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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의가치

하회탈은 하회마을의 ‘탈’이며 하회마을 사람들의 ‘얼굴’이자 하회마을 문화의 ‘상징’이다. 하회탈은 마을 동사에 고이 보관되어 오다가 별신굿을 할 때만 광대들이 꺼내 쓰게 되는데, 이 때에 탈을 넣어둔 나무 상자 앞에 향불을 피우고 큰절부터 올린다. 절을 올리는 경건한 제의가 끝나면 탈 궤에서 조심조심 탈을 꺼내서 향나무를 우려낸 물로 정성스레 닦아 단장을 한다. 잘 닦은 탈을 오재기에 담아서 어깨에 메고 산주와 광대들이 서낭당에 올라가 내림굿을 한다. 산주가 제물을 차려놓고 절을 하며 서낭신을 모시고 마을로 내려오면 비로소 광대들이 탈을 쓰고 별신굿을 시작한다.

하회탈은 서낭신과 함께 노니는 신성한 탈인 까닭에 천년의 세월 동안 아무 탈 없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하회마을 사람들로서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보물이라 할 만하다. 이제 하회탈은 하회마을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탈이자 한국인의 얼굴이며 우리 민족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하회마을의 보물이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어 ‘국보’ 하회탈로 거듭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국보들과 달리 실질적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간판 구실을 하고 있다.
하회탈은 한국을 떠올리고 접속하게 만드는 그림 기호(icon)이자, 한국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독특한 인물상(character)이며, 국가의 문화 이미지를 창출하는 등록상표(logo) 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회탈은 한국인의 표정으로 한국을 알리는 문화 사절인 동시에,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드러내는 한국 최고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하회탈이 어디가 아름답게 생겨서 국보로 지정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 사회적 가치, 미학적 가치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역사적 가치로 보면, 하회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굿탈이자 연극탈이다. 현재 고려 중기 탈로 추정되어서 약 800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탈놀이를 한 뒤에 탈을 불에 태워버리는 까닭에 오래된 탈이 남아 있지 않으나, 하회마을에서는 탈을 신성하게 여겨서 마을 동사에 고이 보존해 왔기 때문에 예전의 본디 탈이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기적처럼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회탈과 탈놀이는 우리나라 연극사, 특히 민속극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매우 긴요한 자료이다.

문화적 가치로 보면, 탈만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탈놀이를 전승하던 하회마을이 지금 고스란히 살아 있고, 또 하회별신굿이라는 중요한 전통문화와 더불어 남아 있기 때문에 문화적 의의가 더욱 크다. 고분 속에서 발견된 금관도 국보지만, 사실상 금관을 쓰던 사람도 사회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금관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문화재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이해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회탈을 전승하는 하회마을이 남아있는 것은 물론 하회탈을 쓰고 연행하는 하회탈춤과 별신굿이 최근까지 전승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국보 가운데 이처럼 살아 생동하는 문화재는 하회탈이 유일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적 가치로 보면, 하회탈의 인물 구성이 당시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형상화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당시 사회의 인적 구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인물상이 바로 하회탈의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신분이 높고 낮은 데 따른 상하(上下), 슬기가 많고 적은 데 따른 우지(愚智), 그리고 남녀노소는 물론 민관(民官)과 성속(聖俗) 등의 대립적 사회관계에 따라 제각기 한 사람씩 자기 얼굴을 드러낸다. 다른 고장의 탈춤에서는 5양반, 샌님형제, 8목중 등 한 성격의 인물이 여럿 등장하고, 어떤 성격의 인물은 아예 없는 경우도 많은데 비하여, 하회탈에는 공동체에서 있음직한 인물들이 골고루 한 사람씩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라 할 수 있다.



하회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회탈의 조형적 가치이자, 예술작품으로서 의의이다. 하회탈은 다른 조각품과 달리 표정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조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표정이 바뀐다는 것이다. 턱을 분리시켜 두었기 때문에 광대가 탈을 쓰고 얼굴을 움직일 때나 말을 할 때에 턱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한편, 얼굴을 뒤로 젖히면 웃는 것처럼 입이 크게 열리고, 앞으로 숙이면 화난 것처럼 입이 다물어진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표정도 역동적으로 바뀐다. 여러 탈의 좌우 모습이 서로 대비될 만큼 어긋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왼쪽에서 보는 것과 오른쪽에서 보는 표정이 서로 다르게 보인다. 극중에서 등장인물들끼리 인식하는 표정과, 구경꾼의 자리에서 보게 되는 표정이 불일치를 이루도록 변증법적 통일성을 보인다. 한 인물이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두 가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을 절묘하게 하나의 얼굴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피카소의 작품에 견줄 정도로 예사롭지 않다. 사회적 제약에 따라 주어진 얼굴과, 인간해방을 추구하는 본성적인 얼굴을 더불어 가진 것이 진정한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부조화의 조화, 불일치의 일치, 미완성의 완성이라는 변증법적 미학을 새롭게 개척한 세계적 조형예술이라 할 수 있다.

아리랑이 한국의 소리이듯이 하회탈은 한국의 얼굴이다. 하회탈은 조형예술의 독창적 경지를 열어 보이는 세계적 수준의 조각품이자, 탈놀이를 위한 분장도구로서 가장 뛰어난 걸작품이다. 그런 까닭에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숱하지만 하회탈처럼 한국문화의 대표적인 상징 구실을 폭넓게 하는 문화재는 없다. 외국사람들도 하회탈을 보면 한국과 한국인, 한국문화를 떠올릴 정도로, 하회탈은 세계 속에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분증 곧 한국인의 ‘아이디 카드’ 구실을 하고 있다.

하회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50년이 채 못 되지만, 이제 하회탈은 우리 전통문화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모델로서 각종 포스터에 널리 쓰일 뿐 아니라, 한국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호기심 높은 문화상품이자 가장 특색 있는 기념품구실을 한다. 실제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기념상품이 하회탈이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문화적 얼굴인 하회탈이 지금 한갓 기념품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져서 상품화된 채 여기저기서 팔려 다니고 있을 뿐, 국보답게 온전하게 복원되지도 못하고 체계적으로 연구된 일도 없다. 탈을 거짓얼굴이라는 뜻에서 흔히 가면(假面)이라 하는데,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하회탈의 가짜 얼굴 곧 ‘가면의 가면’을 보아온 셈이다.
이제는 하회탈의 가면을 벗기고 본디 얼굴을 정확하게 포착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