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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격전지 한강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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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지 개요

삼국시대의 한강유역은 각국의 흥망성쇠와 지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한강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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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삼국시대의 격전지 한강유역


삼국시대의 한강유역은 각국의 흥망성쇠와 지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한강유역을 차지한 나라는 백제였다. 백제는 한강유역의 지리적 여건과 철기 농경문화에 의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근초고왕, 근구수왕 때에는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까지 하였다.

고구려는 미천왕 때 한반도 서북부를 장악한 이후 남진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한강유역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고, 백제는 국운을 걸고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고구려의 광개토왕 때 이르러 고구려의 우위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광개토왕은 백제의 북경 요충지인 관미성을 빼앗고 396년에는 한강 이북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한강을 건너 백제왕의 항복을 받았다. 한강 이북지역을 잃은 백제는 그 회복에 안간힘을 기울였으나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하고 끝내 중심무대였던 한강유역을 잃고 말았다.

고구려는 한강유역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 지역의 경영에 큰 힘을 기울였고, 백제는 이 지역을 되찾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신라와 동맹을 맺고 북벌을 감행하여 551년에는 고구려로부터 한강유역을 빼앗고 백제가 하류지역을 신라가 상류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라는 나제동맹을 깨고 백제가 회복한 지역마저 공략하여 한강유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 결과 신라는 서쪽으로 직접 중국과 통하는 해로를 얻게 되었고, 한강유역을 기반으로 고구려, 백제 양국을 억누르면서 삼국통일의 기반을 확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