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중.일 불탑의 비교

중국에서는 전탑, 한국에서는 석탑, 일본에서는 목탑이 각각 발달하여 주류를 이루었는데 한국에서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4세기 후반부터 세워지기 시작하여 인도·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형식의 탑파가 만들어졌다.

목탑은 나무로 만든 중층누각(重層樓閣)의 탑파로 인도에서는 보기 드문 편이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크게 성행했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목탑이 건립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중국의 고루형(高樓形) 목탑 형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다층누각형(多層樓閣形) 목탑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예로서 고구려시대의 평양 청암리사지(淸巖里寺址) 팔각기단 목탑지(木塔址)와 임원군 상오리사지(上五里寺址)의 목탑지가 전해지고 있다.
백제시대의 예로는 부여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제석사지(帝釋寺址)·미륵사지(彌勒寺址)·중원탑지(中原塔址) 등에 목탑의 방형기단이 남아 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목탑으로는 지금 초석만 남아 있는 신라의 황룡사지(皇龍寺址)9층목탑지와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쌍탑지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황룡사 9층목탑은 『삼국유사』 권3 황룡사지9층탑조(皇龍寺址九層塔條)에 의하면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법사가 삼국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백제의 아비지(阿非知)를 초청하여 645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이 탑파는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이어져오다가 1238년(고종 25) 몽골 침입 때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밖에도 고려시대의 만복사지(萬福寺址) 목탑지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법주사 팔상전(1624)이나 쌍봉사 대웅전(198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것을 현재 복원)과 같은 목조건축이 현존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도 목탑이 많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전탑은 보통 크기 27~28cm, 두께 5~6cm의 벽돌을 사용해 축조한 것인데 전체적인 탑파의 형태가 목탑이나 석탑과 매우 다르다. 그 기원은 인도에 있으며 불교의 전래와 함께 중국 및 한국에도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원래 목탑이 기본이었지만 남북조시대부터 목조건물의 처마와 두공(枓)을 모방한 전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숭악사(崇岳寺)에 있는 12각15층전탑(523)이 가장 오래된 예로 알려져 있으며 당나라와 송대에 많이 건립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삼국유사』 권4 양지사석조(良志使錫條)에 신라 선덕여왕 때 양지(良志) 스님이 작은 전탑을 만들어 경주 영묘사(靈廟寺)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부터 이미 전탑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탑은 재료의 취약성으로 인해 쉽게 파손되기 때문에 석탑에 비해 상당히 적게 남아 있다. 현존하는 전탑으로는 경상북도 안동지방 일대에 있는 신세동 7층전탑·동부동 5층전탑·조탑동 5층전탑·송림사 5층전탑·신륵사 다층전탑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8세기경에 건립된 신세동 7층전탑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청도 불령사(佛靈寺) 전탑지에서 특이하게 불상과 불탑이 조각된 전(塼)이 발견되었다. 한국의 전탑은 일반석탑과 같이 화강암을 사용했다는 것이 중국의 전탑과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