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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음식 이야기머슴의 나이만큼 나눠 주는 ‘노비송편, 삭일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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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의 나이만큼 나눠 주는 ‘노비송편, 삭일송편’

세시풍속에 음력으로 2월 초하루를 "중화절(中和節)" 또는 "노비일"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대보름날 마당에 쌓아 둔 벼이삭으로 떡을 만들어 노비들에게 먹였는데 이를 ‘노비송편’이라 하였다. 또한 2월 초하루를 삭일이라 하여 ‘삭일송편’이라고도 하였다. 노비송편에 대한 옛 기록을 보면 『경도잡지(京都雜誌)』「세시」에 “이월 초일일에는 대보름날 세워 두었던 화간을 풀어내려 솔잎 깔아 떡을 만들어서 나이만큼 노비들을 먹인다” 이를 속칭 ‘노비일’이라고 하는데, ‘농사가 이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이월」에는 ‘삭일송편’에 대해 “대보름날 세워 두었던 화간의 곡식을 풀어 내려 흰떡(白餠)을 만든다. 큰 것은 손바닥만하게, 작은 것은 계란크기로 해서 모두 둥근 옥을 반으로 자른 모양으로 만드는데, 찐 콩으로 소를 해 시루 안에 켜켜이 솔잎을 깔고 쪄 익힌 다음 꺼내서 물로 씻고 참기름을 바른 것을 송편이라고 한다. 떡집에서는 팥ㆍ검은콩ㆍ푸른 콩으로 소를 해 꿀을 넣거나 찐 대추ㆍ삶은 미나리를 넣어 떡을 만드는데, 이달부터 그것을 철 음식(時食)으로 삼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노비송편을 머슴의 나이수대로 주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나이가 어리거나 연로한 노비들에 비해 성인 노비들이 한 해 소작량을 좌우하기 때문이며, 겨우내 굶주렸던 배를 채워 주고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떡과 술을 준비하여 대접하였던 풍습은 머슴에 의해 한 해 농사의 풍년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으로 노비들도 달래고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숙종대왕이 밤이 깊어 남산골에 미행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밤이 깊은데 어디서 낭랑히 글 읽는 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쫓아가 보니 어느 조그만 오막살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들창 사이로 방 안을 엿보니 글 읽는 남편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젊은 부인이 보였다. 얼마쯤 지나 남편이 밤이 깊어 출출하다고 하니 부인은 가만히 일어나 벽장에서 주발뚜껑에 담은 송편 두 개를 내놓았는데 선비는 반가운 듯 얼른 한 개를 집어먹고, 나머지 하나를 집어 부인의 입에 넣어 주었는데 서로 사양해 마지않으며 즐기는 것이었다. 왕은 젊은 부부의 오붓한 재미에 감동하여 부러운 마음을 안고 궁으로 돌아와 그 이튿날 왕후에게 송편이 먹고 싶다고 전갈을 보냈는데 큰 푼주에 높다랗게 쌓인 송편을 보고 어젯밤 젊은 부부의 환상을 기대했던 왕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화가 난 왕은"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하고 송편 그릇을 내동댕이쳤는데 왕의 심정을 알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푼주의 송편 맛이 주발뚜껑 송편 맛만 못하다'는 속담이 생겼다고 한다.

시루밑

떡박물관 소장

떡이나 음식을 찔 때 시루밑을 시루 바닥에 깔아서 쌀가루나 식품의 내용물이 밑으로 빠지지 않도록 짚이나 끌영풀(그량풀), 한지 등으로 새끼를 꼬거나 감껍질, 칡덩쿨껍질 등을 엮어 만든다. 세시풍속에 음력으로 2월 초하루를 "중화절(中和節)" 또는 "노비일"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대보름날 마당에 쌓아 둔 벼이삭으로 떡을 만들어 노비들에게 먹였는데 이를 ‘노비송편’이라 하였다.

키워드

중화절, 노비송편, 삭일송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