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안순환, 송병준 편

내용요약 - 왕(王)의 냉면

오늘도 명월관은 손님으로 북적인다. 기생들의 출입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정도인데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까지 분주하니 이런 홀에서 사장 안순환은 차라리 없는 것이 도움 될 정도이다. 안순환은 안채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간간히 큰 일을 보고하는 이기붕만 만나며 독서나 화초 가꾸기를 즐긴다.

폭풍 같은 바깥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의 방안은 폭풍 전야처럼 조용하다. 그 고요를 깨고 이기붕이 문을 연다.

“사장님, 송병준 선생님이 찾으십니다.”
안순환은 최근 송병준과의 술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술만 마시면 괜히 그에게 트집을 잡는 것이 일이라 간혹 그가 찾으면 안채에 박혀 출타했다는 거짓말을 이기붕을 통해 전하기도 했다.

“출타하셨다 전할까요?”
“아니다.”

<안순환을 찾아와 송병준이 찾는 다는 것을 알리는 이기붕> <안순환을 찾아와 송병준이 찾는 다는 것을 알리는 이기붕>

웬일인지 안순환은 아무 미동 없이 송병준과 지인들이 차지한 방으로 간다. 그가 문을 열자 안엔 이미 거나하게 취한 송병준과 지인들은 기생들의 소리를 들으며 추임새를 넣고 있는 중이었다. 사장의 등장에 기생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송병준이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하다.

“우리 안순환 사장 아니신가. 매일 밤마다 어딜 그리 출타하시더니, 오늘은 계셨구랴.”
“예, 많이 드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요기만 채웠지. 요즘 음식이 영 입에 안 맞는 것 같아. 궁을 떠나니 감을 잃은 게인가?”
주변에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안순환은 표정 관리를 하며 받아 넘긴다.

“선생님의 입맛이 일본식으로 변하신 건 아닌지요.”

그의 한 마디에 장안은 조용해졌다. 송병준은 발끈하며 다시 받아친다.

“그런가? 하하하. 그럼 오늘 안사장 요리 솜씨 좀 뽐내 보시게. 내가 요즘 입맛이 안 돌아와. 냉면 한 그릇 말아 오게.”

<안순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지시를 하고 있는 송병준> <안순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지시를 하고 있는 송병준>

오늘도 명월관은 손님으로 북적인다. 기생들의 출입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정도인데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까지 분주하니 이런 홀에서 사장 안순환은 차라리 없는 것이 도움 될 정도이다. 안순환은 안채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간간히 큰 일을 보고하는 이기붕만 만나며 독서나 화초 가꾸기를 즐긴다.

폭풍 같은 바깥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의 방안은 폭풍 전야처럼 조용하다. 그 고요를 깨고 이기붕이 문을 연다.

“사장님, 송병준 선생님이 찾으십니다.”
안순환은 최근 송병준과의 술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술만 마시면 괜히 그에게 트집을 잡는 것이 일이라 간혹 그가 찾으면 안채에 박혀 출타했다는 거짓말을 이기붕을 통해 전하기도 했다.

“출타하셨다 전할까요?”
“아니다.”



안순환을 찾아와 송병준이 찾는 다는 것을 알리는 이기붕


웬일인지 안순환은 아무 미동 없이 송병준과 지인들이 차지한 방으로 간다. 그가 문을 열자 안엔 이미 거나하게 취한 송병준과 지인들은 기생들의 소리를 들으며 추임새를 넣고 있는 중이었다. 사장의 등장에 기생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송병준이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하다.

“우리 안순환 사장 아니신가. 매일 밤마다 어딜 그리 출타하시더니, 오늘은 계셨구랴.”
“예, 많이 드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요기만 채웠지. 요즘 음식이 영 입에 안 맞는 것 같아. 궁을 떠나니 감을 잃은 게인가?”
주변에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안순환은 표정 관리를 하며 받아 넘긴다.

“선생님의 입맛이 일본식으로 변하신 건 아닌지요.”

그의 한 마디에 장안은 조용해졌다. 송병준은 발끈하며 다시 받아친다.

“그런가? 하하하. 그럼 오늘 안사장 요리 솜씨 좀 뽐내 보시게. 내가 요즘 입맛이 안 돌아와. 냉면 한 그릇 말아 오게.”


안순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지시를 하고 있는 송병준


지배인 이기붕이 나선다.

“선생님, 지금은 밤 시간인지라 식사는......”
“하하하. 멍청한 친구 같으니라구. 명월관에 오면 왕이 먹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그리 광고를 하지 않았나. 안사장이 고종을 모실 때, 시간을 가리며 음식을 했던 건가? 응? 그런 게야? 왕이 먹고 싶다 말만 떨어져도 턱 하니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게 바로 숙수 안순환의 임무였잖아.”

거절하려는 이기붕을 막아서며 안순환이 화답한다.

“얼른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래야지, 암. 고종황제가 즐겨 먹었다는 그 냉면을 가져오게.”

안순환은 주방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배인이 그를 막아선다.

“주방 사람을 시켜 제가 올리겠습니다.”

안순환은 대꾸하지 않고 차가운 물에 손을 씻는다. 지배인 이기붕이 종업원을 시켜 동치미 국물을 떠오게 한다. 고종 황제가 즐겨 먹었다는 냉면은 고기 육수가 아니라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마는 것이 특징이다. 안순환은 직접 면을 삶고 찬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만다. 그리고 곁에 서 있던 주방장이 배를 칼로 자르려 하자 배를 빼앗아 숟가락으로 저민다. 고종이 즐겼던 냉면의 특징 중 또 하나는 바로 배를 칼로 썰지 않고 반드시 수저로 얇게 저며 얹었다는 것이다. 또한 배를 많이 넣고 담가 무척 달고 시원한 것도 여염집 것과 다른 특징 중 하나이다. 또 유자를 넣고 후추, 배, 잣을 고명으로 올린다. 안순환은 이 냉면을 들고 송병준의 방으로 간다. 그와 지배인이 도착하자 송병준과 일행은 자리를 뜬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아, 내가 급한 일이 있어. 다음에 들르겠네.”

<냉면그릇을 들고 서 있는 안순환과 비웃으며 방을 나가려는 송병준 일행의 모습> <냉면그릇을 들고 서 있는 안순환과 비웃으며 방을 나가려는 송병준 일행의 모습>

송병준은 야릇한 미소를 남기고 방을 빠져 나간다. 이기붕은 안순환 사장의 표정을 살피더니 얼른 냉면 그릇을 받아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 때 돌아서 가던 송병준이 한 마디 더 남긴다.

“요즘 이등통감이 자주 온다지? 둘이 의형제를 맺었다는 소문도 돌던데? 잘 해보게.”

당시 통감이라 하면 정치 뿐만 아니라 군사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 때 송병준이 일본을 들락거릴 때 그를 따라 다니던 수행 요리사가 지금은 어엿한 요릿집의 사장이오, 게다가 통감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그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다.

사실 송병준과 안순환의 사이는 애증 관계에 있는 연인 같았다. 긴밀하게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채워주지만, 누군가 더 긴밀한 관계의 인맥이 생기면 그것은 곧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안순환은 송병준을 궁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변 친일파와 자산가들을 소개 받는다. 송병준 역시 고종의 숙수였던 안순환을 이용해 왕이 누렸다는 호의호사를 흉내 내며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송병준은 청화정이라는 요리집을 차리고 밤마다 친일정객들을 모아 나라 팔아먹을 모의를 하고 여색을 즐겼다. 영업은 뒷전이었던 그였지만 안순환이 궁을 나와 명월관이라는 요릿집을 차렸다는 소문이 달갑지 않았다. 안순환의 명월관의 수입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무렵, 송병준은 그에게 손을 벌린다. 정치를 위한 자금을 그에게서 빌려 썼던 것이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로 지내는 동안 안순환은 인맥을 통해 이등 통감이라는 새로운 연줄을 잡게 된 것이다.

<냉면을 든 채 당당하게 서 있는 안순환> <냉면을 든 채 당당하게 서 있는 안순환>

이 둘의 사연이 이러하지만 실제 둘이 인간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친형제처럼 지내던 그들이 이렇게 사이가 벌어진 것은 하나의 사건이 원인이 아니었으리라. 사업상 만난 각자의 이익을 위해 만난 사이이지만, 남자들이 꿈꾸는 의리와 정의 따위가 있었던 것일까.

송병준이 떠나자 안순환은 종업원들을 시켜 방을 치운다. 지배인 이기붕도 그의 눈치를 보며 이리 저리 분주하다.

송병준이 저렇게 감정을 내보이는 것은 차라리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끝까지 사업가의 영업적인 이익과 품위를 지키려는 객관적인 모습의 안순환은 차라리 냉면 같다. 동치미 국물에 뜬 얼음 같다. 안순환은 더욱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어느 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분주하고 취객들로 시끌벅적한 명월관 위에 초승달 하나가 떠 있다. 달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