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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전(赤壁戰)

* 시 기 : 208년 10월
* 전투지역 : 적벽(湖北省 嘉魚縣의 북동, 揚子江 남안)
* 관련인물 : 조조(曹操), / 손권(孫權), 주유(周瑜), 황개(黃蓋), 제갈량(諸葛亮)


중국 3국시대인 208년 위의 조조가 오의 손권, 촉의 유비 연합군과 호북성 가어현(嘉魚縣)의 북동, 양자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한 전투.

건안 13년(208)에 관도(官渡)의 전투에서 원소(袁紹)를 격파한 것을 계기로 화북을 석권한 조조는 천하를 통일하기 위하여 약 20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장강(揚子江) 유역으로 남하하였다. 조조는 먼저 형주를 점령하여 형주의 군대를 편입함으로서 조조군은 약 80만 대군으로 증강되어 남방을 위협하게 된다. 이에 한 왕실의 후예를 자처하는 유비의 군사 제갈량의 책모에 의해 유비군과 손권군의 연합이 성립되어 조조군에 대항하게 된다.

조조군과 유비·손권의 연합군은 지금의 호북성 무한시(武漢市)의 서남방, 가어현의 적벽 부근에서 장강을 사이에 두고 대진하다가 마침내 충돌하였다.

208년에 조조군에 쫓긴 유비는 노숙(魯肅)의 소개로 손권에 의지하고, 제갈량을 오에 사신으로 보내 함께 일을 도모할 것을 논의하였다. 제갈량은 오나라에 있으면서 그가 한 일은 손권의 항전 결의를 굳히는 역할을 하였다. 이때 조조는 유종(劉琮)의 항복을 받고 이를 기회로 오를 멸하려고 하였으며, 손권은 이를 맞아 싸우기로 하고 주유와 정보(程普)에게 수군을 주어 유비를 도와주도록 하였다.
당시 조조군은 모두 25만 명이었고 유비와 주유의 병력은 모두 5만 명에 불과하였다. 10월에 조조가 형주로부터 남하하여 오군과 적벽에서 조우하였다. 당시 조조군은 이미 일부가 질병에 감염되어 처음부터 불리하였다. 그리고 주유의 부장인 황개의 진언으로 화공이 결정되었다. “지금 적은 다수이고 아군은 세력이 약하므로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군선을 보니 선수와 선미를 연결해 두었습니다. 화공을 쓰면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유는 이에 따라 황개가 투항을 가장하여 조조의 군대에게 화공을 단행하게 하였다. 황개가 선제공격을 시작한 후 주유는 구체적으로 모든 군사행동을 지휘하고 몸소 군을 이끌어 조조군을 물리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화공으로 조조의 군선은 불타고 강안의 영내까지 미치자 조조군은 궤멸되고 더욱이 기아와 질병으로 병력이 반 이상이나 손실되었다. 그리하여 장군들에게 강릉과 양양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화북으로 후퇴하였다.

이 전투를 전환점으로 손권의 강남 지배가 확정되고 유비도 형주(湖南省) 서부에 세력을 얻어 중국은 위, 오, 촉 3국이 정립하게 되며, 280년 위를 계승한 서진이 오를 항복시켜 다시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분열상태에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