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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초전(漢楚戰)

* 시 기 : 206년~202년 B.C.
* 전투지역 : 팽성(彭城), 형양(滎陽)·성고(成皐), 유수, 해하(垓下)
* 관련인물 : 유방, 장양, 한신,소하, 조참 / 항우, 범증


진왕조가 멸망한 후, 구귀족세력을 대표하는 초의 귀족 항우와 신흥세력인 유방의 양대 진영이 벌인 전쟁.

시황제가 순수(巡狩)의 길을 떠났다가 갑자기 사구(沙丘:현재 河北 平鄕縣)에서 사망한 후 환관 조고(趙高)가 정치를 농단할 때 진승과 오광 등의 농민봉기가 발단이 되어 전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항우는 B.C. 209년 숙부 항량(項梁)과 함께 봉기하여 진군을 도처에서 무찌르고, 드디어 함곡관(函谷關)을 넘어 관중(關中)으로 들어갔다. 유방도 진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사를 일으켜 패공(沛公)이라 칭했다(B.C. 209). 다음 해 북상하여 항량과 항우의 군과 만나 연합세력을 구축하였다. 그 뒤 항우의 군대가 동쪽에서 진군의 주력부대와 결전을 벌이는 사이 그는 남쪽으로 관중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여 항우 보다 앞서 수도 함양을 함락시키고, 진왕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약 1개월 늦게 함양에 도착한 항우는 자영을 살해하고 천하의 주인행세를 하며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하고, B.C. 206년 유방을 한왕에 봉하는 등 18왕을 분봉(分封)하였다. 8월 제의 반란으로 항우가 서쪽지방에 관심이 없을 때 유방은 한중(漢中)에서 관중으로 들어가 관중을 평정하였다.

B.C.205년 3월 항우가 제를 정벌하자 유방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동정하였다. 4월에 유방은 제후들의 군대 56만 명을 이끌고 초를 정벌하여 한군은 팽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에 항우는 정병 3만 명을 지휘하여 공격하자 한군은 크게 패해 20만 명을 잃고 유방은 수십 기로 도망하고 말았다.

유방은 패잔병들을 모아 형양·성고를 굳게 지키며 소하(蕭何)가 공급하는 관중의 장정과 식량에 의지하여 군세를 다시 떨치며 관중을 완전 평정하고 측면으로 황하 이북을 공격하였다. 아울러 반간계로 항우와 범증(范增)을 이간시켰지만, B.C.204년 5월 초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한은 형양·성고를 상실하고 유방은 조로 도망하여 한신(韓信)·장이(張耳)의 군대를 얻어 기회를 노렸다. B.C.203년 한신이 제를 평정하고 초 원군을 크게 격파하자 초와 한은 화의하였다.

B.C.202년 10월 유방은 장량(張良) 등의 강력한 권고로 항우를 추격하고 한신과 팽월이 함께 진격하고 12월에 한군은 해하에서 항우를 포위하였다. 항우는 8백기로 포위를 뚫고 오강(烏江)에 이르러 따라오는 사람이 다 죽자 자살하였다.
B.C. 202년 유방은 황제에 오르고 수도를 장안으로 정하였다. 이후 A.D. 220년 황건적의 난으로 3국으로 분열할 때까지 약 400여 년의 통일시기를 이루면서 오늘날의 한족 및 중국의 기틀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