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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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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당 정문 학인당 정문

중요민속자료 제227호 지정

지정일 : 1991년 8월 22일

소유자 : 김준식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산28-1

건축시기 : 조선시대

경북 안동 군자마을에 위치한 후조당(後彫堂)은 조선조 명신이자 목민관(牧民官)으로 활약한 운암(雲巖) 김연(金緣, 1487~1544)의 아 들로, 선조 때 활동했던 김부필(金富弼)(1516∼1577)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김부필의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언우(彦遇), 호는 후조당, 시호가 문순공(文純公) 이다. 후조당이란 당호(堂號)는 그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퇴계(退溪)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성리학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나, 정계에는 뜻이 없어 관직을 사양하고 응하지 않았다. 순조 때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문순공(文純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문집 4책이 남아 있다. 예안입향조(禮安入鄕祖)인 김효로(金孝盧, 1455∼1534)가 조부가 된다.

후조당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오천종택(烏川宗宅)에 부속된 별당(別堂)으로 임진왜란 전에 창건되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다. 종택(宗宅)의 정침(正寢)은 근년에 중건(重建)되었고 후조당과 사당만이 옛 격식(格式)을 유지하고 있다. 후조당의 형태는 ‘ㄱ’자로 꺾여 있으며 세로 2칸, 길이 4칸이며 방 2개와 6칸 대청으로 이루어졌다. 후조당 현판은 김부필의 스승인 이황의 친필이다.

오천 군자마을 전경 (「군자마을-외내ㆍ光山金氏 略史」, 光山金氏 禮安派 崇遠會 자료집) 오천 군자마을 전경 (「군자마을-외내ㆍ光山金氏 略史」, 光山金氏 禮安派 崇遠會 자료집)

원래의 위치는 예안면 오천동이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4년 광산김씨 예안파가 20여 대(代)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세거(世居) 해 온 외내에 있었던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그 밖의 고가들을 이곳으로 옮기는 가운데 후조당도 함께 이건 되었다. 그 일대를 군자리 또는 군자마을이라 부르고 관련 건축문화재와 조경 일대를 오천유적지라 한다.
이곳을 군자리라 칭하게 된 이유는 예안에 정착한 입향 시조인 김효로 이후 3대만에 광산김씨 문중은 명문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는데 이후 세칭 ‘오천 칠군자’가 배출되었다. 그들은 후조당 김부필(1516~1577), 읍청정 김부의(1525~1582), 산 남 김부인(1512~1584), 양정당 김부신(1523~1566), 설월당 김부륜(1531~1598), 일휴당 금응협(1526~1589), 면진재 금응훈(1540~1616) 등이다. 이들은 모두 예안 오천 출신으로 김효로의 친손이나 외손들이었는데, ‘군자리’라는 마을 이름도 이들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한강(寒剛) 정구(鄭逑)가 안동 부사로 재임시에 오천 마을을 방문한 다음 “한 집안 식구로서도 다 착하기 어려운 법인데 오천 마을은 주민들 모두가 군자(君子) 아닌 사람이 없구나” 하고 감탄하였다고 하여, 그 이후부터 오천을 ‘군자리’라고 일컫게 되었다 한다. 이들은 모두 퇴계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여 높은 학식과 덕행으로 당대를 풍미하였고 후에 낙천서원(1868년에 훼철됨)에 제향되었다. 7군자 중 2명은 봉화금씨이다.

오천군자리(과거, 수몰전) 오천군자리(과거, 수몰전)

이 유적지 내에 있는 옛 건축물들은 광산김씨 예안파 문중에서 대대로 유지ㆍ보존해 온 종택, 묘우(廟宇), 정자, 강당 등으로 지난 1974년 안동댐이 건설될 때 원지점으로 약 2km 떨어진 곳으로 집단 이건 되어 아쉽기는 하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안배하였다. 행정구역은 수몰 당시에는 안동군 예안면 오천동이었으나, 현재는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이다. 지금은 주변에 위치한 국학진흥원, 도산서원 등과 더불어 안동의 주요 관광지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건된 건물 중 탁청정(중요민속자료 제226호)과 후조당(중요민속자료 제227호)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탁청정 종택(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경상북도유형문화제 제27호), 그리고 침락정(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40호)은 각각 지방문 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후조당 이건을 위한 건물해체 때 대청의 합각하부(合閣下部) 천장에서 안동 낙향조(落鄕祖)인 18세 김무(金務)로부터 30세 김숙(金塾) 에 걸쳐 모아둔 희귀(稀貴)한 고서(古書) 및 문집류(文集類)와 고려말기의 호적(戶籍)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교지(敎旨), 호적(戶籍), 토지문서(土地文書), 노비문서(奴婢文書), 분재기(分財記), 각종서간문(各種書簡文) 다수가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군자마을에는 20여 대 600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헌과 유물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고려 초기의 호구단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전통요리책으로 선비 대갓집의 음식문화를 적은 「수운잡방(需雲雜方)」, 임진왜란 때 의병장의 진중일기인 「향병일기(鄕兵日記)」, 전투지휘관의 복무지침서인 「행군수지(行軍須知) 등은 군자리의 자랑이다.
현재 광산김씨 가문의 후조당 및 군자마을의 문화유산은 정부지원을 통해 ‘숭원각(崇遠閣)’이라는 현대식 유물전시관을 지어 일반 국민 들에게 관람 및 전시를 하고 있으며 우수한 문화재들을 훌륭히 보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택의 역사와 함께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지켜온 군자마을과 후조당은 광산김씨 가문의 많은 투자와 노력을 통해서 다시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명가 마을인 안동에서도 주요 관광지로써 거듭나고 있다.
후조당 18대 종손이자 현재 안동문화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준식 원장은 안동 군자마을을 찾는 시민들에게 ‘전통문화 아카데미 교육’을 실시 하는 등 문화역사교육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는 옛 선인들이 살았던 건축물에 대한 경외감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함께 전수한다는 차원에서 군자마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방향을 기대할 수 있다.

후조당(後彫堂) 후조당(後彫堂)
후조당 현판 (이황 친필) 후조당 현판 (이황 친필)
후조당에서의 전통문화 아카데미 교육 후조당에서의 전통문화 아카데미 교육
문화와전통
군자마을 ‘안동풋굿축제’

현재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위치한 군자마을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광산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살아온 곳이다. 1974년 안동댐이 건설될 때 원지점으로부터 약 2km 떨어져 현 위치로 이건되었지만 당시 수몰이전 ‘외내’에서의 종택, 묘우(廟宇, 사당), 정자, 강당 등의 대다수 건축문화재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여 지켜나가고 있다.

군자마을은 비록 예전 마을이 갖고 있던 정취는 없어졌지만 다수의 건축물들이 국가 및 지방 주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운잡방을 비롯한 귀중한 고문서와 전적들이 많이 남아있어 문화와 역사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와 같은 군자마을의 문화?역사자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여 문화관광부에서는 2004년 대한민국 제1호 문화?역사마을로 군자마을을 지정하였으며, 안동시에서는 군자리「문화?역사마을가꾸기」추진위원회를 설립하여 현 군자마을의 후손들과 협력하여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관광자원화 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2004년부터 부활한 ‘군자마을 풋굿축제’이다. 현재 후조당의 18대 종손이자 안동문화원장인 김준식씨는 과거 ‘풋굿’의 전통을 복원할 것을 기획하여 전국에서 유일한 특색을 갖춘 행사로 발전시켰다.

풋굿이란 옛부터 선조들이 여름 농한기가 지나고 음력 7월 중순쯤 길일을 택해서 마을주민이 함께 나누어 술과 안주, 떡, 삶은 감자 등 먹거리를 마련하여 정성껏 차려진 음식과 함께 풍물놀이와 다양한 놀이를 통해 잔치를 벌인 전통적인 행사였다. 이를 ‘풋굿’ 또는 ‘호미씻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농민들이 휴한기에 벌이는 농민들의 축제로 1년 중 가장 큰 명절의 하나였던 풋굿은 두레가 소멸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군자마을과 안동시에서는 이처럼 사라져 가는 미풍양속을 계승하고 지역의 음식과 식품을 대내·외에 알리는 행사로 전국 유일의 특색 있는 풋굿축제를 기획하게 되었다.

2008년 제5회 ‘안동풋굿축제’ 프로그램
구분
시간
행사내용
담 당
식정공개행사
10:00~10:10
풍물놀이
와룡풍물패
개회식
10:10~10:45
개회식
-
식후공개행사
10:45~11:45
사물놀이,민요경창
효사랑 국악공연단
본행사
11:30~16:00
풋굿먹기
남.녀 새마을회
11:45~14:00
풀베기 및 꼴따먹기
팔씨름대회
면.보존회
14:00~15:30
윷놀이대회
제기차기 대회
면.보존회
15:30~17:30
면민노래자랑
진행자
17:30~18:00
어울림 한마당
전체 참석자
폐회식
18:00
폐식선언
보존회장
부대행사
09:00~18:00
농ㆍ특산물전시판매 및
단호박 시식회
와룡농협
햇살"애"단호박작목반

2004년 8월 13일 역사와 전통에 아울러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군자마을에서 제1회 ‘안동풋굿축제’가 안동문화원 주최, 와룡면 주관으로 개최되었고 이후 지속되어 2008년에는 안동시가 주최하고, 와룡면과 안동풋굿축제보존회가 주관하는 제5회까지 점차 축제의 규모와 내용이 발전하여 안동의 대표적인 지역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사물놀이, 민요경창, 풀베기와 꼴따먹기, 팔씨름, 제기차기, 윷놀이, 노래자랑, 풋굿먹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와룡 면민들의 자발적인 행사 참여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면민 화합의 장을 함께 도모하고 있어 더욱 큰 의의를 갖는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를 함께하기 위해 안동시민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 앞으로 행사의 규모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수려한 산천과 옛 사대부촌의 정취가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오천리 군자마을에서 여름 농한기 길일을 택해서 온 동민이 모여 성의껏 술과 안주, 떡, 햇감자 등을 가져와서 풋구를 먹으며, 갖가지 민속행사를 통하여 공동체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시작된 ‘풋굿축제’. 이제는 사려져 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리는데 좋은 교훈이 되고 있으며 와룡 면민들의 자발적인 행사 참여를 통하여 면민들의 화합의 장으로 계승, 공동체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군자마을에서는 ‘풋굿축제’ 외에도 지역 주민들 중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자긍심을 높이고 젊은이들에게는 효친사상을 고양시키기 위한 ‘기로연’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후조당 18대 종손이신 김준식 안동문화원장은 군자마을 주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전통방식의 기로연 행사를 거행하여 어르신을 공경하는 전통문화와 한국인들의 정신문화를 보여주고자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로연을 개최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기존 안동문화원 주최에서 2009년부터는 와룡면민들이 주체가 되어 더욱 진정성을 지니는 행사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군자마을은 이와 같이 전통문화체험과 더불어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효친사상을 함께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선 最古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조선 最古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형태 및 내용
이 책은 1500년대 초에 저술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서(調理書) 중의 하나이다. 수운잡방은 탁청공 김유(1481-1552)공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상하권 두권으로 나누어 술 담는 법을 비롯한 108가지 다양한 음식 만드는 법을?기록해 놓고 있어 500년 전 상류계층이었던 안동 사림계층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다. 책 제목인 수운잡방(需雲雜方) 격조있는 음식(需雲)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雜方)을 뜻한다.
이 책은 전체가 표지를 포함해서 25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9.5cm, 세로 25.5cm이다. 표지에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 적혀 있으며 속표지에는 탁청정유묵(濯淸亭遺墨)이라고 적혀 있다. 서문과 목차가 따로 없는 한문으로 된 필사본이다. 본문은 23매이며 마지막 장은 이면에 부착되어 있고 본문도 전편 16매와 후편 7매로 나누어진다.
종이의 질은 아무런 색이 없는 저지(楮紙, 닥나무로 만든 종이)로 만들어져 있으며 좀이 좀 슬어 있고 색깔이 갈색으로 약간 변해 있으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현재 수운잡방은 설월당 종택에서 보관하고 있다.

저 자
이 책의 저자는 글자체 및 필체로 볼 때 2인의 저술로 생각되는데 상당한 시차를 두고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저자는 책의 속표지에 적힌 바대로 탁청정 김유(濯淸亭 金綏, 1481년~1522년)로 추정된다. 김유는 광산김씨 오천리 입향조인 김효로(金孝盧)의 아들로 1525년(중종20)에 지방 과거인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나 형님인 관찰사 김연(金緣)을 대신하여 고향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다. 성품이 호탕하고 분방하였으며 무예(武藝)에 뛰어났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것(賓客)을 좋아하여 집 가까이 탁청정을 짓고 예안(禮安)고을을 지나는 나그네를 정중하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인품을 갖춘 그가 언제 수운잡방을 저술하였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1500년대 초반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한다. 두 번째 저자는 책의 내용만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다만 일부 향신료는 사용된 기록이 있으나 고추는 사용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가 만들어진 1776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내 용
수운잡방은 총 121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글자체 및 필체에 따라 구분해 볼 때 상편(1~86항)과 하편(87~121항)으로 나눌 수 있다. 상편에는 술 만드는 법이 41항, 국수 만드는 법이 1항, 식초를 만드는 법이 5항, 김치를 담그는 법이 14항, 고리를 만드는 법 1항, 장을 담는 법이 7항, 메주를 담는 법이 2항, 과자를 만드는 법이 1항, 장채 2항, 씨에 대한 것이 5항이며 기타 조리법도 7항이 있다. 하편에는 술 만드는 법이 18항, 국수 만드는 법이 1항, 김치 담그는 법이 3항, 과자를 만드는 법이 2항, 그리고 기타 조리법이 11항이 있다.

조리별 내용

주류
주류에 관련한 내용은 상편에 41종과 하편에 18종 등 모두 59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중 양용주(釀容酒)가 10종, 가미주(加味酒)와 가향주(加香酒) 각각 1종이 있다. 내용을 보면 각각의 특징을 지닌 술을 만들기 위해 쌀을 이용하는 법, 누룩을 만드는 법, 술을 만드는 기간, 각 술의 특성 등이 각각 기술되어 있다.

초류
상편에 5항이 있는데 고리초, 사절초, 병정초, 창포초 등에 초 종류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제조법이 기술되어 있다.

김치
상편에 14항과 하편에 3항 등 모두 17항이 있는데 사용된 채소의 종류와 양념의 종류, 그리고 물의 사용법, 발효법, 김치를 담그는 시기 등 김치를 담그는 모든 사항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메주를 쓰고 장을 담그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상?하편에 모두 9가지가 설명되어 있다.

기타
이 외에도 국수를 빼는 방법, 과자를 만드는 법, 엿을 만드는 법, 음식을 저장하는 법, 다식을 만드는 법, 식혜를 만드는 법 등 다양하고도 독특한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중요성
수운잡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책으로 알려진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보다 앞서 편찬된 것으로 안동지역 요리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당시에 유포되고 있던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의 각종 요리서에 나오는 요리법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각종 요리서를 참고하여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요리관련 저서를 인용한 것이 아니라 각기 나름대로의 기술을 가미하고 항간에 나돌고 있는 속방(俗方)을 수록하기도 하였으며 양반가문에서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토착화된 조리법도 기록되고 있어 요리법의 변천이나 용어의 변화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음식문화에 대한 의식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구절판 구절판
다식다 다식다
약과 약과
족편 족편

※ 참조 : 『외내에서 군자리까지』, 「문화?역사마을가꾸기」 안동시추진위원회

가옥구조

중요민속자료 제227호로 지정된 후조당(後彫堂)은 광산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선조 때에 후조당 김부필이 최초 건립했다. 종택은 별당·정침·사당·재사·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택(宗宅)의 정침(正寢)은한일자 여덟칸 집으로 동쪽에 두 칸 방이 하나 있고 서쪽에 방 한 칸이 있다. 근년에 중건(重建)되었고 후조당(後彫堂)과 사당(祠堂)만이 고격(古格)을 유지하고 있다. 후조당은 정침 왼쪽 담장 안에 위치한다.

후조당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의 건물로 왼쪽에 6칸의 대청을 두었다. 6칸 대청의 동쪽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튀어나온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형식으로 여말 선초의 양식으로 매우 오래되었으며 화려하다. 후조당은 평면이 ‘ㄱ'자형을 이루는 건물로 뒷면이 4칸이며, 좌우 측면이 2칸과 4칸이다. 잡석기단 위에 각주를 세워 만든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그러나 지붕을 잘 살펴보면 앞으로는 겹처마를 하고 있으나 뒷면은 서까래를 길게 뽑아 홑처마로 만들어 놓았다. 공간구성은 좌측에 겹마루로 6칸의 대청을 만들고, 대청과 접한 오른쪽에 2칸 크기의 방을 꾸몄다. 그리고 이 방의 전면과 접하여 1칸의 마루를 놓고, 마루 앞에는 다시 1칸의 온돌방을 꾸몄다. 대청은 우물마루로 꾸미는 머름을 설치하였는데, 뒷면에는 통머름으로 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으며, 눈썹반자를 달았다. 마루 전면의 각 칸에는 위로 들어서 열 수 있는 띠살4분합문을 달았고, 좌측면에는 중방과 하방 사이를 판벽으로 처리하고 쌍여닫이넌출문을 달았으며, 다른 1칸에는 쌍여닫이띠살문과 여닫이넌출문을 달았다. 대청과 온돌방이 접하는 각 칸에는 위로 들어 열 수 있는 넉살4분합문을 달고 걸쇠로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온돌방의 우측면에는 각각 쌍여닫이띠살문을 달았다. 온돌방 앞의 1칸 마루에는 우물마루를 놓고, 우측면에는 여닫이문을 내었다. 마루의 앞에는 1칸 크기의 온돌방을 놓았는데 구들이 높게 설치되어 있다. 이 방은 다른 곳보다 높게 만들어져 있는데, 방 전체를 돌아가며 마루를 만들었고, 마치 누각처럼 계자각 다리받침을 해 놓은 것이 상당히 특이하다. 온돌방과 마루 사이에는 출입문으로 여닫이띠살문을 놓고 온돌방의 전면과 좌우에는 쌍여닫이띠살문을 달았다.

정침으로 통하는 협문과 정문을 갖추었고 왼쪽에는 사당으로 통하는 신문(神門)이 있다. ‘후조당’이라는 현판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후조당 이건을 위한 건물해체시 대청의 합각하부(合閣下部) 천장 고서 및 문집류, 고려 말기의 호적, 조선시대의 호적·교지·토지문서·노비문서·각종 서간류 등 희귀한 전적류가 다수 발견되었다.

재사와 사당

후조당을 오르는 돌계단 좌측 평지에 위치한 재사는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시조인 농수 김효로와 그의 증손 근시재 김해를 모시는 재사이다. 재사는 사당에 모신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낼 때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종택의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一’자형 건물로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고사(창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ㄷ’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사당에는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시조인 농수 김효로와 그의 증손인 근시재 김해를 모시고 있다. 재사 뒤편 위쪽, 후조당 서북측에 신문(神門)을 지나 위치한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사당의 건물 앞에는 팔각기둥을 세우고 건물보다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퇴를 만들었다. 건물을 가로지르는 방목(榜木)이 기둥을 뚫고 나간 궤방집의 형식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양식이라고 한다. 측면에 난 정(井)자형 광창은 오래된 양식임을 증명해준다.

후조당을 오르는 계단 후조당을 오르는 계단
재사 넘어 후방에 보이는 후조당의 지붕과 처마 재사 넘어 후방에 보이는 후조당의 지붕과 처마
후조당 정문 후조당 정문
후조당 후조당
후조당 온돌방의 배면 후조당 온돌방의 배면
대청의 4분합문 대청의 4분합문
후조당 측면에 자리한 神門과 사당 후조당 측면에 자리한 神門과 사당
후조당 담장 아래에 위치한 재사 후조당 담장 아래에 위치한 재사
후조당 담장 후조당 담장
후조당 띠살문 후조당 띠살문
후조당 종택과 이어진 협문 후조당 종택과 이어진 협문
문화유산
숭원각 전시유물
각대(角帶) 각대(角帶)

중종조 관찰사 운암 김연(金緣)이 사용하던 관복의 각대, 벼슬아치가 예복에 두르던 띠이다.

풍잠 풍잠

갓이 넘어지지 않도록 망건 앞쪽에 꾸미는 반달 모양의 호박을 가르킨다.

향로(香爐) 향로(香爐)

향을 피우는 자그마한 화로를 뜻하며 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였다. 연대는 알 수 없다.
향로는 만드는 재료와 모양이 여러 가지이며, 규방에 쓰는 것과 제사에 쓰는 것으로 구분한다. 향정(香鼎) 또는 훈로(薰爐)라고도 한다.

광산 김씨 예안파 가문의 인장 광산 김씨 예안파 가문의 인장

광산김씨 예안파 가문의 인장으로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도교적 문양을 띠고 있다.

금관자(金貫子)와 주영(珠纓) 금관자(金貫子)와 주영(珠纓)

금관자는 중종조 관찰사 운암 김연(金緣)이 사용한 망건의 관자로 正二品, 從二品의 벼슬아치가 달았다. 주영 또한 중종조 관찰사 운암 김연이 사용한 것으로 구슬로 된 갓끈이다.

호패(號牌) 호패(號牌)

조선조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던 패 성명이다. 앞면에는 출생간지일이 새겨있으며 뒷면에는 관아의 낙인이 찍혀있다.

동경(銅鏡) 동경(銅鏡)

구리로 만든 거울. 연대 미상

놋숟가락과 놋그릇 놋숟가락과 놋그릇
연적(硯滴) 연적(硯滴)

선조들이 사용한 벼룻물을 담는 그릇

철궁시(鐵弓矢) 철궁시(鐵弓矢)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영남좌도 의병대장을 맡았던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 1555~1593)선생이 진중에 사용하던 철궁 화살.

침척(寢尺) 침척(寢尺)

가정에서 사용하던 자

전적 및 고문서
고신(告身) 고신(告身)

1544년(중종39) 김연(金緣)에게 발급된 고신(告身)으로 정월(正月) 6일 김연을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임명하는 사령장(辭令狀)이다.
김연(金緣, 1487~1544)은 김효로(金孝盧)의 아들로 후조당 김부필의 아버지이며, 김해(金垓)의 조부이다. 광산김씨 예안파 22대손으로 자는 자적?자유, 호는 운암?죽연이다. 1510(中宗5)년 생원시와 진사시를 거쳐 1519(중종14)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38년(중종33) 문과 탁영시에서 급제, 말년인 1544년 경주부윤으로 임명되기까지 강원도 관찰사, 승정원좌부승지, 병마첨절제사 등 문무?내외관으로 두루 역임하였다.
본 고신은 김연이 사망한 해에 발급된 것으로 동년 동월에 경주진 병마첨절제사로 임명된 고신과 더불어 김연의 마지막 관직 사령장이다.

추증교지(追贈敎旨) 추증교지(追贈敎旨)

1825년(순조 25) 자헌대부 이조판서겸 성균관제주 세자시강원찬선(資憲大夫 吏曺判書兼 成均館祭酒 世子侍講院贊善)인 김부필에게 문순(文純公)이라는 시호를 내리는 추증교지이다. 김부필(1516~1577)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언우(彦遇), 호는 후조당(後彫堂)이다. 관찰사 김연의 장자로 퇴계에서 수학하여 위기실천(爲己實踐)으로 학문에만 전심하였으며 을사사화 이후 관직이 내려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수운잡방(需雲雜方) 수운잡방(需雲雜方)

탁청정 김유공 직접 기록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요리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상하 두권으로 상권에 70종, 하권에 38종, 모두 108가지의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을 한문으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술 담그는 법, 간장, 김치 만드는 요령 등에서부터 생강, 참외, 연을 기르는 법까지를 제시해 놓고 있어서 500년 전 사림 계층의 식생활 관계 정보를 다방면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몇 개 항목의 기술이 이보다 100여년 뒤에 나온 장씨 부인의 <규호시의방>에 그대로 되풀이되어 있는 점이다. 이것은<규호시의방>이 <수운잡방>을 참고 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지금까지 전통요리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시권(試卷) 시권(試卷)

과거 시험지인 시권(試卷)으로 김부륜(金富倫 : 본관 光山)이 지은 것이다. 성현의 도리에 대한 물음에 답한 대책문(對策文) 형식의 [문성현지도(問聖賢之道)]라는 제목의 글이다. 역대 중국 성현들의 애민 정신에 근거한 왕도 정치 이념이 중요한 근거라고 했다. 요,순,우,탕,문,무,주공의 어진 정치 이념을 제시하였다.
김부륜(1531~1589)은 이조참판 탁청정(濯淸亭) 김유(金綏)의 셋째 아들로 자는 도서(惇敍)이며 호는 설월당(雪月堂)이다.

※유교기록관 - 명문가고문서 참조.

향병일기(鄕兵日記), 행군수지(行軍須知) 향병일기(鄕兵日記), 행군수지(行軍須知)

향병일기와 행군수지는 근시재 김해(金垓, 1555~1593)공이 임진왜란 때의 구국의 길 가운데 작성한 기록들이다. 근시재는 일찍 사마시에 합격, 승정원, 예문관에서 구슬을 살았다. 후에 이조판서, 대제학으로 추증되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책을 던지고 분연히 일어나 안동지방과 영남 북부의 의병 대열을 지휘하여 구국의 길을 걸었다. 이때의 전투 대열에는 산남공의 아들 북애 김기가 정제장으로, 재종제인 설애 김강, 극재 김평등이 장서 군관으로 출진했다. 이렇게 한 마을이 통틀어 칼을 쥐고 일어서 국난에 임한 예는 찾기가 어렵다. <행군수지>는 지휘관의 정신자세를 논하고 이어 군령을 세우는 방법과 병사를 선발하는 요령, 군마를 얻는 법, 보급문제, 부대훈령 등에 걸쳐서 차례로 기술 했다. 또한 진을 치는 법, 성을 지키는 요령, 간첩 색출, 항복을 받는 요령 등을 차례로 밝혀서 부대 지휘관이 반드시 읽고 익혀야 할 책이었다.
이책은 근신재공의 창의 기병이 투철한 전술 감각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해 준다. 세상이 평화로우면 도학에 전념하는 것이 선비다. 그러나 나라에 변란이 있으면 칼을 집고 일어서는데 그것을 밑받침하는 전투요령을 기록한 것이 이 책이다.

<향병일기>는 <서행일기>와 함께 의병장으로서 전투에 종사한 사실들을 적은 일기다. 전편에 해당되는 <서행일기>는 전하지 않고 <향병일기>만이 남이 있다. 이 일기는 임진년 4월 15일부터 근시재공이 39세를 일기로 경주에서 전몰하기 까지 싸움을 거듭하는 가운데 겪고 느낀 것을 기록한 진중 기록이다. 이밖에 판각으로 ‘근시재선생문집’을 남기었는데 현재 군자리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분의 활약의 대해서는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김해의 활약이 경상우도의 곽재우와 쌍벽을 이루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택여행

현재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위치한 군자마을의 원위치는 ‘외내’라고 불리었던 예안면 오천동이었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4년 광신김씨 예안파가 20여 대(代)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세거(世居)해 온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그 밖의 고가(古家)들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는 가운데 후조당도 함께 이건 되었다.

군자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600년 전에 광산김씨 김효로(金孝盧)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며 동시대에 외손인 봉화금씨가 들어와 현재까지 살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후조당 김부필, 읍청정 김부의, 산남 김부인, 양정당 김부신, 설월당 김부륜, 일휴당 금응협, 면진재 금응훈 등 당대의 도학군자가 나란히 나왔으니 당시 안동부사였던 한강 정구 선생이 “오천 한 마을에는 군자아닌 사람이 없다”라는 기록이 '선성지'에 남아 있다. 군자마을이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하였고 이들은 모두 퇴계 이황선생의 문도(門徒)이다.

군자마을은 정자, 종택, 사당, 주사 등 20여 동의 옛 건축물과 보물로 지정된 고문서와 전적류들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나온 한국 최고(最古)의 요리서인 ‘수운잡방’이 보여주듯 전통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2004년 대한민국 제1호 문화?역사마을로 군자마을 지정되어, 안동시에서는 군자리「문화?역사마을가꾸기」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군자마을의 후손들과 협력하여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관광자원화 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2007년에는 「안동 군자 문화?역사 마을」을 개관하여 고택체험을 위한 숙박시설과 편리시설을 확충하는 등 군자마을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기 우한 디딤돌 놓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군자마을 회혼례/전통혼례

회혼례는 유교적인 예속으로 해로하는 부부의 결혼 예순 돌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부부는 혼례의 복장을 갖추고 혼례의 식을 재연하여 자손들의 헌수를 받고 친족, 친지들의 축하를 받는 가족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전통건축물과 수려한 경관이 풍부한 군자마을에서 회혼례의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 가족단위의 방문객 들은 고택체험 등의 다른 프로그램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서당체험

서당체험은 옛 선조들의 학습방법을 전통 고택 속에서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2004년부터 진행되었다. 학생들의 참여도와 만족도가 높은 체험중 하나이다. 한문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오늘날, 주말이나 방학 등의 일정기간을 이용하여 한문을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유, 초, 중, 고교 과외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체험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예절체험

군자마을의 예절체험은 한국의 전통예절을 전통 가옥에서 배우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으로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중요한 체험이다. 군자마을의 전통가옥을 적극 활용하여 내용과 공간의 일치를 통하여 그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다. 전통의복을 입고 삶 속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절에 대하여 배울 수 있다.

군자마을 제사

1년에 한번 문중의 합의하에 음력 3월 둘째 주 일요일 정오에 지내고 있는 참판공 김효로와 근시재 김해의 부조시위를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형태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제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헛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어 우리나라 고유의 제사문화를 알 수 있다.

풋굿축제

풋굿축제는 과거부터 농경사회였던 군자마을 및 와룡면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축제로서 큰 농사일이 끝나고 수확을 앞 둔 시점에서 풋 음식(익지 않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데서 유래한 축제이다. 마을단위의 축제에서 면 단위의 축제로 발전한 풋굿축제를 통하여 주민들은 더욱 단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역사문화를 활용한 옛 놀이를 통하여 마을을 전국에 알리고 있는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와룡면 주민들이 참가하는 하루 축제로 풋굿먹기, 윷놀이, 꼴따먹기, 사물놀이, 풍물놀이, 면민노래자랑 등 다양한 볼거리와 다양한 먹거리가 있으며, 맛있고 신선한 음식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할머니의 손, 정겨운 시골 잔치의 훈훈한 매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이다.

기로연

문화?역사마을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선비문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군자마을의 전통을 되새기고, 지역 주민들 중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자긍심을 높이고 젊은이들에게는 효친사상을 고양시킬 수 있는 취지로 마련된 축제이다. 여든 살 이상 된 마을의 노인들을 초청하여 각 노인마다 외상에 음식을 대접하고, 젊은이들이 예법에 맞게 술잔을 대접하는 행사로, 갓을 쓴 어르신들이 사방이 탁 트인 정자에 올라 외상을 받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할 만큼 장관이며, 우리나라 전통예법의 근엄함과 따뜻함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군자마을 찾아가기 군자마을 찾아가기
<약도> <약도>
고택체험 숙박시설

- 옛 전통한옥에서 고택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현대식 편의시설을 갖춘 ‘군자고와’를 갖추고 있어 친구, 연인, 가족, 단체 등이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 군자마을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 취사 및 고성방가를 금하며 개인 세면도구는 각자 준비한다.
- 홈페이지 http://www.gunjari.net'

후조당 후조당
후조당 사랑채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읍청정
설월당 설월당
침락정 침락정
산남정 산남정
군자고와 군자고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