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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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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요

▣시기 : 645년(보장왕 4) 6월~9월
▣전투지역 : 요동 지역
▣관련인물 : 고구려군 - 양만춘(楊萬春),
당군 - 태종(太宗)
▣ 관련유적 : 안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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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고구려 보장왕 4년(645) 요동 안시성 지역에서 고구려와 당나라 군대 사이에 벌인 전투.

643년 당나라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차후 신라를 침범하지 말도록 권유하였으나 고구려는 이에 불응하였다. 644년 11월, 당 태종은 이에 고구려국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형부상서 장량(張亮)으로 평양도행군대총관을, 태자첨사좌위솔 이세적(李世勣)으로 요동도행군대총관을 삼고 자신이 직접 원정에 나서는 제1차 고·당 전쟁을 일으켰다. 이 때, 육로군을 지휘한 이세적은 645년 4월 1일 통정진에서 요하를 건너 무순지역의 신성(新城)을 공격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남진하여 4월 26일 개모성을 함락하고 다시 당 태종의 본진과 합류하여 5월 17일에 요동성을 함락하였다. 그리고 6월 10일에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백암성을 함락하고, 다시 요동성으로 옮겨와 며칠간 휴식을 취한 다음 안시성으로 진격해 왔다.

요동반도의 주맥인 천산산맥을 등지고 요동만 어귀의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던 안시성은 당시 약 10만의 인구로 구성된 고구려의 영토였는데, 요동반도 서남단 평야 지대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작지만 견고한 요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당 태종이 직접 지휘하는 육로군이 안시성으로 진격해오자, 고구려는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을 대장으로 삼아 1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고연수와 고혜진은 안시성으로 향하던 도중 당군을 만나 크게 패하여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당 태종이 고연수를 앞세워 항복을 권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세적을 앞세워 총공격을 하였지만, 고립무원에 빠진 안시성은 성주 양만춘을 비롯한 장병과 주민들이 하나로 뭉쳐 이에 대항하였다. 당군은 포차(抛車)라는 투석기와 성벽을 파괴하는데 이용하는 충차(衝車) 등을 동원하여 공격하였으나,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무너진 성벽을 재빨리 수리하고 대항하면서 당의 공격을 모두 물리쳤다.

이에 초조해진 당 태종은 성을 함락하는 날 성안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공언하면서, 이세적으로 하여금 하루에도 6~7회씩 성의 서쪽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종으로 하여금 성의 동남쪽에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안시성보다 높은 토산을 쌓게 하여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성의 높이를 더 높게 하여 이에 대응하였고, 당군에 의해 파괴된 성벽에는 목책(木柵)을 세우며 당군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던 중에 당군이 쌓은 토산이 갑자기 무너지자, 고구려군은 그 틈을 이용하여 성문을 열고 나와 그 토산을 점령해 버렸다. 이에, 당 태종은 토성을 탈환하기 위해 3일 동안 극렬한 공격을 펼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날마다 6~7회의 교전이 계속된 안시성전투는 3개월이 지나도록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에 겨울이 되어 날씨까지 추워지고 군량마저 떨어지게 되자, 당 태종은 할 수 없이 88일간의 포위를 풀고 그 해 9월 18일 마침내 퇴각하고 말았다


당 태종은 이 때 비록 적이었지만 안시성 성주가 영웅적인 지휘력과 고구려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준 점에 감동하여 비단 100필을 보내주어 격려하였다. 그리고 안시성 성주 양만춘도 이에 보답하여 성 위에 올라가 철군을 시작하는 당 태종에게 송별의 예를 표하였다.

안시성전투는 당 태종의 고구려 침략 계획을 좌절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당 태종은 안시성 공격을 포기하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비가 약한 오골성을 점령한 뒤 곧바로 평양으로 쳐들어가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시성을 장악하지 못하고 오골성을 공격할 경우 보급로가 차단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세적의 주장을 받아들여 당 태종은 그 계획을 포기하였다. 그리하여 안시성전투는 당 태종의 작전에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입히고 고구려 침략에 대한 그의 계획을 좌절시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 태종은 이 싸움에서 화살을 맞고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