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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전투용무기

철질려l 鐵疾藜

적의 공격을 방해하기 위한 장치

춘추전국시대에 적의 이동을 저지하기 위한 방해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마름의 열매를 그대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철을 사용하게 되면서 쇠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는 뾰족한 날을 네 개 이상 만들어 어느 방향에서 밟아도 발에 상처를 입을 수 있게 되어있다. 철질려 한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은 줄을 꿰기 위한 구멍이다. 명나라의 《기효신서》에서는 약 1.6m의 줄에 30cm 간경으로 여섯 개의 철질려를 매단다고 하였다. 철질려에 분뇨를 바르거나 독약을 발라 살상력을 높인 것은 귀전(鬼箭)이라고 하였다.

이밖에 적의 공격을 방해하는 장애물로는 나무판에 날카로운 못을 심어놓은 지삽, 나무 상자에 뾰족한 못을 심어놓은 추제, 끈으로 만든 올가미를 땅에 박아놓은 척권, 마타 등이 있었다.

철능각 l 鐵菱角

적의 공격을 방해하기 위한 장치

춘추전국시대에 적의 이동을 저지하기 위한 방해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끝이 뾰족한 날이 세 개 이상 달린 형태를 하고 있어 행군하는 적병이나 말이 밟으면 상처를 입게 되어 있다. 특히 철능각은 성을 감싸고 있는 해자나 얕은 개울에 뿌려 물 속을 통과하려고 하는 적병이나 말이 발에 상처를 입도록 하였다.

첨두목로

성벽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공성용기

남북조시대에 후경(候景)이라는 사람이 개발하였다고 전한다. 전체 길이는 약 4.5m이고 높이는 약 2.4m이며, 윗부분은 적의 공격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경사져 있다. 바깥쪽은 적의 화공에 견딜 수 있게 소가죽을 두른 장갑판으로 덮여있다. 안에는 열명 정도의 병사가 탈 수 있다. 안의 병사가 밀고 성벽에 접근해서 성벽에 구멍을 뚫거나, 성벽을 기어 올라갔다.

분온차

성벽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공성용기.
동옥(洞屋) 또는 동자(洞子)라고도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개발되어 화약무기의 발달로 효용이 떨어질 때까지 공성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형태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윗부분은 공격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경사져 있고 바깥쪽은 화공에 대비하여 소의 생가죽 또는 진흙을 발랐다. 안에는 10명의 병사가 탈 수 있었으며 사람의 힘으로 밀었기 때문에 바닥은 열려져 있다. 정면은 성벽에 도착했을 때 그대로 작전할 수 있도록 열려져 있어 맨 앞의 병사는 방패로 방어하였다. 성벽에 도달하면 그대로 성벽을 기어오르거나, 안에서 성벽에 구멍을 뚫었다.

운제 l 雲梯

성벽을 올라가거나 정찰할 때 사용하는 공성용기

춘추전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여겨지며 청나라 말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형태는 여섯 개의 바퀴를 단 바닥에 안에서 운제를 움직이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벽체를 시설하고 그 위에 두개의 사다리를 탑재한다. 사다리는 6m이상이어서 길게 늘일 경우는 7~9m 높이의 성벽을 올라갈 수 있다. 사다리 끝에는 성벽에 걸기 위한 걸림쇠를 붙여 놓았다. 벽체 바깥쪽에는 화공이나 화살에 견디도록 소의 생가죽을 붙여 놓았다.

목만l 木慢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방패

주로 성을 공격하는 측에서 사용하는 공성용 방어구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하였는데 화살이나 돌을 막아내는 효과가 크고 설치비용이 적게 들므로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나무로 된 판 위에 불에 잘 타지 않는 가죽을 덧대어 만들었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달랐는데 이것을 차에 설치된 기둥에 느슨하게 매달았다. 지레를 이용하여 상하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있다. 이것은 성을 공격할 때 성벽 위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나 돌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굴을 파서 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굴 입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기도 하였다.

전호차 ㅣ塡壕車

성 주위에 파놓은 해자를 메꾸는 데 사용한 공성용기

남북조시대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꺼번에 많은 병사를 성에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해자를 메꾸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해자를 메꿀 때 성 안에서 공격을 하면 인명의 손실이 매우 크게 된다. 따라서 적의 공격을 막으면서 해자를 메울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한 것이 전호차이다. 전호차는 바퀴를 달은 바닥에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앞면을 방패처럼 나무판으로 막은 것과 전체를 가죽으로 덮은 커다란 형태의 것이 있다. 보통 흙, 나무, 풀 또는 흙주머니를 쌓고 해자 근처로 운반하여 물 속에 떨어뜨려 호를 메꾸었다.

소차 ㅣ巢車

성의 내부를 정찰하기 위하여 만든 공성용기

소차는 공성전이 많이 벌어졌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바퀴가 달린 대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폭 약 1.2m, 높이 1.5m의 나무로 만든 집을 달아 맨 형태이다. 도르레를 이용하여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것과 기둥에 고정시킨 것이 있다. 소차의 외벽은 적의 화살이나 화공에 견딜 수 있도록 소의 생가죽을 덧붙였다.

충차 ㅣ衝車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공성용탑

임충(臨衝) 또는 대루(對樓)라고도 부른다.
충차는 춘추전국시대에 출현하여 공성전에서 많이 사용된 무기이다. 형태는 가장 아래층은 여덟 개의 바퀴가 달려 있으며, 그 위로 여러 층을 올려 성벽의 높이와 같게 하거나 그보다 더 높게 만들었다. 매 층에는 여러 가지 장병기를 가진 병사들이 올라가서 성 안으로 사격을 하거나 성벽에 접근하여 성 안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명나라의 《무비지》에는 임충공여차라는 충차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길이가 약 8m에 높이가 약 12m에 달하였다. 이 충차에는 성벽의 여장을 부수기 위한 당목(撞木)이나, 성벽으로 건너가기 위한 천교(天橋)라 불리는 사다리가 부착되어 있었다. 또한 대형 노나 포가 있어 성벽을 부수고, 성 안으로 사격을 하였다. 외부에는 소가죽으로 만든 덮개를 씌워 내부의 병사를 보호하였다.

포만l 布慢

공성전에 투입된 병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천으로 만든 방패

주로 성 위에서 사용하는 수성용 방어구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하였는데 화살이나 돌을 막아내는 효과가 크고 설치비용이 적게 들므로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주로 마를 두껍게 엮은 것이 사용되었는데 대나무를 엮은 것도 있다. 이것을 손잡이에 느슨하게 고정시켜 성벽에 걸어 성을 공격하는 쪽에서 발사하는 화살이나 포탄을 막았다. 크기는 설치하는 곳에 따라 다르다.

적이 화공을 할 때에는 물에 적셔서 방어하거나 진흙을 발라서 막았다. 적병이 일제히 성벽을 타고 오를 때에는 낭아박처럼 불을 붙여서 성 아래로 던져 적병을 불태워 죽이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포만이 방어무기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공격무기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느슨하게 매달아 놓은 데 있었다. 돌이 포만에 명중되어도 뒤로 밀리면서 충격을 흡수하여 뒤에 있는 병사들이 다치지 않았고 화살이 관통할 때는 그 힘을 약화시켜 병사들이 크게 다치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공성창 ㅣ攻城槍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특수한 창

공성용 창은 사다리나 성벽을 기어오르면서 사용하기 편하게 보통 창보다 짧게 만들었다. 공성용 창에는 단인창, 단추창, 조창, 질려창, 괴창 등이 있다. 단인창은 창날의 길이는 약 60cm에 손잡이는 1.8m이고, 단추창은 창날의 길이는 약 37cm인데 창날 양 옆으로 작은 칼날이 붙어 있고 손잡이는 1.8m정도이다. 조창은 창날 길이 약 46cm인데 창날 밑에 네 개의 큰 갈고리와 여러 돌기가 붙어 있다. 손잡이의 길이는 역시 1.8m이다.

질려창은 창날길이 약 40cm이고 창날 밑에는 손잡이에 이르는 부분까지 사방으로 쇠로 된 날카로운 돌기가 있다. 손잡이 길이는 약 1.8m이다. 괴창은 창날 길이 약 77cm이고 창날에 갈고리가 네 개 붙어 있다. 손잡이 길이는 가장 짧아서 약 1.2m이다. 단추창, 조창, 질려창, 괴창에 붙은 돌기들은 적을 걸어서 당기기 쉽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수성창 ㅣ守成槍

성을 방어할 때 사용하는 특수한 창

수성용 창은 성벽 위에서 적을 찌르기 좋게 손잡이가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수성용 창에는 괴돌창, 조창, 괴인창 등이 있다. 괴돌창은 창날 길이 약 60cm에 손잡이 길이 약 7.5m이다. 창날은 사박으로 각이 져 있으며 손잡이 끝부분에는 괴(拐)가 있다. 조창은 창날 길이는 60cm인데 창날에는 안쪽으로 휜 갈고리가 네 개 붙어 있다. 손잡이 길이 약 7.4m이다. 괴인창은 창날 길이는 약 60cm이고 창날에 갈고리가 네 개 붙어 있다. 손잡이 길이는 약 7.5m이고 손잡이 끝부분에 괴가 있다. 이러한 수성용 창은 손잡이 끝이 뭉툭하게 처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야복경과 ㅣ夜伏耕戈

노에 줄을 연결하여 적이 줄에 닿으면 발사

적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한 함정의 일종으로 명나라 문헌이 《기효신서》에 등장한다. 여러 개의 노를 끈으로 연결하여 적이 하나의 노를 발견하여 피했다 할지라도 다른 노가 발사되게끔 만든 장치이다. 특히 동시에 발사되지 않도록 하여 오랫동안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장치이다.

새문도차l 塞門刀車

성문이 파괴되었을 때 성안으로 침임해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하여 만든 수성용기

북송의 《무경총요》라는 문헌에 나온다. 이에 의하면 나무로 만든 이륜차인데 성문과 같은 폭으로 만들었다. 전면에는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칼을 박아놓았다. 성벽이나 성문이 돌파되어 적이 성 안으로 진입해 왔을 경우에는 새문도차로 길을 막아 적의 공격을 저지하거나 반격하기도 하였다.

야차뢰

성벽 위에서 떨어뜨려 성벽에 달라붙은 적병을 물리치거나 공성병기를 파괴하는 수성용기

길이가 약 3m에 지름이 약 30cm인 통나무에, 길이 약 15cm의 철못을 박았다. 뢰는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성벽 위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떨어뜨리던 것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중 야차뢰는 가장 발전된 모습으로 도르래가 달린 기구를 사용하여 한 번 떨어뜨린 후 다시 회수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뢰에는 야차뢰 이외에 가장 기본형인 목뢰를 비롯하여 니뢰, 전뢰 등이 있었다. 목뢰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통나무를 그대로 이용하되 살상력을 높이기 위하여 몸체에 철못을 박았다. 길이는 약 1.2m에 지름 15cm내외였다. 니뢰는 돼지나 말의 털을 섞은 찰흙을 짓이겨서 불에 구워 건조시킨 것으로 길이 60cm~90cm에 지름 15cm 내외였다. 전뢰는 점토를 구워서 만들었는데 단면이 톱니바퀴 모양을 하고 있으며 길이 1m내외에 지름 18cm정도였다. 특히 니뢰와 전뢰는 진흙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제조가 간단한 장점이 있었다. 다만 이들은 야차뢰와 달리 재사용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낭아박 ㅣ狼牙拍

성벽 위에서 떨어뜨려 성벽에 달라붙은 적병을 물리치는 수성용기

가로 154cm, 세로 138cm, 두께 9cm의 느릅나무 널빤지에 길이 15cm의 쇠못을 촘촘하게 박아 만든다. 판의 네 귀퉁이에는 고리를 만들고 여기에 줄을 끼워 성벽 위에서 아래로 반듯하게 떨어뜨린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병사들은 이것에 맞아 다치거나 떨어지게 된다. 줄이 매어져 있으므로 아래로 떨어뜨린 이후에는 줄을 잡아당겨 다시 들어올려 사용하였다.

철취화계 ㅣ鐵嘴火鷄

성벽 위에서 잘 말린 풀단에 불을 붙여 아래로 떨어뜨려 적병을 살상하는 수성용기

잘 말린 풀단 안에 불이 잘 붙도록 화약을 넣어 만들었다. 이것은 도르래가 달린 기구인 교차를 사용하여 아래로 떨어뜨렸다. 철취화계는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을 태워죽이거나 공성병기에 불을 붙여 못쓰게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야습이 있을 때 조명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목녀두 ㅣ木女頭

여장이 파괴되었을 경우 여장 대신 사용하는 수성용기

북송의 《무경총요》라는 문헌에 나온다. 이에 의하면 높이가 약 1.84m에 폭이 약 1.54m이고 두 개의 바퀴가 달려 있어 이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전면에 공격을 전면에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방패처럼 벽을 세웠으며, 적을 공격하기 위한 틈을 내었다. 적을 향한 부분은 화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쇠가죽을 덧씌웠다.

호차 ㅣ虎車

호랑이 모양의 동차에 여러 개의 창을 꽂은 수성용기

성벽이나 성문이 돌파되어 적들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시가전을 벌일 수 밖에 없다. 그럴 경우 적의 공격을 저지하거나 반격하기 위하여 길을 막고 싸우게 되는데 호차는 이럴 때 사용하는 무기이다. 하나의 바퀴가 달린 수레에 호랑이 모양의 몸체를 올려놓고 그 앞에 여러 개의 창을 꽂아 만들었다. 이러한 시가전 전용 무기로는 호차 이외에 항전차(巷戰車), 상차(象車) 등이 있었다. 항전차는 호차처럼 바퀴가 하나인 수레 전면에 창을 박은 것이고, 상전차는 바퀴가 둘인 수레 위에 코끼리 모양의 몸체를 올려놓고 여러 개의 창을 박은 것이다.

거마창 ㅣ拒馬槍

공격해 오는 적의 기병을 막기 위한 방해물

당나라 때 등장하여 명나라 때까지 사용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사용되었던 녹각목이 원조이다. 녹각목은 사슴 뿔과 같이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뻗어 있는 형태인데 한번 설치하면 다른 장소로 움직일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여 만든 것이 거마창이다. 거마창은 둘레 60cm정도의 둥근 통나무에 길이 3m정도 되는 창을 부착시킨 것으로 공성전에 사용하거나 야전에 사용하였다. 또한 측면 방어나 진지를 구축할 때 또는 도로를 봉쇄할 때도 사용하였다. 거마창은 움직일 수는 있지만 다시 설치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들어서 적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거마목창 ㅣ拒馬木槍

공격해 오는 적의 기병을 막기 위한 방해물

춘추전국시대에 사용되었던 녹각목이 원조이다. 녹각목은 사슴 뿔과 같이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뻗어 있는 형태인데 한번 설치하면 다른 장소로 움직일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여 만든 것이 거마창이나 거마목창인데 특히 거마목창은 운반하기 좋았다. 세 자루의 창을 묶은 형태로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서 간편하게 소지할 수 있었다. 창은 양 끝에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개의 거마목창을 연결하기 위한 쇠사슬이 붙어있다. 한 쪽을 지면에 박아서 나란히 놓고 쇠사슬로 연결하면 적의 돌진을 막을 수 있다.

당차l 撞車

앞 끝부분에 철갑을 씌운 무거운 나무망치를 탑재한 수성용기

주로 운제를 파괴할 때 사용하였다.

차간 ㅣ叉竿

적이 사다리를 사용하여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든 수성용기

전체 길이가 6m정도 되며 앞 끝부분이 두 개로 갈라져 있다. 적병이 운제나 비제를 성벽에 걸려고 할 때 차간을 이용하여 사다리를 밀어제쳐 방어하는 것이다. 차간은 사다리를 밀어제치는 기능뿐 아니라 앞의 뾰족한 부분으로 성벽을 올라온 사람을 찔러 방어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