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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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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초기에는 넓은 통가죽을 이용한 판갑형 피갑이나 등나무 줄기를 이용한 등갑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전국시대 이후 가죽 조각을 이어붙인 피갑주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미늘의 재료가 가죽이건 금속이건 비늘갑옷형 갑주가 유행하게 되었다.
진나라의 갑옷은 착용자의 계급과 병종에 따라 크게 네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째 장군용 갑옷은 하반신과 사타구니까지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앞뒤가 길면서도 활동에 편리하도록 허벅지 부분은 노출되어 있는 것과 어깨 부위의 방호력을 강화한 것이 있다. 둘째 보병이 착용하는 갑옷은 양어깨와 상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앞면의 복부 하단까지 미늘을 늘어뜨려 방어력을 높이려 하였다.

셋째 전차병용 갑옷인데 전차를 모는 조종수가 착용하는 갑옷은 특히 양팔과 손등까지 보호할 수 있도록 하였고 전투병의 갑옷은 어깨나 목을 보호하는 장치가 없이 가슴 부위와 등만을 보호하도록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전차에 탑승하여 직접 싸우는 전투병은 활을 계속 쏘거나 과, 극 등의 무기를 휘둘러야 하기 때문에 급소를 방어하면서도 활동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형태를 띤 것으로 보인다. 투구는 특이한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서한 때에는 철제 미늘을 이용한 철갑주가 출현하였으며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미늘 일부를 겹치게 이어 붙여 방어력을 높이면서도 활동성을 보장한 어린갑(魚鱗甲)이 사용되었다. 투구 역시 쇠미늘을 이어붙인 두무를 착용하였다. 또한 병종에 따라 어깨보호구인 피박을 부착한 것과 부착하지 않은 것이 같이 쓰였는데 공격무기를 갖지 않는 왼편 어깨에만 피박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남북조시대에는 전투병뿐 아니라 말에도 갑옷을 입힌 중장갑 기병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주조한 두무를 썼고, 명광개(明光鎧)라는 철제 어린갑을 착용하였다. 명광개는 남북조시대에 출현하여 당대에까지 사용된 갑옷으로 주조한 투구에 철제 미늘이 달린 귀가리개(護耳)를 부착한 두무를 쓰고 흉부와 배면에는 타원형의 호심(護心)이라는 철판을 덧대었으며 수연과 슬군에도 철제 미늘을 부착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기병과 보병에 두루 적용되었고 철제 미늘 뿐 아니라 가죽 미늘을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송대에는 가죽끈과 갑정을 복합적으로 이용하여 미늘을 엮은 전신용 갑옷이 개발되었다. 기본형태는 명광개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미늘의 수를 늘려 방호력을 높였고 이 때문에 송나라 군대는 보병 위주로 편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병 중심인 금나라 군대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할 수 있었다.
명대에는 두꺼운 면이나 비단 천 속에 쇠미늘 혹은 가죽 미늘을 넣고 못으로 고정한 면갑 혹은 두정갑이 출현하였다. 당나라의 비단 갑옷에서 유래한 것으로 외부에는 미늘이 노출되어 있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송나라 이후 화약병기가 전장의 주력 무기로 사용되면서 갑주는 실제 전투시 신체 방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지휘관의 위세를 과시하는 도구로 그 목적이 바뀌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