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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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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요

▣시기 : 1592년(선조 25) 7월 8일
▣전투지역 : 경남 통영시 한산도 앞바다
▣관련인물 : 조선군 - 이순신(李舜臣),
왜군 -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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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7월 8일 조선군 함대가 한산도에서 일본군 함대를 대파한 전투.

일본 수군은 조선 침입 후 일련의 해전에서 연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증강하여 경상도 해역을 확보하려 하였다. 웅천에 있는 와키사카의 함대와 부산포에 있던 구키, 가토 함대가 합세하여 연합함대를 이루고 경상도 서쪽 해역으로 진출하여 조선 수군을 격파하려 한 것이다. 이를 탐지한 조선의 전라도 수군은 경상도 해역으로 재차 출동하여 일본 수군의 기도를 봉쇄할 계획을 세웠다. 7월 6일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우수사 이억기는 함대를 이끌고 출동하여 경상우수사 원균이 이끄는 함대와 합류하였다. 통합함대의 전력은 총 72척이었다.
조선 통합함대는 7월 7일 저녁 당포 앞바다에 진출하여 일본 수군이 견내량에 진입하여 정박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견내량에 진출한 일본 함대의 지휘관은 수군장 와키사카였으며 대소 82척으로 구성되었다.

7월 8일 아침 조선군 함대는 당포 앞바다에서 견내량으로 진출하여 일본군 함대의 위치를 확인하고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견내량은 포구가 좁고 암초가 많은 해협이라 조선군의 대형전함인 판옥선이 기동하기 곤란한 곳이었다. 이에 조선 수군은 일본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이끌어내어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판옥선을 견내량 포구쪽으로 접근시켜 일본군을 자극하였다.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일본 수군은 모두 출항하여 접근하는 조선군 함선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유인에 성공한 조선 수군은 일제히 선수를 돌려 학익진을 펼쳐 일본 함대를 포위하고 급속히 추격전을 전개하는 한편, 일본군 선단의 중앙으로 거북선을 돌격시키면서 화포사격을 가하여 여러 척의 일본 함선을 격파하고 대형을 흐트러뜨렸다. 조선 수군의 포위망에 갇힌 일본함대는 66척의 함선을 잃고 궤멸되고 말았으며, 수군 부장 마나베는 배를 버리고 부하 4백여 명과 함께 간신히 한산도에 상륙하였으나 전황이 절망적인 것을 깨닫고 할복자살하였고, 주장 와키사카는 간신히 탈출하여 김해성으로 도주하였다.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평가되며, 이 전투에서 대승한 조선 수군은 남해안 일대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고, 일본 수군의 경상도 서쪽 해안 진출 기도는 좌절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