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삼별초의 대몽항쟁

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전적지 개요

1259년 고려의 태자 전(뒤의 원종)이 부왕을 대신하여 몽고에 입조함으로써 거의 30년간 계속된…

스틸 이미지 갤러리
전투내용

삼별초의 대몽항쟁

1259년 고려의 태자 전(?:뒤의 원종)이 부왕을 대신하여 몽고에 입조함으로써 거의 30년간 계속된 고려와 몽고의 전쟁은 실질적으로 종식되었다. 그러나 고려정부의 실권을 장악한 무인들은 몽고가 요구하는 출륙환도를 거부하면서 여전히 경우에 따라서는 결전을 사양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하여 왕실은 무인들의 세력을 억제하고 출륙환도을 단행함으로써 명실공히 왕정복구를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1270년의 정변으로 무인정권이 완전히 타도되자 원종은 출륙환도를 단행하였다. 삼별초가 반항하자 원종은 강압적으로 해산을 명령하고 삼별초의 명부를 압수하였다. 이에 삼별초는 장군 배중손, 야별초 노영희를 지휘관으로 삼은 다음 승화후 온을 새 왕으로 옹립하여 1270년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강화도에 남아있는 귀족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진도로 갔다. 진도로 이동한 삼별초는 전라도 일대를 제압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정부에서는 김방경을 전라도추토사로 임명하여 토벌을 명하였으나 삼별초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11월 탐라를 공략하여 남방의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1271년 5월 김방경, 혼도, 홍다구의 연합군이 진도에 총공격을 강행하여 승화후 온과 배중손이 사망하고 진도가 함락되었다. 삼별초는 큰 타격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고 김통정을 수령으로 받들고 본거지를 제주도로 옮겨 항전을 계속하여 전라도와 경상도에 큰 피해를 주었다. 1973년 2월 김방경, 혼도, 홍다구가 지휘하는 연합군은 다시 탐라를 공격하여 삼별초를 평정하였다.

삼별초가 고려, 몽고 연합군의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3년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삼별초 그 자체가 매우 우수한 전투병력이었을 뿐 아니라, 정부와 몽고군에 대하여 투쟁하고자 하던 민중들이 삼별초의 항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