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아차산성(阿且山城)

연관목차보기

아차산성(阿且山城)

이 칭 : 아단성(阿旦城), 아차성(峨嵯城), 장한성(長漢城), 광장성(廣壯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서울 광진구 광장동
규 모 : 면적 63,810㎡
지정사항 : 사적 제234호
관련인물 : 온달(溫達)
상세내용

서울 아차산의 남단에 위치한 포곡식 석축산성.

문헌기록은 《광개토대왕비문》 영락 6년조에 광개토대왕이 공취한 58성의 성 이름에서 아단성(阿旦城)으로 처음 나타나며,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로왕 21년조에 “고구려 장수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내려와 북성을 7일만에 빼앗고 남성을 공격하여 성문에 불을 놓자 왕이 달아났다. 이에 고구려 장군 걸루, 만년 등이 개로왕을 잡아 얼굴에 세 번 침을 뱉고 그 죄를 헤아린 다음 아단성 아래로 압송하여 죽였다.”고 전하고 있어 아차산성이 처음에는 아단성으로 불리운 것을 알 수 있다. 아단성이 아차성으로 명칭이 변한이유는 아단의 ‘旦’이 조선의 시조 이성계의 이름 ‘旦’과 같아 그것을 피하기 위해 후세에 일부러 글자모양이 비슷한 ‘且’로 고쳐 써서 아차성이 되었다고 한다.

산성은 아차산의 남쪽능선에 위치한 해발 205.5m의 봉우리의 장대지에서 능선을 따라 서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동남쪽으로 꺾기고 해발 125m 지점에서 등고선을 따라 계곡을 가로질러 장대지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성벽과 만나게 된다.

성벽은 능선에 축조된 동벽과 서벽은 내외협축으로 축조하였고 북벽과 남벽은 경사면을 이용한 내탁법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성돌은 화강암을 30~40cm 크기로 치석하여 사용하였다. 북벽은 자연 경사면에 내탁법을 사용하여 높이 8~10m에 70~80°의 경사를 유지하도록 축조하였다. 부분적으로 여장 시설로 보이는 폭 1m, 높이 1~2m의 석축이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높이 8~10m에 이르고 70~80°의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자연적으로 노출된 부분이 있어 축조방법이 확인된다.

성벽의 축조방법은 엇갈려 쌓기방법을 자연 경사면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경사를 이루도록 하였다. 남벽은 성 전체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계곡을 가로 지르고 있다. 한강과 마주하는 지역으로 방어상의 취약점을 보강하기 위하여 동벽과 서벽을 남벽보다 길게 나오게 하여 옹성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문지가 1개소 있으며 주된 출입로로 추정된다. 서벽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지역으로 능선 위에 높이 10m 가량의 높은 성벽을 내외협축의 방법으로 쌓았다. 내부 시설물로는 문지와 장대지·건물지·우물지 등이 있다. 문지는 남문지 1개, 서문지 1개, 동문지 2개가 확인되었다. 장대지는 산성의 북쪽 정상부에 위치하며 남벽을 제외한 부분은 성벽과 붙어있다. 장대지는 평면 장타원형의 형태로 토사의 유실을 막기 위해 석축을 쌓았다. 장대지에서는 서울시내 전역과 한강변 일대의 풍납토성·몽촌토성·이성산성·남한산성·북한산성·미사동유적 등이 잘 조망된다. 또한 성벽이 꺾기는 지점마다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어 소규모의 장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음료유구는 성의 중앙부의 계곡을 따라 석재로 조성된 수로와 저수시설, 우물 등이 확인된다. 저수시설과 우물은 후대에 보수된 흔적이 있으나 수로는 보수의 흔적이 없다.

이 산성의 입지조건과 주변지역에 위치한 삼국시대 유적을 볼 때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쟁패과정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성으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溫達)이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는 역사적 전설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