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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당

연혁
학인당 정문 학인당 정문

시도민속자료 제8호(전라북도) 지정

지정일 : 1976.04.02

소유자 : 수원백씨 인재공파 종중 , 관리자 : 백광제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105-4번지

건축시기 : 조선시대

학인당(學忍堂)은 수원백씨인재공파(水原白氏忍齋公派)의 종택으로 전주에 터를 잡은 것은 충숙공(忠肅公) 백인걸(白仁傑)의 6世 백시흥(白時興)선생이 숙종조 1700년대에 전주최씨 부인을 맞이하여 처가인 전주로 이주하면서 부터이며, 200여 년 6대에 걸쳐 전주의 유력가문으로 자리잡았다.

학인당은 인재(忍齊) 백낙중(白樂中, 1882-1930)선생이 장자 백남혁(白南赫, 1905~1981)이 태어난 것을 기념, 1905년 착공하여 1908년에 완성한 고택으로 아들에게 만석꾼의 산보다는 수백 년을 갈 집을 선물하고자한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에서 연유한다. 학인당의 당호에서도 부자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아들 백남혁이 부친인 인재공을 기리기 위하여 아버지의 호 가운데 ‘인(忍)’자를 합하여 ‘학인당(學忍堂)’이라 정한 것이다.

학인당 현판 학인당 현판

학인당 건립은 인재공 백낙중의 부친인 협변공 백진수(白晋洙)어른으로부터 현 건물의 부지를 상속 받아 당시 고종황제의 측근무관이자 백낙중의 둘째형인 백남신(白南信)과 상의하여 고종황제의 허락을 받아 궁중의 일류 목수들을 투입하여 궁중양식의 학인당을 건립할 수 있었다.
학인당은 궁중건축양식을 민간주택에 적용한 67평의 한옥으로 서울 ‘안국동윤보선가’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가대형한옥이다. 궁궐 건축에 참여한 도편수와 대목장으로 하여금 1905년에 착공하여 1908년까지 2년8개월에 걸쳐 총공사비 4,000석(8000가마)을 들여 압록강과 오대산의 최고급 목재로 연인원 4,280명을 투입하여 궁중양식의 학인당과 대저택을 마련하였다. 건축당시에는 본채ㆍ별당채ㆍ솟을대문ㆍ서사랑채ㆍ뒷채ㆍ창고채ㆍ동사랑채 안채ㆍ안사랑채ㆍ행랑채ㆍ사당ㆍ정자ㆍ별채2동ㆍ후원 등 99칸 2000여평 규모로 지어졌으나, 현재는 520평에 7채가 남아있다.

학인당 본채 전경 학인당 본채 전경

학인당은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사대부 양반집 가옥구조형식이 아닌 개화기의 근대한옥으로써 개량형 한옥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의 구조에 있어서는 궁월양식의 전통한옥 형태를 취했지만 건물외면에 유리 여닫이문을 두르고 내부 생활공간의 배치는 양옥의 형태인 서재ㆍ세면장ㆍ목욕탕ㆍ화장실 등을 마루로 연결하여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전기시설과 수도시설을 함께 도입하였다. 내부는 복도식으로 연결되어 개방적이며 합리적인 공간구조를 보이고 지붕의 정면에 돌출시킨 박공면에 창을 부설하여 다락의 채광과 환기를 도모한 2층집의 개량형 한옥의 모습을 지닌 학인당은 근대한옥구조 변천사를 이해할 수 있는 건축사 학술자료로 가치가 높음을 인정받았다. 이에 1976년 4월 2일 전주시 민속자료 제8호(전주시) 지정되어 고택의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다.

학인당 정원 학인당 정원

진보된 가옥을 건립한 학인당은 삼대에 걸쳐 효자문을 하사받은 효의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은 수원백씨(水原白氏) 규방(奎邦), 진석(晋錫), 행량(行良), 응만(應晩), 낙중(樂中) 등으로 나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규방은 헌종때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재수 받았으며, 진석은 고종때 종2품 가의대부 중추부사 내부협변의 벼슬을 제수 받았다. 백규방의 효자정려각은 1872년에 백진석은 1908년, 백행량은 1871년, 백응만은 1905년에 각각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규방의 손자이며 백진석의 아들인 인재 백낙중 또한 고종때 효자로서 당시 명필 성당(醒堂) 김돈희(金敦熙)가 쓴 ‘효자승훈랑영릉참봉백낙중지려(孝子承訓郞英陵參奉水原白氏之閭)’의 현액을 하사받았으며 지금도 학인당의 솟을대문에 걸려있다.

<수원백씨 인재공파 정려>
백방진 정려(규방. 1802-1868) 백방진 정려(규방. 1802-1868)
백진수 정려(진석. 1832-1906) 백진수 정려(진석. 1832-1906)
백낙중 정려(인숙. 1883-1929) 백낙중 정려(인숙. 1883-1929)

전주 학인당의 또 다른 특색은 국악인과 예술인을 위한 열린 공간이었다.
학인당의 건립자인 인재 백낙중은 국악과 소리를 아껴 전주감영과 전주부에서 내려오던 대사습경연이 조선조말 중단된 것을 안타깝 여겨 본채의 넓은 대청을 판소리공연에 가장 완벽한

공연장으로 제공, 국악인들을 초청하여 공연을 베풀고 후원하여 전주국악과 판소리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였다.
또한 그의 아들인 백남혁 역시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일제강점기에 국악인과 예술인들에게 공연을 베풀어 교류 장소로 제공하고 후원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전라북도와 전주시 중요행사의 만찬 행사장 및 영빈관으로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백범 김구선생 등의 주요인사들이 전주 방문시에 숙소로 제공되기도 하였다.
전주반탁투쟁위원회 회장이었던 백남혁은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였던 인연으로 백범 김구선생의 전주 방문시에 학인당을 숙소로 제공하고 국민회 전주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해공 신익희선생이 머물던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2008년 건립 100주년을 맞이한 학인당은 이제 “학인당 제2의 변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선대 조상님들의 뜻을 따라 학인당을 전통예술문화의 공간으로 되돌리고자 2008년 1월 사랑채를 복원하여 차문화공간인 ‘학인당선다원’을 열었으며 6월초에는 별당채를 보수하여 고택체험관인 “진수헌”을 열어 개방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본채와 뒷채, 솟을대문채를 보수하여 본격적인 전통문화체험장으로 문화예술 공연장과 다도시연 등의 행사를 상설하고 고택에서 보존되고 있는 유물을 정리하여 전시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2009년 8월 현재, 기존 사랑채의 차문화 공간이었던 선다원은 예지헌이라는 문화체험숙박공간으로 탈바꿈하여, 학인당 본채대청을 선다원의 공간으로 재구성하였다. 유물전시공간으로는 본채 다락방을 전시공간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본채의 큰방과, 머릿방은 각각 ‘백범지실(白凡之室)’, ‘해공지실(海公之室)’이라는 이름을 붙여 숙박체험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본채 큰방 백범지실의 명칭은 김구(金九. 1876. 7. 11~1949.6.26)선생이 학인당 본채 큰방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며, 해공지실 역시 신익희(申翼熙. 1892.6.9 -1956.5.5)선생이 이곳에서 머물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인들에게 제공되는 숙박공간인 진수헌과 예지헌과는 달리 이 두 곳은 진정으로 전통한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누고 체험하고자 하는 인사들에게 개방하고자 한다.

김구선생 방문 기념사진 김구선생 방문 기념사진

삼대에 걸쳐 효자문을 하사받은 집안으로 일제강점 시기에는 전북과 전주의 판소리 장을 열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백범 김구 선생 등 정보요인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던 역사와 문화가 공존했던 학인당은 이제 옛 선조들의 뜻을 잇기 위해 부지런히 경주하고 있다.

※ 참조 : 전주문화원, 「우리전주 문화유산」, 1998
전주문화재단 학인당 소개자료.

해공 신익희 선생 방문기념 해공 신익희 선생 방문기념
본채 서쪽으로 보이는 안채 본채 서쪽으로 보이는 안채
학정 백남혁 선생대 여가족(종부, 며느리, 손녀 등) 학정 백남혁 선생대 여가족(종부, 며느리, 손녀 등)
문화와전통
예술인들의 안식처 학인당

학인당은 인재(忍齊) 백낙중(白樂中, 1882-1930)선생이 부친 백진수(白晋洙, 1832-1906)어른으로부터 물려받은 대지에 당시 초가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을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자인 백남혁(白南赫, 1905~1981)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만석꾼의 재산보다는 자자손손 수 백년을 물려줄 큰 저택을 짓기로 결심하고 당시 고종황제의 측근무관이자 형님이었던 백남신과 상의하여 고종황제의 허락을 받고 궁중의 일류 목수 들을 투입하여 궁중양식의 학인당을 건립할 수 있었다. 2,000여평의 대지에 무려 2년 8개월의 공사기간을 가졌던 대공사로 투여 인력이 연 4,280명에 총공사비가 4,000석(8000가마)이나 들었다. 이는 당시 서울의 안국동윤보선가와 더불어 궁중양식을 더한 한말 상류가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체적인 가옥의 형태는 전통적인 팔작지붕의 한옥양식을 사용하였지만 각 채의 출입문과 내부공간은 서양식 건축기술을 혼합한 형태였다.

본채전경 본채전경

특히 학인당의 본채는 전통한옥 안채와 부속건물, 연못과 정원, 우물 등으로 구성하여, 별장형식이 가미된 살림집의 복합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어 더욱 미학적인 특색이 있다.
이렇게 대저택을 지었던 학인당의 주인 인재 백낙중 선생은 예술을 즐겨하였다. 특히 국악과 소리를 아끼어 전주감영과 전주부에서 내려오던 대사습경연이 조선조말 중단된 것을 안타까워하여 국악인들을 초청하여 공연을 베풀고 후원하는 장소로 학인당의 가치를 더하였다. 본채건물의 구조역시 당시 판소리 공연을 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천장은 7개의 들보를 사용한 '칠량(七樑)집'으로 거의 2층 높이에 가깝게 지었다.본채 가운데에는 공연이 이루어졌던 대청마루가 있다. 대청은 전면과 후면에 유리사분합문을 설치하였고, 대청 좌우에는 방이 있어 공연 시에는 문틀을 제거하여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다. 또한 대청 전면과 후면에 설치된 사분합유리문을 들어 올리면 각각 1칸 크기의 툇마루 공간까지 확보되었다. 이렇게 하면 약 100여명이 판소리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수 있었다고 한다. 백낙중 선생의 이러한 노력은 전주 학인당을 판소리 공연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본채 대청은 국악공연과 연회장으로 쓰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여 더욱 많은 예술인들의 교류의 장이 되었다.

본채 전면 통선창에서 내려다본 정원 본채 전면 통선창에서 내려다본 정원

1930년경 인재공이 돌아가신 후 장자인 백남혁 선생은 유학을 마치고 학인당으로 돌아와 문학과 예술활동에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학정 백남혁은 스승이었던 전북 서도사(書畵史)의 정신적 지주 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선생을 모시고 효산선생이 창설한 한묵회(翰墨會)를 중심으로 근대서화가 조기석(趙沂錫), 유당 김희순(金熙蕣), 김태석(金台錫), 최규상(崔圭祥), 송명회(宋明會), 김근진(金瑾鎭), 이순재(李舜載) 등과 교류 하면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력을 바탕으로 예술인들을 적극 후원하였다. 또한 친구로는 한국화가로 청전(靑田) 이상범, 금추(錦秋) 이남호, 소정(小亭) 변관식, 묵로(墨鷺) 이용우, 의재(毅齋) 허백련 등을 들 수 있다. 소리꾼 및 국악의 인사로는 전동에 행원이란 기방을 운영한 남전(藍田) 허산옥을 중심으로 하여 김소희(金素姬), 박녹주(朴綠珠),김연수(金演洙), 박초월(朴初月) 등이 일제치하의 어려운 시대를 학인당을 주요무대로 삼아 교류하였다.

판소리공연이 펼쳐졌던 본채 대청마루 판소리공연이 펼쳐졌던 본채 대청마루
본채전면 유리문을 열면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 등의 공연을 관람 본채전면 유리문을 열면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 등의 공연을 관람
큰방에서 바라본 대청 큰방에서 바라본 대청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는 전라북도와 전주시 중요행사의 만찬 행사장 및 영빈관으로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였던 인연으로 전주반탁투쟁위원회 회장이었던 백남혁은 백범 김구선생 등의 주요 인사들이 전주 방문시에 본채를 숙소로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국민회 전주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해공 신익희선생이 학인당을 찾아와 머물던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판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의 공연장이었으며, 해방 전후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사들이 다녀간 역사적 공간인 학인당은 최근 전주시와 전라북도의 협조 하에 “학인당 제2의 변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종손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었지만 백창현씨는 선대 조상들의 뜻을 따라 학인당을 전통예술문화의 공간으로 되돌리고자 2008년 1월 사랑채를 차문화체험관인 ‘학인당 선다원(禪茶苑)’으로 개방하였다. 그리고 최근 본채가 보수됨에 따라 사랑채를 예지헌(禮智軒)이라는 한옥체험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선다원의 역할을 본채 대청에서 이루도록 하였다. 또한 별당채 공간 역시 ‘진수헌(眞修軒)’이라는 고택체험관으로 개관하여 일반인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학인당은 그 동안 여러모로 부식된 본채 건물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고택주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통문화체험공간으로 발전시켰으며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전통문화 공유와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본채 보수공사이전 사랑채를 선다원으로 활용함 본채 보수공사이전 사랑채를 선다원으로 활용함
보수공사 이후 숙박체험공간인 예지헌으로 변화 보수공사 이후 숙박체험공간인 예지헌으로 변화
예지헌 대청 예지헌 대청
진수헌전경 진수헌전경
진수헌 내부 진수헌 내부
학인당의 정원

학인당의 또 다른 특색은 고택에 마련된 정원에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상류가옥에서 마당과 정원을 가꾸고 있다. 소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들과 많은 꽃들로 정원을 장식하고 큼직한 돌로 주변을 두르고 연못을 배치하여 미학적인 느낌을 주는 정원은 전통적인 한국식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색은 학인당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곳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정원에 마련된 ‘땅샘’에 있다. 보통의 샘은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는 우물형태를 이룬다. 하지만 학인당 마당에 조성된 샘은 비정형의 연못 한편에 마련되어있다. 사람이 걸어서 내려갈 수 있는 돌계단을 만들어 샘에 이를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건축당시에 우물이었던 자리에 돌을 쌓아 땅샘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한 여름에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장고 대용으로 사용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물맛이 좋다.

정원 정원
학인당 정원 학인당 정원
땅샘 땅샘
땅샘에서 본 학인당 현판 땅샘에서 본 학인당 현판
가옥구조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위치한 학인당은 조선 말기에 건립된 상류가옥(上流家屋)으로 전주고도(全州古都) 한옥보존지역(韓屋保存地域)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이다. 당시 일류 도편수(都片手)와 목공(木工) 등 연인원 4,280명이 압록강, 오대산 등지의 목재를 사용하여 2년 6개월에 걸쳐 건축하였고 총공사비는 백미(白米) 4,000석(石)이 투입되었다.

학인당은 건축 당시에는 99칸집의 규모로 현재 전하는 본채, 별당채, 대문채, 사랑채, 뒷채, 창고채 외에도, 지금은 매각되거나 없어진 안채와 안사랑채, 행랑채, 사당, 정자, 별채2동, 후원 등을 합하여 2000여 평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조선 말 상류층 가옥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학인당은 전통적인 사대부 양반집의 전통한옥 형식이 아닌 개화기의 근대 한옥 중 지방부호들의 개량형 한옥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구조에 있어서는 전통한옥의 형태를 취하였으나 건물외면에 유리 여닫이문으로 둘러있으며, 내부 생활공간의 배치는 양옥의 형태인 서재, 세면장, 목욕탕, 화장실 등을 마루로 연결하여 내부에 설치, 동선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전기시설 및 수도시설을 도입하였다.

본채 구조는 ‘ㄱ‘자 형태의 '칠량(七樑)집'으로 7개의 들보를 사용해서 2층 집에 가까울 정도로 천장이 높게 되어 있다. 가운데에는 가로·세로 6m 크기(4칸)의 대청마루가 있는데, 마루 좌우의 문을 들어올리면 좌측의 4칸 방과 우측의 2칸 방까지 공간이 확대되는 구조이다.
창호는 방에는 덧문(여닫이), 창호지문, 갑창(미닫이) 등 두꺼비집의 삼중구조이고 대청과 큰방은 팔분합들문(여닫이)과 팔분합창호지문(미닫이)으로 구성되어 있어 행사시에는 개방하여 넓은 공간구성을 추구하였다. 대청은 전면과 후면에 유리사분합문을 설치하여 마루와 공간을 구분하여서 평상시에는 접객의 장소로 사용하고 행사시에는 문지방을 분리하여 문턱을 없애서 판소리 등 국악공연과 연회장으로 큰대청을 활용하였다. 본채의 전면은 전부 창을 냈으며 지붕의 정면에 돌출시킨 박공면에 창을 부설하여 다락의 채광과 환기를 도모한 2층 구조의 집이다. 꺾이는 부분의 팔작지붕 처리가 흥미로우며 추녀와 사래 끝 등에는 동판(銅板)으로 싸서 풍우(風雨)를 막게 하였다. 내부는 복도식으로 연결되어 개방적이며 합리적인 공간구조를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솟을대문의 현 위치는 지금보다 전방으로 5m가량 진출했었으나, 1935년 도시계획에 따라 신작로 구획사업으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지금 솟을대문의 위치는 본채를 향하는 중문이 사랑채와 함께 이어져 있는 형태였으나 솟을대문이 위치한 자리가 도시계획에 따라 제거됨에 따라 중문을 없애고 솟을대문을 사랑채와 연이어 자리하게 하였다. 솟을대문에는 한 사람 정도가 출입할 수 있는 작은 협문을 내었는데 이는 대문밖이 바로 외부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작은 협문을 통해 가옥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출입자가 항상 조심스럽게 이곳을 드나들기 위함이다.

솟을대문에는 백규방의 손자이며 백진석의 아들인 백낙중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당시 명필 성당(醒堂) 김돈희(金敦熙)가 쓴 ‘효자승훈랑영릉참봉백낙중지려(孝子承訓郞英陵參奉樂中之閭)’의 정려를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걸어 놓은 현액이 있다.
본채 후면 동북측에 자리한 별당채 역시 1936년에 이축한 것이며 이곳에서는 여자 손님들이 머물렀다. 별당채 건물의 이름은 진수헌이라 지었는데 현재 전통문화체험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대문채와 면해있는 사랑채는 기존 선다원의 모습에서 한옥체험공간인 ‘예지헌(禮智軒)’으로 내부구조를 꾸몄다. 남자 손님이 주로 머물렀던 동사랑채는 1935년에 허물었다고 한다.

학인당의 정원에는 건축당시 우물이었던 자리에 돌을 쌓아 만든 땅샘이 있는데 한여름에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여 냉장고 대용으로 쓰였다.

학인당 전체 평면도 학인당 전체 평면도
학인당 본채 평면도 학인당 본채 평면도
학인당 본채 정면도 학인당 본채 정면도
솟을대문 열린 모습 솟을대문 열린 모습
솟을대문 닫힌 모습 솟을대문 닫힌 모습
솟을대문 좌측 하단의 협문 솟을대문 좌측 하단의 협문
학인당 본채 전경 학인당 본채 전경
학인당 현판 학인당 현판
본채 전면 다락방 박공면 통선창 본채 전면 다락방 박공면 통선창
전면 통선창 내부 전면 통선창 내부
본채 동측면과 배면 본채 동측면과 배면
추녀와 사래 끝을 동판으로 두름 추녀와 사래 끝을 동판으로 두름
본채 서측 머리방 전면 아자난간 본채 서측 머리방 전면 아자난간
본채 서측 우물과 뒷채 본채 서측 우물과 뒷채
본채 내부
대청 천정과 대들보 대청 천정과 대들보
대청마루 대청마루
대청과 대청 앞 복도식 마루 대청과 대청 앞 복도식 마루
대청 앞 복도식 마루 대청 앞 복도식 마루
큰 방(백범지실) 큰 방(백범지실)
머리방(해공지실) 머리방(해공지실)
대청 사분합 유리문 대청 사분합 유리문
대청 사분합 유리문 후면 복도마루 대청 사분합 유리문 후면 복도마루
서재앞 복도, 복도 끝에서 좌측으로 돌면 세면장, 목욕실,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와 만남 서재앞 복도, 복도 끝에서 좌측으로 돌면 세면장, 목욕실,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와 만남
세면장, 목욕실에서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 세면장, 목욕실에서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
큰방 2층 다락방 입구 큰방 2층 다락방 입구
큰방 2층 다락방 큰방 2층 다락방
큰방 2층 다락방 광창 내부 큰방 2층 다락방 광창 내부
본채 내부 창호 구조(덧문, 창호지문, 갑창의 삼중 구조) 본채 내부 창호 구조(덧문, 창호지문, 갑창의 삼중 구조)
본채 내부 창호 구조(덧문, 창호지문, 갑창의 닫은 모습) 본채 내부 창호 구조(덧문, 창호지문, 갑창의 닫은 모습)
큰방 삼중문 큰방 삼중문
큰방 삼중문틀 큰방 삼중문틀
뒷방 자개붙박이장 뒷방 자개붙박이장
대문간채 대문간채
솟을대문 솟을지붕 솟을대문 솟을지붕
사랑채(예지헌) 사랑채(예지헌)
예지헌 체험공간 예지헌 체험공간
진수헌 전면 진수헌 전면
진수헌 남서측 전경 진수헌 남서측 전경
진수헌 대청 상량 진수헌 대청 상량
진수헌 복도마루 진수헌 복도마루
진수헌 내부 체험공간 진수헌 내부 체험공간
진수헌 대청 진수헌 대청
아기자기한 장독대 아기자기한 장독대
학인당 정원 학인당 정원
문화유산
학인당현판 학인당현판

학인당 현판은 인재 백낙중 선생의 장남인 백남혁이 부친을 기리기 위하여 아버지의 호 가운데‘인(忍)’자를 합하여‘학인당(學忍堂)’이라 정한 것이다.

학인당의 솟을대문 학인당의 솟을대문

백규방(백방진)의 손자이며 백진석(백진수)의 아들인 백낙중 또한 고종때 효자로서 당시 명필 성당(醒堂) 김돈희(金敦熙)가 쓴 “효자승훈랑영릉참봉백낙중지려(孝子承訓郞英陵參奉白樂中之閭)”의 현액을 하사받아 학인당의 솟을대문에 걸려있다. 삼대에 걸쳐 효자문을 하사받은 효의 집안이다.

요강 요강

옛날, 방에 두고 오줌을 누기 위한 간이 화장실의 역할을 했던 것. 그릇의 재실은 놋쇠나 양은, 사기 등으로 작은 단지모양으로 만든다.

말총갓 말총갓
말총갓과 삼베갓 말총갓과 삼베갓

예전에, 어른이 된 남자가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로 대를 쪼개 가늘개 만든 대오리로 갓양태와 갓모자를 만들어 붙인 위에 갓싸개를 바르고 먹칠과 옻칠을 한 것인데 갓끈을 달아서 쓴다.

망건함과 망건 망건함과 망건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머리에 두른 둘레 10cm 가량의 그물처럼 생긴 물건을 뜻한다.

목기 사각 쟁반 목기 사각 쟁반

목기로 만든 전통생활물품 중 하나로 음식을 나르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문방사우함 문방사우함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를 보관하는 상자이다.

양치용 물그릇 양치용 물그릇

학인당 선대 어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양치를 할 때 양치한 물을 뱉어낸 그릇이라고 한다.

보통 부녀자들이 예복을 입을 때에 머리에 얹던 관의 하나로써, 위는 대개 여섯 모가 지고 아래는 둥글며, 보통 검은 비단으로 만들고 구슬로 꾸민다.

토기시루 토기시루

시루는 떡이나 쌀 따위를 찌는 데 쓰는데 사용한 것으로 둥근 질그릇의 형태를 가진다. 모양은 자배기형태라고 불리는데 이는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모양이며 바닥에는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다.

향로 향로

향을 피우는 자그마한 화로를 뜻하며 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였다. 연대는 알 수 없다.
향로는 만드는 재료와 모양이 여러 가지이며, 규방에 쓰는 것과 제사에 쓰는 것으로 구분한다. 향정(香鼎) 또는 훈로(薰爐)라고도 한다.

신선로 신선로

상 위에 놓고 말은 장국을 끓이는 용도로 사용한 그릇을 뜻한다. 재질은 구리나 놋쇠 따위로 만들고 굽이 약간 높은 대접 비슷하게 만든 것이다. 가운데 숯불을 담는 통이 있고, 통 둘레에 여러 가지 음식을 담아서 끓인다.

갖신 갖신

약 100여년 이상 되었다고 전해오는 갖신이다. 갖신은 가죽으로 된 우리 고유의 신을 통틀어 말하는데 남성용과 여성용이 있어 달리 만들었다. 종류로는 황혁리(黃革履), 목화(木靴), 흑피혜 따위가 있다

고택여행

학인당은 궁중건축양식을 민간주택에 적용한 67평의 한옥으로 서울 북촌 윤보선 고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가대형한옥이다.

250여년의 전주토박이로 삼대에 걸쳐 효자문을 하사받은 효의 집안이며 경복궁 중건시에 거금을 헌납하니 고종황제께서 그 공을 인정하여 99칸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윤허한바, 궁궐 건축에 참여한 도편수와 대목장으로 하여금 1905년 착공 1908년의 2년8개월에 걸쳐 총공사비 4,000석(8000가마)을 들여 압록강과 오대산의 최고급 목재로 연인원 4,280명을 투입하여 궁중양식의 학인당과 2000여평ㆍ99칸 저택을 건립 하였으나, 현재는 대지 520평 에 학인당과 부속건물 6채가 남아있고 특히 학인당(본채)는 100년이 지나도록 옛 모습 그대로 강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채 전주한옥의 자존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백낙중은 국악과 소리를 아끼어 전주감영과 전주부에서 내려오던 대사습경연이 조선조말 중단된 것에 안타까워 본채의 대청을 판소리공연의 가장 완벽한 공연장으로 국악인들을 초청하여 공연을 베풀고 후원하여 전주국악과 판소리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였다.

백남혁은 본채의 당호를 부친(백낙중)의 호 인재의 가운데 글자인 忍자를 넣어 학인당(學忍堂)이라 명명하고,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일제강점기에 국악인과 예술인들에게 공연을 베풀어 교류 장소로 제공 및 후원하였다. 해방 후에는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였던 인연으로 전주반탁투쟁위원회 회장이었던 백남혁은 백범 김구선생의 전주 방문시에 학인당을 숙소로 제공하고 국민회 전주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해공 신익희선생이 머무시던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인재공의 고손인 백광제씨는 전주시와 전라북도의 협조하에 “학인당 제2의 변환기”를 준비하여 선대 조상님들의 뜻을 따라 학인당을 전통예술문화의 공간으로 되돌리고자 본채(차문화체험관과 고택체험관)와 사랑채(예지헌, 고택체험관), 별당채(진수헌, 고택체험관)를 2009년 현재 개방하였다. 학인당은 친환경적인 문화재가옥으로 발돋움 하기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앞으로 문화예술 공연장 및 전시공간 등 가옥을 통해 다양한 문화접목 콘텐츠로 변화와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 참조 : 「전주문화재단」 학인당 소개자료

학인당 진수헌(眞遂軒.별당)에서의 한옥숙박 이용안내
- 문의전화 : 063-284-9929 (문화공간학인당)
- 학인당 블로그 : http://cafe.naver.com/hakindang.cafe
- 문의메일 : hakindang@naver.com
- 주 소 : (우)560-070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105-4번지 문화공간학인당

체험 프로그램 마당(봄ㆍ가을만 가능)
체험명
일시
체험시간
최소인원
최대인원
체험비용
달빛아래 명상차 즐기기
1주전 예약
1시간
10명
30명
10,000원
전라도소리 한가락
2주전 예약
1시간
20명
30명
10,000원
전통춤배우기
2주전 예약
1시간
20명
30명
10,000원
본채 대청 (차 문화 체험관)
체험명
일시
체험시간
최소인원
최대인원
체험비용
다례체험(잎차우리기)
상시
30분
제한없음
20명
5,000원
한ㆍ중ㆍ일 전통차 즐기기
상시
1시간
제한없음
20명
10,000원
오색다식 한지에 담아 선물하기
1주전예약
1시간
제한없음
20명
10,000원
부채ㆍ선추 만들기
1주전예약
1시간 30분
10명
20명
10,000원

전주 전통문화센터
☎ 063-280-7000, 063-280-7001

본채 대청 선다원 본채 대청 선다원
대청(선다원) 내부 다실 대청(선다원) 내부 다실
한옥체험관 진수헌(별당) 한옥체험관 진수헌(별당)
진수헌 누마루 다실 진수헌 누마루 다실
진수헌(한옥체험관) 내부 진수헌(한옥체험관) 내부
예지헌(한옥체험관) 예지헌(한옥체험관)
예지헌 내부(대청) 예지헌 내부(대청)
학인당 샘물 학인당 샘물

학인당 본채를 지을 때 우물 이었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석축을 쌓아 땅샘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