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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에서 개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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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지 개요

강화도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하구에 위치한 섬으로, 물길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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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쇄국에서 개항으로

강화도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하구에 위치한 섬으로, 물길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에 있는, 전략상으로 매우 중요한 섬이다. 따라서 강화도는 국난이 있을 때 최후의 보루로 중시되었다. 특히 19세기에는 무장 함대를 앞세운 구미 열강들의 거센 통상압력을 겪어낸 장소이다.

1863년 고종의 즉위와 더불어 정권을 장악한 대원군은 열강의 도전과 침략을 배격하는 쇄국양이책을 강행하였다. 이에 열강들은 무력으로 그들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무력 충돌은 앞에서 말한 지정학적 이유로 강화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1866년 프랑스함대는 천주교에 대한 탄압과 조선에 잠입한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한 사건을 빌미로 강화도를 침공하였다. 프랑스군은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고 한강 어귀를 봉쇄하여 조선을 굴복시키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정족산성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조선을 굴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871년 미국의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J. Rodgers) 제독은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조선을 무력으로 협박하여 통상조약을 체결할 목적으로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미군이 강화도에 접근하자 강화도의 해안포대에서 사격이 시작되어 상호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후 미군은 우세한 화력으로 해안포대를 제압하고 상륙하여, 광성진에서 맹렬히 저항하는 조선군과 전투를 벌였다. 미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조선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무력으로 조선을 굴복시키려는 의도를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이렇게 열강의 침략야욕을 잘 막아냈지만 1875년 운요호사건이 일어나 초지진과 해안포대가 일본군함의 포격에 완전히 파괴도있고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문호를 개방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