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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남한산성(南漢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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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南漢山城)

이 칭 : 주장성(晝長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일대
규 모 : 지정면적 526,476㎡
지정사항 : 사적 제57호
관련전투 : 남한산성(南漢山城)전투(1) 남한산성(南漢山城)전투(2)
상세내용

조선시대에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쪽의 방어기지. 서쪽의 청량산과 북쪽의 연주봉·동쪽의 망월봉·벌봉 등을 연결하여 쌓은 대규모의 석축산성이다.

평면형태는 동서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불규칙한 장방형이다. 성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 지역이 많으나 성의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성 안에는 45개의 연못과 80여개의 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동쪽의 엄미리 방향으로 침식협곡이 발달하여 물자의 수송에도 수월해 천연 요새로서의 지리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또한 남한산성은 팔당지역에서 한강하류에 이르는 넓은 수계가 영향권에 들어와 내륙 수운을 장악할 수 있고 한강 이북의 아차산 일대와 불암산, 인왕산까지 조망이 가능하여 유적의 서쪽에 개설된 교통로인 좌로(서울~부산간 간선도로)를 통제하는 등 남쪽으로부터 한양 도성으로 가거나 북쪽으로부터 한강 이남지역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남한산성은 672년(문무왕 12) 신라가 당의 침공에 대비하여 쌓은 주장성이라 한다. 주장성은 고려시대에 몽고의 침입시에도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쟁하였다는 기록도 보이고 있다. 현재의 남한산성에 대한 수축논의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계속되어져 왔지만 이괄의 난과 청의 군사적 위협이 전개되면서 1624년(인조 2)에 수축되어 인조 4년에 완성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에도 1638년(인조 16) 대대적인 증·개축이 이루어졌고 1685년(숙종 11)에는 봉암성을 신축하였다. 1693년에는 병자호란 때 청군의 공격때 방어상 취약점으로 들어난 동쪽지역에 한봉성을 신축하여 취약점을 보완하였다. 1753년(영조 11) 신남성 돈대가 구축되었으며, 1779년(정조 3) 남한산성에 대한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성 내에 있던 많은 사찰과 건물들이 훼손되었다.

남한산성은 크게 원성·옹성·외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원성은 본성을 말하며 신라시대 축성된 주장성과 겹치는 부분으로 생각되어지며, 인조 2년에서 4년까지 수축되었다. 둘레는 7,545m이고 4개의 성문과 11개의 암문이 있다. 축성방법은 잘 치석된 장방형 석재를 바른층 막힌줄눈쌓기를 사용하였고, 안정감을 주기 위해 지대석 위 어느 정도까지는 5~10cm 가량 퇴물림쌓기를 하고 그 윗부분은 수직에 가깝게 쌓았다. 옹성은 5개로 연주봉 옹성만 원성을 쌓을 때 축조된 것이고 나머지 4개의 옹성은 병자호란 이후 화포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옹성의 총 둘레는 1,643m이다. 옹성의 축조방법은 원성과 대체로 같으나 원성에 비해 크기가 커진 정방형의 성돌을 사용한 차이가 확인되어 축조시기와 축조방법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구간이다. 외성은 동쪽에 봉암성과 한봉성이, 서쪽에는 신남성이 각각 자리한다. 봉암성에는 4개, 한봉성에는 1개의 암문이 설치되었으며 신남성에는 동·서에 논대가 1개씩 설치되어 있다. 봉암성은 새로 쌓은 성이라 하여 신성(新城) 또는 동쪽에 있다 하여 동성(東城)이라 불린다. 성벽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성돌을 외면만 판판하게 치석하여 끼워 맞추듯이 쌓았다. 한봉성은 원성 축조시 축성하지 않은 구간으로 병자호란 이후 봉암성에서 한봉을 이어 축성하였다. 성벽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성돌을 장방형 또는 정방형으로 치석하여 축성하였다. 신남성은 ‘남격대’ 또는 원성과 마주본다고 하여 ‘대봉’이라고도 불리나 현재 성벽은 확인되지 않고 2개의 돈대가 남아 있다. 돈대는 동서에 각각 1개씩 있으나 동돈대는 송신탑 건립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 서돈대는 동돈대에서 서쪽으로 235m 거리에 위치하며 동돈대보다 시계가 좋다. 모두 1개의 홍예문을 갖고 있다. 이 외에 남한산성에는 5개의 치와 7개의 포루, 1개의 수구문, 28개의 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어질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남한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피난성으로서의 성격이 대두되었으나 내륙수운과 육상교통을 통제하기 위해 중요한 거점성으로서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역사적으로 한 번도 함락되지않은 대외항전의 전적지로서, 최고 수준에 달한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호국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