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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구조

고택의 구조

조선시대 상류주택을 중심으로 전통가옥들은 대개 일정한 공간구성을 이루게 됩니다. 가옥의 위치와 가문을 알리는 동시에 집안의 출입 처 역할을 담당하는 솟을대문. 바깥주인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들을 맞이하는 사랑채, 안주인의 생활거처이자 살림을 맞고 있는 안채, 집안 살림과 곡식을 저장하던 광채와 곳간채, 집안의 하인들이 생활하며 거처하던 행랑채. 그리고 가문의 조상을 모시고 위패를 보존하던 사당채 등이 전형적인 조선시대 이후 상류주택의 공간구조였습니다.

솟을대문

대문과 담장으로 둘러진 고택은 외부와의 경계와 주거공간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집 안팎으로 담을 쌓고 정문과 함께 편히 드나들기 위한 편문(便門)을 두었으며, 이 밖에도 일각문(日脚門), 협문 등 크고 작은 문을 달아 공간을 이어주는 출입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솟을대문은 전통시대의 상류주택 및 서원과 향교 등의 주요 출입처 역할을 하였던 정문을 의미합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대문이라는 뜻을 지닌 솟을대문은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형태는 보통 행랑채와 함께 구성되거나 담과 함께 좌우 협문을 끼고 3칸으로 구성됩니다. 좌우출입문보다 가운데 문을 높이 지은 것은 조선시대 종이품(從二品) 이상의 관료들이 이동수단으로 활용했던 초헌(외바퀴수레)이나 가마를 탄 채로 이동할 경우 그 높이를 고려하여 문을 높인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담장의 수평적인 시선과 대비되는 수직적인 대문은 단조로울 수 있는 고택의 외관을 흥미롭게 변화시켜줄 뿐 아니라, 고택의 구조와 위상을 높이는 전형적인 구조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봄철이 되면 솟을대문이나 집안 기둥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써 붙여 “입춘을 맞이하여 밝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사랑채

안채와 따로 떨어져 있어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방을 사랑채라고 합니다. 가옥의 구조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문을 들어 서면 하인들이 거처하는 행랑(行廊)이 있고, 조금 떨어져서 손님방으로 사용하는 수랑(守廊), 그리고 아이들이 쓰는 작은사랑, 웃어른이 거처하는 큰사랑이 있는데, 작은사랑, 큰사랑을 함께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랑대청과 사랑방으로 이루어진 사랑채는 집안의 가장인 남자 어른이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는 방으로 남자들의 공간이며, 외부로부터 온 손님들에게 숙식을 대접하는 장소로 쓰였습니다. 또한 이웃이나 친지들이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집안 어른이 어린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교육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경우는 사랑채가 독립된 건물로 있었지만, 일반적인 농가에서는 주로 대문 가까이의 바깥쪽 방을 사랑방으로 정해 남자들의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정온선생가옥 사랑채 정온선생가옥 사랑채
서계 박세당 가옥 사랑채 서계 박세당 가옥 사랑채
안채

안공간인 안채는 집안의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으로,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보통 안방, 안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구성됩니다. 안채의 안방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실내공간 중에서도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출산, 임종 등 집안의 중요한 일이 이뤄지던 여성들의 주된 생활공간입니다. 안채는 위치상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인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의 사회생활을 꺼려하여 남편이나 친척 외에는 남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성들의 외부와의 출입을 제한하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공간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채와 달리 학문탐구 등의 활동공간이라기 보다는 가족들의 의식주를 전담하는 공간으로, 가구류도 의복과 침구류 보관을 위한 수납용 가구 등이 놓인 것이 특징입니다.

녹우당 안채 녹우당 안채
논산명재고택 안채 논산명재고택 안채
중문간채

문간방을 겸하면서 좌우의 벽이 막힌 통로 형식으로 만들어 졌으며 안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 곳을 통하여 속세로 출입을 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습니다.
중문간채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짓고 안채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안 사람들, 즉 여성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공간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경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문을 중심으로 둘러친 담을 ‘내외담’이라 불러 남녀의 공간구분을 확실히 정하였으며, 안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대문을 들어서고 사랑채를 지나 또 다른 담과 문인 중문간채를 거쳐서 이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중문간의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중요하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소중한 유산으로써 우리가 잘 지키고 가꾸어 후손에게 길이 물려 주어야 할 값진 재산입니다. 고택 또한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대표적인 것으로써 우리가 알고 지켜가야 할 귀중한 재산인 것입니다.

정온선생가옥 사랑채와 이어진 중문채 정온선생가옥 사랑채와 이어진 중문채
논산명재고택 중문(내외문) 논산명재고택 중문(내외문)
행랑채

주택에서 대문간의 좌우 또는 그 앞에 둘러 세운 부속집으로써 대문 양 쪽, 또는 문간 옆에 있는 문간채로, 손님들이 기거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집안의 남자 하인들이를 비롯한 사역인(使役人)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옛말에 ‘행랑살이 한다’라는 뜻은 남의 행랑에 기거하면서 대가로 그 집안의 심부름이나 궂은일을 해주며 사는 것을 의미한데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교장 행랑채 선교장 행랑채
서백당 행랑채 서백당 행랑채
광 / 곳간

농경생활이 시작된 이후부터 사람들은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밖에 생활물품 및 각종 도구를 저장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여 보관하였습니다. 광과 곳간은 이와 같이 쌀과 같은 곡식과 함께 농기구 및 다양한 물품을 보관하던 곳을 일컫는 말입니다. 광과 곳간이 행랑 또는 안채에 붙어서 지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따로 여러 칸(間)을 만들어 하나의 광채나 곳간채로 짓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집안 곡식을 저장하는 곳간의 경우는 출입 장치를 신중하게 하였으며 안주인이 특별히 관리 하였다고 합니다.

나주 박경중 가옥의 광채와 중문 나주 박경중 가옥의 광채와 중문
정온선생가옥 곳간채(광채) 정온선생가옥 곳간채(광채)
사당

사당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써 보통 고택구조에 있어서 북동쪽에 위치하는데 가묘(家廟)라고도 불리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합니다. 고례(古禮)에는 종묘·예묘(禮廟)라고 했는데, 주자의 “가례(家禮)” 이후 사당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사당의 일반화는 주자가례에 의해 반드시 조사를 제사하도록 한 뒤부터라 할 수 있으며, 각 집안마다 제사일이 되면 특색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고 시간을 정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대개 사당에는 ‘3년상’을 마친 신주를 모시며, 집을 짓기 전에 먼저 그 터를 잡아 건축하였습니다. 사당 안에는 4감(龕 : 감실, 사당 안에 신주를 모시는 장)을 만들어 4대조를 봉안하였습니다. 신주를 모시는 순서는 감실 내 서쪽부터 제1감에 고조고비(高祖考), 제2감은 증조고 비(曾祖考), 제3감은 조고비(祖考), 제4감은 고비(考) 차례로 신주를 모셨고 감 밖에는 장(帳)을 드리우고 각 위패마다 제상(祭床)을 놓고 그 위에 촛대 1쌍씩을 놓는 예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당 역시 담을 쌓아 가리고 앞에 대문을 만들어 위엄과 신성한 곳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양동서백당 사당 외삼문 양동서백당 사당 외삼문
논산명재고택 사당 논산명재고택 사당
계서당 사당 계서당 사당
사당에 모신 신위 사당에 모신 신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