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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안(臨安)공략전

* 시 기 : 1235~1279
* 전투지역 : 양양(襄陽), 번성(樊城), 임안(臨安), 애산(厓山)
* 관련인물 : 몽케, 쿠빌라이, 바얀(Khaiau, 伯顔) / 맹공(孟珙), 여개 문천상(文天祥),
장세걸(張世傑)


남송의 수도인 임안을 원의 세조 쿠빌라이 칸이 공격하여(1279) 남송을 멸망시킨 전쟁

1235년 몽골과 남송의 연합군이 금을 멸망시킨 이후 송의 배신을 이유로 송을 정벌하려고 남하하였다.

단평 3년(1236)에 몽고군은 양양과 영주(湖北 鍾祥縣) 및 성도(成都) 등 요지를 함락하였다. 남송은 맹공과 여개 등의 활약으로 몽골의 36차례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보우 6년(1258) 원의 헌종인 몽케는 군사 10만 명을 지휘하여 송을 침입하였지만 원정은 성공하지 못하고 1259년 7월 조어성(釣魚城) 아래서 사망하였다. 몽케 사망 후 쿠빌라이는 칸위 승계문제 때문에 송과 화의한 후 퇴각하였다. 도종 함순 3년(1267) 원은 다시 아주(阿朮)를 파견 남하시켜 다음 해에 양양을 포위하였는데, 남송의 여문환(呂文煥)은 양양을 굳게 지키고 정부도 여러 차례 원병을 파견하였지만 모두 패하였다. 함순 9년(1273)에 원군은 먼저 방비가 보다 허술하였던 번성으로 진격하여 ‘만자니크’라고 하는 회회포(回回砲)를 이용하여 1개월간 사격하여 성벽을 허물고 성내로 진입하여 배다리(舟橋)를 불질러 번성을 고립 시킨 후 시가전을 통해 함락시켰다. 몽골군이 1273년 11월 양양에 대한 사격을 시작하여 시내의 건축물과 방어시설을 파괴하자 포위망을 풀 수 없음을 인식한 남송의 여문환은 다음 해 3월 항복하였다. 이후 원군은 직접 남송의 수도인 임안을 위협하였다. 함순 10년(1274) 원은 바얀(伯顔)에게 군대를 통솔토록 하고 대거 남하하여 악주(鄂州)를 공격 함락하였다. 덕우 원년(1275)에 송은 가사도(賈似道)가 13만 명을 이끌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적을 맞았으나 노항(魯港:安徽 蕪湖縣 西南)에 이르러 싸우지도 못하고 궤멸당하고, 원군은 건강(建康:남경)을 함락하였다. 그 다음 달에 원군은 임안을 함락하고 공제(恭帝)를 포로로 잡고 북쪽으로 돌아갔다. 송은 진의중(陳宜中)·문천상·장세걸·육수부(陸秀夫) 등이 익왕(益王) 강을 복주(福州)에서 황제로 (단종 ; 端宗) 세웠다. 경염 3년(1298) 단종이 원군의 공격을 받아 강주(廣東 吳川縣 남해)로 도망가 죽자, 문천상은 근왕병 1만을 이끌고 임안 방위에 급히 참가하여 분전하였다. 또 위왕(衛王) 병(昺)을 황제로 삼고 상흥이라 개원하고 애산(廣東 新會縣 남해)으로 옮겼다. 이 후 원군의 공격으로 문천상의 군사는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 상흥 2년(1279) 원군이 애산을 공격하자 장세걸이 바다에서 수군으로 맞아 싸웠으나 패하고, 육수부는 황제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이 전쟁으로 남송은 150여년 만에 멸망하였다. 남송이 몽골에 멸망함으로써 이민족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전체를 지배하게 된 민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