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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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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요

▣시기 : 1592년(선조25)
10월5일~10일
▣전투지역 : 경남 진주시 진주성
▣관련인물 : 조선군 - 김시민(金時敏),
왜군 -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관련유적 : 진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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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과 의병이 진주성에서 왜군을 격파한 전투.

조선 상륙 후 왜군은 진주가 전라도로 가는 경상우도의 대읍이며, 또한 경상우도의 주력군이 진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진주성의 공격계획을 세웠다. 적장 가토는 9월 24일 군사 2만 명을 동원, 집결지 김해를 떠나 창원으로 진출하였다. 이때 창원에서 왜군을 저지하려던 경상우병사 유숭인은 중과부적으로 이를 막지 못하고 진주로 후퇴하였다. 이와 같은 적정에 접한 경상우도순찰사 김성일은 각지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이때 진주에는 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군사 3, 700여명과 곤양군수 이광악의 군사 100여명 등 관군은 3,800여명밖에 없었다. 10월 5일 적의 선봉 1,000여기가 진주 동쪽 마현의 북봉에 출현하자, 김성일은 남녀노소까지 동원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6일 적군은 3분하여 1대는 동문 밖 순천당 산 위에 진을 치고 성을 내려다보며, 1대는 개경원으로부터 동문을 지나 봉명루 앞에 진을 치고, 또 1대는 향교 뒷산에서 똑바로 순천당을 지나서 봉명루 앞에 있는 적군과 합세하였다. 이들 조총수들은 성 안을 향하여 총포를 난사하며 초막을 짓고, 밤에는 불을 피워 기세를 올렸고, 8일에는 공격용 긴 사다리를 만들어 성벽을 기어오르려 하였다. 이에 김시민은 현자포를 발사하거나 적이 성못을 메우기 위하여 수집한 솔가지와 죽제를 짚으로 묶은 화약에 불을 붙여 성 밖에 던져 불사르며 적을 공격하였다.


9일에는 성 밖에 머물러 있던 김준민과 정기룡 등이 왜군과 대결하였으며, 의병장 최경회·임계영이 구원병 2,000여명을 이끌고 와서 적을 견제하였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적은 10일 병력을 2대로 나누어 1대는 북문 밖으로 쳐들어오고 1대는 동문을 공격하여왔다. 이들은 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올라오려고 하였으며, 그 뒤에 기병 1,000여명이 조총을 난사하면서 돌진하였다. 이때 김시민은 동문 북쪽에서, 판관 성수경은 동문에서 군사를 지휘하였는데, 활·진천뢰·돌, 그리고 불에 달군 쇠붙이, 끓는 물과 짚에 불을 붙여 던지기도 하면서 사력을 다하여 적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 목사 김시민이 적의 탄환에 맞아 쓰러졌고, 이에 곤양군수 이광악이 대신 작전을 지휘하여 많은 적을 살상하고 무찔렀다. 날이 밝자 왜군은 퇴각하기 시작하였고, 진주의 군민들은 진주성을 끝내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이 싸움은 임진왜란 중 3대첩의 하나로 역사에 빛나는 전투였다. 그러나 용감하게 전투를 치르다 부상을 당한 김시민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며칠 후 순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