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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상

유교사상 : 유교적인 가치관과 고택의 배치구조 형성

1392년 조선왕조 개국과 더불어 유교적 체제를 통하여 새로운 이상사회를 구현하려 했던 조선의 지배계층인 양반은 그들의 주거를 유교 적인 이념과 생활양식을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유교적인 가르침이 생활 구석구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조선중기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생활적 측면뿐만 아니라 주택의 평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유교적 가치관은 조상숭배사상, 내외사상에 의한 남녀유별, 장유유서, 신분제도에 의한 상하계층의식 등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1)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하는 유교는 ‘유학(儒學)’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입니다. 이러한 유교사상은 삼국시대 이래로 수용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말기에 주자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교로써 나라의 통치제도와 이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은 전통가옥인 고택의 구조 형성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택의 구성은 주로 ‘채’라는 개별 공간의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때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채 등의 공간은 조상숭배, 내외사상, 장유유서, 상하계층의 구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이러한 바탕이 당시 유교사상이었습니다.
유교사상의 영향은 공간적으로는 조상숭배 사상에 의해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채를 형성하게 되고, 남녀유별의 사상에 의해 남자들의 거주공간인 사랑채와 여성들의 거주공간인 안채를 구분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유교사상 가운데 장유유서의 가르침은 사랑채와 안채 내에서 방의 위계를 정하게 되며, 신분계층의 분리에 따라 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와 안채 외에 하인이 거주하는 행랑채를 구분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외부공간 역시 채와 담으로 구분되어 그 성격에 따라 사당마당,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 뒷마당 등으로 구분하였습니다. 특히 안채는 여성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으로 집안 깊숙한 곳에 위치하였는데 이는 안전함과 풍요함, 그리고 양육과 같은 기능을 이루던 곳입니다. 이와 같은 안채의 출입은 여성 보호의 기능을 위해 대문채를 구성하는 내외벽과 내외문을 통해 이루었다. 이는 많은 손님들이 사랑채를 통해 주로 바깥주인과 왕래를 이루는 속에서도 함부로 안채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 안채 생활을 독립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택공간에 있어서도 전면에서 후면으로 종방향, 좌(동)에서 우(서)로의 횡방향에 따라 좌우 대칭의 구조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는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을 배치하여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으며, 좌우 대칭 구조를 통해 선비의 기품과 규범을 찾고자 하였습니다.2)
1) 노정희, 『조선후기 반가의 주거문화 고찰과 공간분석에 의한 환경디자인 모형사례연구』, 이화여자대학교, 1998.
2) 박소영,박언곤 『尹拯古宅의 영역별 공간분석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1999.

논산명재고택 배치전경(중요민속자료 190호 기록화보고서, 尹拯先生古宅, 문화재청) 논산명재고택 배치전경(중요민속자료 190호 기록화보고서, 尹拯先生古宅, 문화재청)
논산명재고택 투상도 논산명재고택 투상도
정온선생가옥 배치전경(중요민속자료 제205호 기록화보고서, 「정온선생가옥」, 문화재청) 정온선생가옥 배치전경(중요민속자료 제205호 기록화보고서, 「정온선생가옥」, 문화재청)
정온선생가옥 배치도 정온선생가옥 배치도
양동 서백당 배치전경(중요민속자료 제23호 기록화보고서, 「良洞 書百堂」, 문화재청) 양동 서백당 배치전경(중요민속자료 제23호 기록화보고서, 「良洞 書百堂」,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