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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반월산성(半月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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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산성(半月山城)

이 칭 : 청산성(靑山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경기 포천군 군내면 구읍리 반월산
규 모 : 둘레 1,083m, 면적 37,205㎡
지정사항 : 사적 제403호
관련인물 : 궁예(弓裔)
상세내용

포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기 북동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삼국시대 산성.

평면형태가 마치 반달과 비슷하다고 해서 반월성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반월형은 주방어 방향이 둥글고 계곡부의 성벽이 안으로 깊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방어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성은 사방의 전망이 좋은 교통의 요지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주변 지역을 공제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주변의 구읍천, 포천천, 하성천이 자연적인 해자의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남·서·북쪽에 대해서 자연방위선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규모는 동서길이 490m, 남북길이 150m, 둘레 1,083m이고, 성내 시설물로는 문지 2개소, 치성 4개소, 음료유구와 장대지 각 2개소 등이 있다. 축조재료는 주변의 풍부한 화강암을 이용하였으며 협축법과 편축법을 지형조건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지형에는 암반을 굴착하여 수직에 가깝게 단을 조성한 후 그 위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다만 경사가 심한 계곡부에는 기단보축을 사용하였다. 성벽은 주로 장방형쌓기를 하였는데, 지형여건을 감안하여 5~15단 정도는 수평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높이의 성벽을 축조한 후 그 위로 잘 치석된 장방형 석재와 자름면을 그대로 이용한 할석재를 혼용하였다.


이 산성의 변천을 살펴보면, 백제는 늦어도 4세기 후반경에 산성을 축조하였고 5세기 중반까지는 분명히 백제의 영역으로 한강유역의 도성을 방어하는데 전방위성(前防衛城)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후 1세기 동안은 고구려의 영역으로 이 성에 마홀군(馬忽郡)을 설치하였으며 동시에 비성군(臂城郡)으로도 불려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6세기 중반에 이르러 포천지역에는 신라의 세력이 진출하게 되었다. 신라는 진흥왕대에 한강유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후 황초령과 마운령일대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으나, 진평왕 이후 통일 전까지 임진강과 한탄강일대에서 고구려와 대치하였다. 이때 반월산성은 신라 최북단의 전선으로 철원이나 연천방면에서 남하하는 고구려의 세력에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삼국통일 후에는 북방을 방어하는 전략기지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후삼국시대가 되면서 반월산성의 전략적 가치는 되살아나게 되는데 이는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두면서 수도방위의 목적으로 남진의 요충지인 반월산성을 수축하여 군대를 주둔시켰다. 궁예 관련 전설이 산성 주변에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이 도성이 되면서 수도방위의 전초기지로서 중요시되었을 것이나 별다른 방어시설을 구축하지는 않고 부분적인 수축만 진행시켰다. 다시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은 광해군 때로 북방에서 새로 흥기한 후금(後金)의 침입을 경계하여 포천을 영평에 합하여 도호부를 설치하였고 산성에 군사를 주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