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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조화에 담긴 비밀 ’비빔밥’

1. 인물 김시민 장군 - 조선중기의 무신으로 나라에는 충신이며, 백성들에게는 사랑으로 이끈 충절이 가득한 장군 진주백성들 2. 배경 진주성내 왜군과 치열한 전투가 일어난 조선중기(1592년 10월) 진주성 3. 줄거리 조선중기(1592년) 선조 임금은 초기전세를 뒤집고 진주성에서 적은 병력으로 왜군을 막은 진주성 싸움의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당쟁싸움으로 나랏일을 뒤로 미뤄 왜군의 침략에 관군은 변변히 패하기만 하였던 찰나에 3천여 명의 병력으로 2만이 넘는 왜군을 무찌른 김시민 장군의 소식은 임금에게는 커다란 안도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임금은 전투 중에 김시민 장군이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소식과 더불어 마지막 전투에서 나눠 먹었던 비빔밥의 이야기를 듣고서 선조왕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중기 왜적은 신식무기와 몇 년간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된 병사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른바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초기 임진왜란은 왜군의 신식무기인 총과 함께 수십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하여 전쟁준비를 하지 못했던 관군을 무찌르고 한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주는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해 올 때 반드시 거쳐야 되는 길목이었다. 여러 면에서 진주성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진주성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으며, 진주성을 사수하여 왜병의 최대 식량생산지인 호남 진출을 막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임진왜란 초기의 불리했던 전세를 뒤집으면서 전열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 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던 것이다. 왜군들은 진주성 함락을 위해 공격을 준비하여 그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공격에도 버티어 내던 진주성 군사는 장기전에 지쳐 있었다. 진주성을 지키는 장수들도 하나 둘 빠져 나갔다. 김시민장군은 소수의 관군으로 왜군을 물리칠 수 없음을 알고 지리산으로 피난한 백성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진주성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러자 관군은 오합지졸인 백성들로 어떻게 2만이나 되는 왜군을 물리 칠 수 있느냐며 부인들과 함께 싸우는 ‘여장군’이라고 비웃음을 받았다. 김시민 장군은 왜군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군과 민이 하나로 뭉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관을 믿지 않았던 백성들은 이미 등을 돌린 상태였고, 소수의 군사는 부인과 어린 남자아이들로 어떻게 2만의 왜군과 싸울 수 있느냐며 패배감에 의기소침하고 있었다. (중략) 4. 핵심어 화합, 조화, 비빔밥, 김시민장군, 진주성, 진주비빔밥, 임진왜란

비빔밥

비빔밥은 밥에 갖은 나물과 쇠고기, 고명을 올려 약고추장에 비벼먹는 음식이다. ‘섞어 비빈 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궁중에서는 ‘골동반(骨董飯)’이라고도 했다. ‘섞어 비빈 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궁중에서는 ‘골동반(骨董飯)’이라고도 했다. 1800년대 말 조리서인『시의전서(是議全書)』에 ‘부븸밥’으로 처음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골동(汨董)’이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료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하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각각 다른 맛과 특성을 가지지만 매운 고추장을 밥과 다양한 재료에 넣고 쓱쓱 비벼 내면 고추장의 매운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비빔밥을 탄생시킨다. 즉 비빔밥의 고추장은 각각의 재료가 자기 맛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화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키워드

단오, 화합, 조화

시나리오 변

비빔밥은 밥에 갖은 나물과 쇠고기, 고명을 올려 약고추장에 비벼먹는 음식이다. ‘섞어 비빈 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궁중에서는 ‘골동반’이라고도 했다. * 이 시나리오는 진주대첩(晉州大捷) 과 김시민 장군 일화를 바탕으로 하여 쓴 창작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