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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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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요

▣시기 :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전투지역 : 전남 진도군 울돌목 일대
▣관련인물 : 조선군 - 이순신(李舜臣),
일본군 - 토도(藤堂高虎), 가토(加藤嘉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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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1597년(선조 30) 9월 16일에 명량수로를 통해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일본 수군을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요격하여 패퇴시킨 전투.




1597년 7월의 칠천량전투로 조선수군을 궤멸시킨 일본 수군은 일거에 경상도와 전라도 남해안 일대를 석권하였다. 이들은 북진하는 육군과 보조를 맞추어 수륙병진작전을 계획하였는데 해로를 따라 서해안으로 북상하기 위해 경상도 하동 부근에 함선 330여척을 집결시키고 해남 반도 남단 어란포를 거쳐 남해와 서해의 분기점이 되는 명량수로를 통과하여 서해안으로 진출하려 하였다. 명량수로는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의 좁은 수로로 조수간만시 유속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물길에 익숙한 사공이 아니면 통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선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섬멸적 타격을 입은 후 다시 통제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잔존 판옥전선 12척을 모아 함대를 급편하고 일본군의 서해안 진출을 막기 위해 명량수로를 차단하려 하였다. 조수간만이 바뀔 때 명량수로의 조수가 역류하므로 남해에서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수군의 이동 속도가 저하되면 이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격파할 수 있으리라 예측한 것이다. 일본수군의 대함대가 어란도에 도착하자 조선수군은 9월 15일 벽파진의 진영을 명량수로 서쪽 전라우수영으로 이동시키고 수로 어귀에서 전투에 대비하였다.

마침내 9월 16일 아침 일본 수군의 선도 함대가 나타나자 조선군은 수로의 서쪽 출구를 차단하면서 이들을 요격하였다. 일본 함선들은 밀물을 타고 수로에 진입하였는데 수로가 좁아 함대를 충분히 전개하지 못하고 종대대형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선도 함대가 명량수로를 거의 지나 서쪽 출구에 도착할 무렵 밀물이 썰물로 바뀌면서 조수가 역류하기 시작하였다. 역류에 말린 일본 함대의 진격 속도가 늦어지고 대열이 흐트러지자 조선군 판옥전선들이 산개하여 일본함대에 돌격하였다. 조선수군은 지자포나 현자포를 사격하여 일본 군함의 선체를 파괴하고 화살을 퍼부어 적을 사살하였다. 전투대형을 갖추기 전에 조선군의 공격을 받은 일본함대는 조수의 급류에 휩쓸려 서로 충돌하는 등 혼란에 빠졌으며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조선 함선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여 선두의 선박 31척이 격침되고 말았다. 선두 제대가 궤멸되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일본군의 후속 함대는 수로 진입을 포기하고 퇴각하였으며,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서해안 북상과 수륙양면작전을 저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