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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가야산성(伽倻山城)

가야산성(伽倻山城)

이 칭 : 용기성(龍起城)
시 대 : 가야
소재지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규 모 : 면적 2,059,939㎡
상세내용

고대사회에서 지역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산성으로 대가야의 이궁(離宮)으로 추정되는 곳.

이 산성을 처음으로 축성한 연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확실하지 않으며 삼국시대 축성으로 전해오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개축한 사실만은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야산성은 고대사회에서 이 지역 방어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옛날 가야산 지역은 대가야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가야의 도성이 있었던 고령지역에서 불과 14㎞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가야산성은 대가야의 전성기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서 대가야의 이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한다.

이 산성은 가야산의 정상인 칠불봉(七佛峰)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용기골(龍起谷)의 좌·우로 항아덤(嫦娥덤)과 재골산(才骨山)의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7,156㎞에 이르는 대규모급 성곽이지만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졌으며 일부 남아 있는 곳은 높이 1.5m 내외에 불과하다. 산성의 주변은 해발 1,000m 이상의 산봉우리들로 인해 산세가 험준하고 바위가 노출된 급경사지가 많으며 주변의 반상화강암과 편마암 계통의 자연석들로 자연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북쪽에는 독용산성(禿用山城)이 위치해 있고 동편 성곽이 위치한 능선은 동남쪽 방향으로 내려와서 낮은 봉우리들로 이어진다. 산성의 남쪽 북두산에는 외각 망루(望樓)로 추측되는 ‘북다락’이 있는데, 그 명칭으로 보아 ‘북두산’은 가야산성의 전위초소이며 주산성(主山城)과 산 아래의 요소에 연결되는 망루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임진왜란 중의 선조 27년(1594)에 여러 지역의 장병들이 이 성에 의지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고,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조정에 건의하여 승장 신열(信悅)을 시켜 성을 개축하여 백성들의 피난처로 활용하였다. 이때 신열이 이 성의 남문을 건립하였는데, 나중에 이항복(李恒福)이 문루에 ‘액부초(扼拊醮)’라는 현판을 만들어 붙였다고 하였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현재 성 안에는 10개의 샘과 6개의 계곡 및 동문·서문·남문·북문의 문지 흔적이 남아 있으며 용기암지(龍起庵址), 백운암지(白雲庵址), 일요암지(日曜庵址) 등의 절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