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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사지 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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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8호인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원래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 고선사지에 있던 탑인데 덕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해 1977년 경주박물관으로 이건(移建)했다. 화강암 석재로 건조한 이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를 건립하고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올려놓은 일반형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로 통일 초기의 신라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현재 높이는 10.2m이다.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규모가 워낙 커서 탑의 여러 부분을 각기 몇 개의 석재로 나누어 가공한 후 결합하는 건축방식이 사용되었다. 석재들이 서로 연결되는 부위에는 철제은장을 박아 고정했다. 초층옥신(初層屋身)의 높이와 너비는 감은사서탑(西塔)과 동일하지만 옥신의 각면에는 감은사서탑과 달리 문비(門扉) 모양을 모각했다. 문비 모양의 내부 모서리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는 각면에 금동판 같은 것을 덧씌워 장식하기 위해 못을 박았던 구멍으로 추측된다. 문비 모양의 한 가운데에 새겨진 2개의 원형은 문고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탑을 석재로 표현한 거대한 크기의 초기 석탑의 하나로서 당당한 균형이 잡힌 모습은 감은사서탑과 함께 통일신라 초기 석탑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우수한 예이다.

기단부는 여러 개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짜인 지대석 위에 놓였는데, 하층기단은 굽처럼 올려진 기대와 면석이 같은 석재로서 12개석으로 짜여졌고,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3주의 탱주(撑柱)가 모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은 12매의 판석으로 덮었으며, 상면에는 호형과 각형의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의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 중석은 12매석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우주와 2주의 탱주가 모각되었다. 상층기단 갑석은 8매의 판석을 결구(結構)하여 덮었는데, 하면에는 부연(副椽 : 탑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마련되고 상면에는 별개의 석재로 조성된 각형의 높직한 굄대를 2단으로 놓아 그 위에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의 초층 탑신은 각 면의 우주와 면석을 별개의 석재로 구성하여 도합 8개의 석재로 조립하였다. 또한, 4면에는 문틀을 모각하여 감실(龕室)을 표시하였고, 중앙에는 문고리를 달았던 못 자리가 있으며, 문비형 윤곽 안에도 상하에 못 자리가 있어 장식이 달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2층 옥신은 4매석으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 우주를 모각하였다. 3층은 하나의 돌로 조성하여 우주를 새겼다.

옥개석은 각 층이 같은 양식과 수법으로 조성되었는데 낙수면석과 하면의 받침석은 별개의 석재이나 각각 4매석으로 결구하였다. 밑면의 받침은 5단씩이고 낙수면 정상부에는 각형 2단의 굄을 높직하게 각출하여 그 위층의 탑재를 받치고 있다. 낙수면이 평박하고 전각(轉角)의 반전이 잘 표현되어 장중하고도 경쾌한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옥개석(屋蓋石)과 탑신석(塔身石)은 여러 개의 부재를 써서 조립식으로 짜 맞추어 쌓아 올렸으나 3층 탑신만은 하나의 부재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사리장치(舍利裝置)를 하기 위한 사리공(舍利孔)과 찰주(擦柱)를 세우기 위한 찰주공을 마련하려는 배려였음을 해체복원시에 알게 되었다.

상륜부는 현재 노반과 복발.앙화석 등이 차례로 놓여 있고 찰주는 없는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노반석이 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상단부에 받침 층단이 없고 반대로 굄대가 각출되어 그 위에 복발을 받고 있는 점이다.

이 탑은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석탑양식의 변천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규모나 각 부의 가구수법이 감은사지삼층석탑(感恩寺址三層石塔, 국보 제112호)과 거의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석탑의 초층 옥신 각 면에는 문비형이 돋을새김된 데 비하여 감은사지삼층석탑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