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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독용산성(禿用山城)

독용산성(禿用山城)

시 대 : 가야
소재지 : 경북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규 모 : 지정면적 169,493㎡
지정사항 : 경북기념물 제105호
상세내용

가야 때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포곡식 산성.

축성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전쟁의 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성으로 유명하다. 해발 955m의 독용산을 중심으로 하여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산성으로 성벽 길이는 약 7.4㎞이다. 영남지방의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큰 편이며 성 안의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전투에 대비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 돌로 깔고 그 위로 가면서 점차 작은 돌을 쌓되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는 협축법과 속을 다지고 겉을 쌓는 내탁법을 고루 사용하였다.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3m 정도이며, 가장 잘 남은 부분의 높이는 4m 정도 되는 곳도 있다. 성 안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성문터가 있고 북쪽을 제외한 세 곳에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만든 성문)의 터가 있으며 1개소의 수구가 있다. 네 방향의 큰 문자리 가운데 동문터는 가장 중요한 곳이었는데 규모도 클 뿐 아니라 다듬은 돌로써 정교하게 틀어 올린 홍예가 남아 있다. 이밖에 시설물로는 포루·망루·객사·군기고·창고 등이 있었던 건물터, 4개소의 연못터, 2개소의 우물터, 3개소의 계곡이 있다.

산세가 험한 오지로서 전쟁에 대비한 성곽으로서의 기능을 가졌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상북도 병마절도사에 예속된 병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675년(숙종 1) 순찰사 정중휘(鄭重徽)가 개축하면서 사방에 7개의 포루, 아치형 동문, 남소문 등을 새로 축조하였으며, 동서 양쪽에 군량미 창고를 두어 인근 지역의 군량미를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이 산성은 성주뿐만 아니라 김천·고령·거창·합천 지역까지를 방어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었던 군사상 중요한 성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