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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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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요

▣시기 : 1380년(우왕 6) 9월
▣전투지역 : 전북 남원
▣관련인물 : 고려군 - 이성계 (李成桂), 이지란(李之蘭),
왜군 - 아기발도(阿只拔都)
▣ 관련유적 : 황산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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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고려 우왕 6년(1380) 9월 남원 황산에서 고려군이 왜구를 대파한 전투.

왜구는 이 해 8월 진포전투에서 고려군에게 대패당한 뒤 금강 상류로 올라가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 내륙지역으로 진입하여 상주?구미 등지를 소각하고, 경산에서 진로를 바꾸어 남해안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함양에서 고려군의 추격을 물리치고 9월에는 남원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한 채 운봉 인월역으로 퇴각하여 주둔하고 있었다. 한편 고려군은 이성계를 주장으로 하는 토벌군을 편성하여 운봉 부근 황산 일대의 지형을 정찰하고 공격로를 선정하였다.

황산은 이 일대 교통의 요충으로서 전쟁시에는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되는 곳이며, 또한 인접한 지리산의 험준한 지형으로 말미암아 비정규전이 행해질 때 중요 거점을 제공하는 곳이다.

고려군의 선공으로 시작된 황산전투는 왜구의 완강한 저항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전진을 포기한 채 퇴각하였다. 이성계 부대는 험로에서 왜구의 정예와 조우하여 고전하였으나 이성계의 분전으로 재돌진하였다. 이에 사기를 회복한 고려군이 공격하였으나 왜구는 필사의 저항을 하여 다시 고려군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성계가 탄 말이 화살을 맞아 두 번씩이나 거꾸러졌고, 이성계도 다리에도 화살을 맞고 왜구에게 포위되기까지 하였다. 이때 왜구진영에는 아지발도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의 무술과 지휘가 탁월하여 왜구의 전투력이 빛을 발하였다. 이에 이성계는 이지란과 합세하여 아지발도를 화살로 죽이니 왜구의 대오가 크게 와해되었고, 이 틈을 타 고려군은 왜구를 급습을 전개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는 왜구의 시체가 언덕을 이루고 그 피가 냇물로 흘러들어 6, 7일간이나 물빛에 핏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기록될 정도로 고려의 대승으로 끝났으며, 여기서 살아 지리산으로 달아난 왜구의 수효는 70여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