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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행주산성(幸州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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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幸州山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규 모 : 지정면적 361,209㎡
지정사항 : 사적 제56호
관련전투 : 행주산성(幸州山城)전투
관련인물 : 권율(權慄)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의 무대가 되었던 산성.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토축과 석축이 혼합되어 있다. 한강 가에 돌출된 해발 125m의 산봉우리를 택하여 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과 북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이중구조를 하고 있다. 정확한 축성 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나, 강안의 험한 절벽을 이용하고 동·북·서로 전개된 넓은 평야를 포용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형식과 부합된다. 이곳이 백제의 초기 영역에 속하여 서해안으로의 수운과 관계된 중요한 거점으로 추측되며, 특히 나당전쟁 때까지 남북교통의 요충에 해당하여 고구려와 신라와의 공방전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성벽은 산 정상부의 동남쪽 사면과 외성부의 동북쪽 성벽뿐이며, 서쪽 방면은 내성은 확인되나 외성 성벽은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어렵다.

이 산성은 1593년(선조 26) 2월 12일 당시 전라도관찰사로 있던 권율(權慄)이 이곳에 군사를 집결시키고 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의 공격을 막아내 승리를 거둔 전적지로서 유명하다. 이 전투에서는 피아간에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희생자가 많았고 마지막에는 화살이 다하여 돌을 던지며 백병전을 벌였는데, 이때 부녀자들까지도 힘을 합하여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 적을 공격하게 하여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이 전투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으로서, 현재 성내에는 1602년에 세운 행주대첩비와 1963년에 다시 세운 대첩비가 남아 있다. 1970년에 대대적인 정화작업을 벌여 권율을 모시는 충장사를 세우고 정자와 문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