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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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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요

▣시기 : 1866년(고종 3) 11월 9일
▣전투지역 : 인천 강화도 정족산성
▣관련인물 : 조선군 - 양헌수(梁憲洙),
프랑스군 - 올리비에(Olivier)
▣관련유적 : 정족산성,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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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1866년 11월 9일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격퇴한 전투.

1866년 11월 9일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격퇴한 전투. 이 해 10월 14일 천주교 탄압과 프랑스 신부 살해를 구실 삼아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은 연안의 통진부를 습격, 약탈하는 등 소규모 작전을 전개하다가, 10월 26일부터 적극 공세로 전환하여 문수산성을 공략하였다. 그리고 조선군의 강화도 상륙을 저지하기 위하여 강화 연안의 선박을 격침시키고 경기 수영(水營)을 포격하였다. 이에 천총 양헌수가 강화도로 잠입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덕포 부근에 다수의 병력을 매복하기 적합한 지역을 찾던 중 정족산성이라는 고성(古城)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정족산성은 지세가 험준하여 동쪽과 남쪽 두 길만이 통행이 가능한 천연의 요새였던 것이다.

양헌수와 중군 이용희(李容熙)는 500여명 규모의 정예부대를 편성하고, 11월 7일 강화해협 도하작전을 개시하였다. 정족산성으로 진입을 완료한 양헌수는 프랑스군의 예상 접근로인 동문과 남문에 방어의 중점을 두기로 하고 각각 병력을 배치하였다. 11월 9일 조선군의 정족산성 입성 정보를 받은 로즈 제독은 올리비에 대령에게 병력 150명을 이끌고 정족산성을 칠 것을 명령하였다. 전투 준비를 마친 프랑스군은 1개조를 정족산성 우측 동문쪽에 배치하고, 본대는 남문쪽을 향하여 정면으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당시 산성 남문과 동문 방면에는 이미 조선군의 주력 부대가 배치되어 프랑스군이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본대가 산성 전방 100m 지점에 이르자 조선군은 일제히 사격을 가하였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화승총에 비하여 발사거리가 월등히 길고 사격 속도도 빠른 최신식 개인 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군을 얕잡아본 나머지 대포는 아예 출동시키지 않았고, 지형상 불리한 위치에서 병력수마저 열세에 놓이자 전세는 프랑스군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졌다.
이에 비해 조선군은 화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형상의 이점과 양헌수의 효과적인 작전 지휘로 사기가 고양되어 시종일관 왕성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프랑스군 부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조선군의 집중 사격으로 접근마저 저지당하자, 프랑스군은 조선군이 성을 나와 공격할 경우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퇴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