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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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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지 개요

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은 만석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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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내용

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은 만석보의 수세를 비롯하여 각종 부당한 세금을 받아 착복하는 등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이에 당시 동학접주였던 전봉준을 대표로 조병갑에게 두 차례에 걸쳐 호소를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봉준은 1984년 2월 10일 김도삼, 정익서, 최경선 등과 봉기하여 고부군아를 습격하고 불법으로 수탈되었던 수세미를 되찾아 농민에게 돌려주고 해산하였다.
정부에서는 이용태를 안핵사로 삼아 사태를 수습하게 하였는데 이용태는 이를 동학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삼아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1894년 전봉준은 김기범, 손화중, 최경선 등의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에 모여 봉기하였다. 농민군은 백산전투에서 전주에서 출동한 관군과 보부상부대를 격파하고 무장, 영광 지역을 휩쓸었다. 정부에서는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하고 정부군을 출동시켰으나 황룡촌전투에서 패배하였고 농민군은 전주성전투에서 승리하여 전주를 점령하였다.
이에 정부는 청에 원군을 요청하여 6월 8일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였고 일본도 톈진조약을 구실삼아 출병하였다. 정부와 농민군은 청, 일 양국의 무력개입과 상호충돌을 염려하여 전주화약을 맺어 강화하였고, 대부분의 농민은 해산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조선의 내정개혁을 빌미로 궁성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농민은 일본군 축출을 표방하고 다시 봉기하였다. 농민군은 서울 진공을 목표로 논산을 거쳐 공주에 접근하였는데, 이 공주일원에서 벌어진 관군과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근대화기를 갖추고 근대식 군사훈련을 받은 일본군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전봉준은 재기를 꾀하였으나 배반자의 밀고로 체포, 처형되었다. 이와같이 1년여에 걸친 동학농민전쟁은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국내적 개혁과 외세의 축출을 요구하여 봉기한 대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