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나가시노(長篠) 전투

나가시노(長篠) 전투

* 시 기 : 1575. 5. 21.
* 전투지역 : 미카와(三河) 시타라가하라(設樂原)
* 관련인물 :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 다케다 가츠요리


1575년 5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연합군이 다케다 가츠요리(武田勝賴)의 군대를 일본국 미카와 시타라가하라에서 격파한 전투.

이마가와(今川)씨의 몰락 후, 스루가(駿河)에서 도오토미(遠江)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다케다 신겐(信玄)과 도오토미를 지배하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가 급박해진다. 1571년 신겐은 도쿠가와의 지배지역에 대한 침입을 개시하여 노다(野田) 등의 성을 함락시켰지만, 1573년에 사망, 아들 가츠요리가 뒤를 이었다. 한편 이에야스는 1573년 다케다편이었던 쓰쿠데(作手)성의 오쿠다이라(奧平)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동시에 나가시노성을 탈취했는데, 이것이 나가시노 전투의 직접적인 계기다. 1574년에 들어 가츠요리는 활발하게 활동을 개시, 5월에는 도쿠가와의 도오토오미 지역의 최전선기지 다카텐진성(高天神城)을 함락시켰다. 1575년 2월 이에야스는 오쿠다이라를 나가시노 성주로 삼아 가츠요리의 무력 공격에 대비했다.
나가시노는 다케다와 도쿠가와의 세력권의 경계지점에 있는 성으로, 도요카와(豊川) 상류의 평지가 끝나고 험준한 산지로 들어가는 지점에 위치한다. 다케다 측으로 보면 산지를 빠져 나와 평지로 진출하는 요충지이며, 도쿠가와로 봐서는 다케다군을 저지하고, 또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필요한 곳이다.

단독으로는 가츠요리와 대결할 힘이 없었던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출병을 요청했다. 5월 18일 시타라의 극락사(極樂寺)산에 진지를 구축한 노부나가는 다케다군의 주전법인 기마전법을 막기 위해 렌고가와(連吾川)의 서쪽에 마방책(馬防柵)을 설치, 그 뒤에 조총부대를 포진시켰다. 19~20일에 걸쳐 가츠요리는 나가시노성을 포위하고 있던 주력부대를 렌고가와의 동쪽에 있는 구릉으로 이동시켰다. 양군의 거리는 수백 미터. 21일 연합군 3만, 다케다군 1만 5천이 격돌했다. 다케다군은 기마부대로 공격했지만 마방책을 돌파하지 못했다. 연합군은 마방책 안에서 조총을 발사,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 전투로 다케다씨는 중신과 병사 1만 정도를 잃고 쇠퇴하여 82년에 멸망했다. 한편 이에야스는 간토(關東)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노부나가는 배후를 걱정하지 않고 기나이(畿內), 호쿠리쿠(北陸)에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는 조총이 조직적으로 활용되어, 이후 조총을 주체로 한 전법으로 전환하는 데 획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