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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죽주산성(竹州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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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주산성(竹州山城)

이 칭 : 고죽주성(古竹州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경기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규 모 : 둘레 3,188m
지정사항 : 경기기념물 제69호
관련전투 : 죽주(竹州)전투
관련인물 : 송문주(宋文?) 변이중(邊以中)
상세내용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

성은 복합식 산성으로 내성·중성·외성의 3중 구조를 하고 있다. 성내 정상부(해발 250m)를 중심으로 한 테뫼식의 내성과 내성을 둘러싼 중성, 그리고 동북쪽으로 형성된 골짜기를 포함하여 축조된 포곡식의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성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류와 삼국시대 토기·기와류가, 중성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토기·자기·기와류가, 외성에서는 이들 유물이 혼재되며 나타나고 있어, 시대에 따라 공간구조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중성은 정상부와 동쪽으로 단을 이루며 내려가는 대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하는 계곡을 감싼 성벽의 둘레는 1,688m 정도이다. 이같은 체성 외에 서벽에 잇대어서 북쪽으로 뻗은 외성이 있는데 그 길이는 1,500m 가량이고, 안쪽의 내성 길이는 270m 정도이다. 성벽 높이는 3m 내외이다.

시설물은 문지·치성·각루·포대 등이 있다. 문지는 중성에 3개소, 외성에 2개소를 설치하였다. 대부분의 문지는 성벽의 중간부에 두었으나 남문은 중앙부가 완만한 경사의 능선임을 감안하여 서벽 가까이에 시설하였고, 서문은 본성을 약 20m 정도 벗어난 지점의 외성에 설치하였다. 이는 정상부 바로 아래를 지나는데다가 주변 지세가 험한 서벽의 특성상 성문의 효용가치가 적고 방어에도 불리함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벽의 방향이 꺾이는 곳에는 각루를 두었으며, 군데군데 치와 포대를 설치하였다. 성 안에는 비교적 넓은 대지가 많은 편이며, 장대지를 비롯하여 각종 건물지도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몇 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통일신라말인 진성여왕 때에는 기훤(箕萱)이 이곳에서 군사를 모아 크게 세력을 떨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죽주산성이 기록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고려사》등의 기록에 의하면, 1236년(고종 23) 몽고의 침입이 있자 이곳의 방호별감 송문주(宋文冑)는 백성들을 이끌고 산성에 들어가 농성하였다. 송문주는 이미 지난날 몽고군의 공격방법을 본 적이 있으므로, 갖가지 공격에 대해 효과적인 방어전을 펼치며 적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으며, 이에 몽고군은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포위한 지 15일만에 물러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이곳 죽주산성에서 변이중(邊以中)·황진(黃進) 장군의 부대가 왜군과 싸워 크게 승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