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금정산성(金井山城)

연관목차보기

금정산성(金井山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부산 금정구 금성동
규 모 : 지정면적 830,370,24㎡
지정사항 : 사적 제215호
상세내용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산성.

둘레 17,336m로, 해발 801m의 금정산 꼭대기에서 서남으로 계곡을 따라 축성되었으며 동서남북 사방의 성문과 수구문·암문 등의 시설이 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이 성은 1703년(숙종 29)에 감사 조태동(趙泰東)이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으로 하여금 쌓게 한 것으로 나오나 그 이전인 1667년(현종 8)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보수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보다 더 오래된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성이 낙동강의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한 성곽임이 확실하고, 또 성의 규모나 성벽의 축조양식으로 볼 때 처음 축성시기는 삼국시대까지도 올려볼 수 있어서 《증보문헌비고》의 축성기록은 초축이 아닌 수축 연대로 보인다. 이 성은 그 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성이 너무 넓다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을 쌓고, 장대와 군기고 등의 시설을 보강하였으며, 1806년에는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성을 중수하고 동문을 신축하였으며, 서·남·북문에는 문루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당시 숙종 이래의 산성 수축공사의 경위를 새긴 금정산성복설비가 지금의 동래구 장전동에 건립되었다.

이 성의 동쪽 성벽은 산꼭대기부터 500~600m의 분수령을 따라 험준한 지형과 암벽을 이용하여 요새를 이루고 있고, 서쪽 성벽은 산꼭대기에서 구포방면의 능선과 계곡을 건너 동쪽 성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벽은 이곳에 많은 화감암을 자연석 그대로 1.5~3m의 높이로 지형의 굴곡과 고저에 따라 쌓았으며, 중요한 부분에는 가공한 무사석을 사용하였다. 성문에는 문루를 세웠고 성벽의 요소요소에는 보루와 암문을 설치하였다. 설치 당시 성내에는 중군소와 군기고 등 수비에 필요한 건물과 국청사·해월사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국청사만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1972년에 동문과 남문이, 1974년에 서문과 수구문 및 망루가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