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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중가옥

연혁
가옥 뒷마당 가옥 뒷마당

문화재자료 (나주시) 제153호

지정일 : 1987년 6월 1일

소유자 : 박경중

소재지 : 전남 나주시 남내동 95-7

건축시기 : 조선시대

전라남도 나주읍성 내에 위치한 ‘나주 박경중 가옥’은 전라남도 전통한옥 가운데 개인 주택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지니고 있다.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의 물길이 고택을 따라 흐르며 6대조 어른이 머물렀던 초가집과 함께 근대 한옥의 또 다른 모습을 지켜가고 있다.
박경중 가옥은 전라남도 장흥군수를 지낸 4대조 박재규 선생이 지은 것으로 1987년 6월 1일 나주시 문화재자료 제153호로 지정되어 고택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반 전통한옥의 모습과는 달리 관아형태의 건물로 지어진 점이 특이한데 이는 장흥군수를 지낸 박재규 선생이 장흥군의 관아의 모습 을 따라 고택의 배치 및 지붕의 형태를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이런 고택의 모습을 보고 ‘박장흥댁’, ‘박군수댁’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박경중 가옥의 건물구성은 초당(草堂. 초가삼간), 바깥사랑채, 안채, 아래채, 헛간채, 바깥행랑채, 문간채를 아울러 총 7채로 이루어져 있다. 박경중 가옥의 초당은 1884년에 지어졌으나 현 고택의 모습은 20세기 초인 1910년대에 이르러 안채와 안사랑채를 중심으로 건립되었고 1930년대에 바깥사랑채를 마련하였다. 바깥사랑채는 박경중씨의 증조부께서 머물렀던 곳이며 고조부께서 안사랑채에 기거했다고 한다.
바깥사랑채는 일제시기에 병원, 관사, 정치인들의 거주지 등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사랑채 식당으로 변화하여 식문화 공간으로 외부에 개방되어 있다.
1957년 안채 앞마당에 있던 안사랑채를 허물고 그 목재를 이용하여 헛간채를 짓는데 사용하였다. 현재 안사랑채가 있던 자리는 정원 으로 가꾸어져 있으나 1970년대 중반까지는 주변일대의 농사를 지었기에 곡물을 타작하던 장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박경중 가옥은 관아형태의 건물로 지어진 민가로써 안채가 ‘一’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그 크기는 약 50평정도로 매우 큰 규모이다.
박경중 가옥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로 근 100년이 되었다. 당시 건축을 위해 사용했던 도구가 지금도 남아있으며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생활민속자료들을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 또한 고택에는 박경중씨의 조부인 박준삼선생이 유년기부터 직접 작성한 메 모, 편지, 일기 등의 개인기록물에서부터 일제시기의 잡지, 신문, 교과서 등의 다양한 수집기록물을 오늘날까지 잘 보관하고 있다.
종손은 이러한 자료들의 정보를 책자 형태로 발간할 예정으로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소와 연계하고 있다.
현재 나주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있는 박경중 가옥은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민속자료와 기록물을 보존하고 있어 그 역사적 의의가 더욱 크다.

안채가는 길 안채가는 길
초당 초당
안채대청 안채대청
마당과 아래채 마당과 아래채
문화와전통
100년간 일체의 개조 없이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고택

전라남도 나주시에 위치한 ‘나주 박경중 가옥’은 나주시 문화재자료 제153호 지정된(1987년 6월 1일) 고택으로 6대조 어른이 터를 잡고 4대조인 남파 박재규선생 대에 지어졌다. 안채를 건립한 시기가 1910년대 초기라고 하니 근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근대에 이르러 지어진 ‘박경중 가옥’은 시기상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모습과는 달리 관아형태의 건물로 지어졌다. ‘一’형을 이루는 안채는 전라남도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로써 이렇게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일합방으로 궁중의 목수들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때 궁중목수들을 데려와 우수한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아형태로 집을 지은 이유는 남파 박재규 선생이 장흥군수를 지냈는데 당시 장흥군 관아와 유사한 건물로 가옥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마을에서는 고택을 ‘박 장흥댁, ’박 군수댁‘이라 불렀다고 한다.

근 100년이 흐른 지금 고택의 명칭은 변하였지만 선대 어른이 지은 고택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안사랑채 일부의 재목을 헛간채(1957년)를 지을 때 활용하였지만 이후 지금까지 고택의 내부 구조는 그대로이다.

현 종손 박경중씨는 부엌 등 일체의 생활공간 역시 개조 없이 옛날방식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부엌은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안채 대청마루에도 옛날의 생활물품을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주는 옛 부터 목물공예로 유명했다. 나주목물로는 장롱에서부터 뒤주, 반닫이, 앞닫이, 문갑, 사방탁자, 반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나주반은 통영, 해주의 반상과 함께 우리나라 3대반으로 그 윤택과 반상 안정감이 탁월하다고 한다. 박경중 가옥에도 이러한 나주반이 여러 개다. 현 종손 박경중씨는 자신이 만 5세 때 받은 독상이었던 나주반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고택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목기로 된 수통과 도시락함, 찬합, 각종 목기 그릇, 목기쟁반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박경중 가옥의 또 하나 반가운 소식은 근현대사를 살피는데 매우 유용한 당시의 기록물들이 잘 보존·관리 되고 있다는 것이다.
1898년에 태어난 박준삼선생은 박경중씨의 조부로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를 지내오면서 다양한 기록을 남겼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편지, 메모와 일기장, 각종 차용증서, 통장원본 등의 개인기록에서부터 일제시기와 대한민국사 초기인 1924년에서 1957년까지 발행된 각종 신문 등을 원본그대로 보존하였다. 또한 당시에 사용되었던 교과서, 각종잡지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상당수 수집했던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제시기에 간행된 잡지, ‘학지광’ 가운데 제9호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학지광’은 1914년 도쿄(東京) 유학생 학우회에서 창간한 잡지로 논문과 시,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실은 잡지였다. 1914년 4월에 창간하여 1930년 폐간될 때까지 통권 29호를 출판한 잡지로 특히 1910년대 문학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박경중씨에 따르면 한국내에서 ‘학지광 제9호’는 유일본이며 미국에 1본이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종손은 이러한 기록물들을 현재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소와 연계하고 있다. 주요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하여 관련 기록물의 주요정보를 책자형태로 발간할 예정에 있다. 또한 현재 나주시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는 ‘나주 박경중 가옥’을 ‘중요민속자료’로 전환할 것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루어진다면 유물관 건립을 통해 이러한 다양한 자료와 생활물품들을 전시 및 보존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박경중 가옥은 선대에 건축한 고택의 원형 모습을 그대로 유지·보존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선대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 역시 조심히 지켜온 것이다.

종부인 강정숙씨 역시 1974년 시집온 이래 35년간 고택을 지켜오면서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가꾸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종부는 지난 2008년 12월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보존 관리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근 100년의 시간 속에서도 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며 선조들의 지혜와 숨결이 담긴 고택을 원형모습 그대로 지켜온 것에 대한 보답인 것이다.

종손 박경중씨와 종부 강정숙씨는 우수한 고택의 모습을 더 많이 알리고 전통문화를 공유하고자 향후 고택이 “중요민속자료”로 선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안채마당과 진입로 안채마당과 진입로
대청마루와 선반에 놓인 전통생활물품 대청마루와 선반에 놓인 전통생활물품
부엌 아궁이 부엌 아궁이
옛 손때가 뭍어있는 나주반 옛 손때가 뭍어있는 나주반
목기 도시락함과 수통 목기 도시락함과 수통
목기 도시락함과 수통 목기 도시락함과 수통
박준삼선생의 개인기록물 박준삼선생의 개인기록물
학지광 제8호 학지광 제8호
학지광 제8호 학지광 제8호
6대조께서 머물던 ‘초당’과 집터의 기운을 잡아준 ‘돌확’

‘一’자형의 큰 건물에 가려 자칫 박경중 가옥의 또 다른 진면목을 노칠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박경중씨의 6대조 어르신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초당(草堂)’이다. 초당은 짚이나 억새로 지붕을 이고 목재와 토벽으로 지은 전통민가를 뜻한다.
박경중가옥 뒷마당, 북쪽에 위치한 초당은 초가삼간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전후 툇집으로 방2칸, 마루1칸, 부엌으로 구성된다. 초당에는 여전히 전기를 놓고 있지 않으며 불을 켤 때는 호롱불 내지 촛불을 이용한다. 난방 역시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는 옛 방식 그대로이다. 6대조 어른이 기거하셨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종손 박경중씨는 이와 같은 초당을 개방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는 것은 아니며 전통한옥에 관한 이해를 통해 고택에 관한 참된 마음과 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개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껏 체험하지 못한 초가에서의 하룻밤을 통해 옛 선조들의 생활공간과 방식을 몸소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초당체험’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고택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얘기도 함께 나누며 대청마루에서 “다도(茶道)”를 즐길 수 있는 시간도 포함된다.

박경중 가옥의 대청마루 뒤편에는 어른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한 칸(間)크기의 돌확이 있다. 언뜻 보면 옛날 사람들이 목욕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고택에서 상당한 역사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돌확은 보통 돌로 만든 조그만 절구를 의미하는데 자연석 돌을 우묵하게 파서 절구 모양으로 만들기거나 그러한 형태로 구워내기도 한다. 옛날에는 일반적인 생활도구로 많이 사용하였으나 오늘날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박경중 가옥에는 오래된 작은 돌확 등이 여전히 안채 마당에 놓여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앞서 얘기한 어른이 목욕을 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인공적인 돌확까지 있어 그 용도와 크기에 더욱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만한 크기의 돌확을 제작한 연유는 이렇다고 한다.

4대조인 남파 박재규선생이 안채를 먼저 짓고 기거할 무렵 집안의 불운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바로 남파선생의 손자 2분이 차례로 숨을 거두는 우환이 겹친 것이다.
그 원인을 고심하던 중 집터의 기운이 너무 센 것이라 여기고 안채의 상량문을 다시 고치었고 지금의 돌확을 만들어 그 기운을 누르고자 한 것이다. 돌확을 옮기기 위해 안채로 통하는 협문이 있던 자리를 헐고 들여놓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가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박경중 가옥의 돌확은 다른 용도로도 용이하게 사용되었다. 일종의 우수처리시설이자 마을 일대의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로도 사용 되었다고 한다. 처마의 빗물을 받아 고택 곳곳의 마당과 정원에 물을 주는 용도로도 사용되었고 혹시나 모를 화재에도 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가내리면 돌확에 물이 차게 되는데 만약 돌확에 고인 물이 차고 넘치면 나주 일대의 강우량이 60mm 이상이라 여기고 수해에 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주변 농가의 농사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데 한 마디로 ‘강우주의보’의 기능까지도 돌확이 수행한 것이다.

초당 초당
돌확과 맷돌 돌확과 맷돌
집터의 기운을 잡고 있는 돌확 집터의 기운을 잡고 있는 돌확
가옥구조

박경중 가옥은 나주 진산인 금성산의 물길이 흘러 주변에는 금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평탄한 지형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민가를 관아형태의 건물로 지은 특성을 가진 전통 건축물로 바깥사랑채, 안채, 아래채, 헛간채, 바깥행랑채, 문간채를 아울러 총 7채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헛간채가 자리하고 헛간채 좌측 대각방향에 바깥사랑채로 통하는 협문이 위치한다. 헛간채는 기존의 안사랑채를 허물은 자재를 이용하여 1957년에 건립하였다. 바깥사랑채는 전후좌우로 퇴를 둔 팔작집 형태로 ‘ㄱ'형 구조를 띈다. 지금은 식문화공간으로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다. 바깥사랑채와 아래채는 같은 축선상에 있으나 담장을 통해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대문간을 지나 안채로 진입하는 중문을 지나면 안채마당과 정원을 마주한다.

안채는 1910년대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一’형 평면이다. 전후좌우 퇴집으로 팔작기와 지붕에 겹처마 구조를 이룬다. 약 50평의 크기로 전라남도 전통민가중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라 한다.
우측부터 부엌, 안방, 대청순으로 배치하고 좌측으로은 앞뒤로 작은 방을 1칸씩 들였다.
한편 상량(上梁)에는 “조선개국오백사십삼년갑술십이월이십일일신축시상량(朝鮮開國五百四十三年甲戌十二月二十一日辛丑時上梁)”이라 적혀 있다. 1910년대 초기에 건립된 안채의 상량이 1934년에 건립한 것으로 변경된 이유는 당시 안채 건립이후 집안의 우환이 겹치자 집 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상량만을 교체한 것이다.
작은 방 옆은 누마루를 깔았고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그 밑에는 함실이 있어 작은 방에 불을 땔 수 있게 하였다.

아래채는 안채 전면 오른쪽에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일자형 팔작집으로 정면과 좌우측으로 퇴를 두었다.

초당은 박경중의 6대조가 직접 짓고 머물렀던 곳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초가삼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안채의 뒷마당에 위치한다. 장독대가 연이어 배치되었다. 상량문에 “광서십년갑신구월(光緖十年甲申九月)……”으로 기록되어 있어 고종 21년(1884)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전후 툇집으로 방2칸, 마루1칸, 부엌으로 구성된다. 초당에는 여전히 전기를 놓고 있지 않으며 불을 켤 때는 호롱불 내지 촛불을 이용한다.

대문 대문
헛간채와 중문 헛간채와 중문
안채정원 안채정원
안채 안채
툇마루와 누마루 툇마루와 누마루
아래채 아래채
초당 초당
초당과 장독대 초당과 장독대
문화유산
전통 생활용품
목기 8각 大쟁반 목기 8각 大쟁반
목기 물통 목기 물통
종이재질의 함 종이재질의 함
종이함 내부 종이함 내부
도시락함(가로) 도시락함(가로)
도시락함(세로) 도시락함(세로)
각종 나주 목기 그릇 각종 나주 목기 그릇
찬합 찬합
찬합 찬합
물병 물병
박준삼씨가 사용했던 바둑판과 알 박준삼씨가 사용했던 바둑판과 알
박준삼씨 개인기록물
편지 편지
약통장(藥通帳) 약통장(藥通帳)
애감록 애감록
증권보관증 증권보관증
장흥군 지도 장흥군 지도
떡판 떡판
고택여행

전라남도 나주시 남내동에 위치한 ‘나주 박경중 가옥’은 전라남도 전통한옥 가운데 개인 주택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지니고 있다.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의 물길이 고택을 따라 흐르며 6대조 어른이 머물렀던 초당과 함께 안채와 사랑채 등으로 이루어진 근대 한옥의 또 다른모습을 지켜가고 있다.
박경중 가옥은 전라남도 장흥군수를 지낸 4대조 박재규 선생이 지은 것으로 1987년 6월 1일 나주시 문화재자료 제153호로 지정되어 그 고택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고택을 살아가는 종가의 종손은 고택생활에 대한 다소의 어려움을 솔직히 얘기한다.
여름에는 여느 전통한옥과 같이 시원함을 맛볼 수 있지만 겨울철 난방에는 예나 지금이나 어려움이 많다. 박경중씨는 손수 장작을 구해서 난방을 하거나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 다행히 난방을 위한 목재를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주변의 과수농가에서 전지(가지치기)를 하고 남은 가지들을 쉽게 구해올 수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5월까지도 아침과 저녁으로 난방을 한다.
전통가옥을 지키고 사는 것의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도난의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식 건물이 집의 모든 구조물은 벽으로 둘러쌓고 안전한 문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할 수 있지만 고택은 그렇지가 않다. 담이 집을 모두 감싸고 있지만 그리 높지 않으며 고택의 특성상 전통한옥에서 사용하는 출입문은 여러모로 도난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부이전부터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는 주요한 문서들이나 생활용품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서도 도난방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고택의 역사가 근 100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나주 박경중 가옥’은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가운데 당당히 그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다. 시내에 위치한 관계로 지금까지 일반인에게 쉽게 개방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종가를 지켜나가는 종손과 종부는 조금씩 고택의 개방과 체험을 준비하고 있다.

6대조 어른이 직접지어 기거했다고 전하는 ‘초당(草堂)’은 초가삼간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전통가옥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박경중 가옥의 전통과 문화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주 찾아가는 길
KTX 이용시
- 용산역→나주역(2시간 55분 소요 / 하루 4회 운행)
- 용산역→송정리역(2시간 40분 소요 / 하루 9회 운행)
- 용산역→광주역(3시간 소요 / 하루 9회 운행)
송정리역과 광주역에서 160번 버스를 타면 나주터미널, 영산포역까지 운행.

고속버스 이용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나주버스터미널(4시간 10분 소요 / 하루 6회 운행)

승용차 이용시
- 호남고속도로→광산 IC→13번 국도→나주
- 서해안고속도로→함평 IC→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