들이었는데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들이기에 멀리에서 발견하자 이렇게 뛰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사건의 정황을 알기 위해 군중들을 파헤치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 중심에 기생들이 있었고 게다가 순사들을 향해 활짝 웃자 그들의 긴장이 눈 녹듯이 녹아 버렸다. 심지어 저 편에 서 있는 안순환에게 다가가 안부까지 물으며 기생들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싶어 했다.

이렇게 안순환의 묘안은 큰 효과를 거두었고, 평생 기생집 한 번 가보지 못한 서민들부터, 왕이 먹는 음식 한 번 먹어보자는 돈 번 천민들까지 모두 한 번씩은 명월관을 방문했다. 이렇게 조선에서 대규모 자본으로 시작한 기업 형 요리점이 대거 생기기 시작하며 경쟁 구조도 치열해 진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산 행렬이 지나자 종로 바닥은 다시 시끌벅적한 육의전 서민들의 평범한 길목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들 중 사내들 대부분은 저 기생 한 번쯤은 품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잠시나마 힘든 노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운 여름, 갑자기 더 후끈해지는 종로의 어느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