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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익산토성(益山土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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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토성(益山土城)

이 칭 : 오금산성(五金山城), 보덕성(報德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전북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규 모 : 지정면적 193,244㎡
지정사항 : 사적 제92호
상세내용

삼국시대에 축조된 포곡식 산성.

높이 125m의 오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축조된 성으로 현재 둘레 690m의 성터와 남문터·수구문터·건물터 등의 시설이 있다. 축성시기는 출토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인 6세기 말 내지 7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보덕성이라는 이칭은 보덕국왕 안승(安勝)이 670년 6월 금마저(지금의 익산)에 자리잡은 이래 684년 11월까지 보덕국의 소재지였다는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의 기초 부분은 전면에 높이 45㎝, 너비 60㎝, 두께 50~60㎝의 장방형 석재를 사용하여 벽을 쌓았다. 남쪽 문은 이 성의 정문인데 성문터 너비가 4.8m, 길이 4.4m이며, 바닥에는 돌을 깔았던 흔적이 보이고 문 출입구 위에는 문루가 설치되었던 듯하다.

이 당시 발굴된 유물은 거의가 토기편·와편류인데 백제 말기,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것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로 볼 때 이 성은 백제 때 축조하여 오랫동안 사용하여오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성 근처에서 다뉴세문경과 세형동검 등의 청동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이 성의 중요성을 더하여주고 있다. 발굴 결과 이 성은 토성이 아니라 석성이라는 것과 토속신앙과 밀접하게 관계되었다는 점, 그리고 안승이 쌓은 성이 아니라 서동(薯童)과 관계된 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