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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화왕산성(火旺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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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성(火旺山城)

시 대 : 삼국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규 모 : 지정면적 226,790㎡
지정사항 : 사적 제64호
관련인물 : 곽재우(郭再祐)
상세내용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정식 석축 산성.

둘레 약 2,700m로, 현재 동문·서문·연못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해발 757m의 화왕산의 험준한 바위산을 등지고 남봉과의 사이에 넓은 안부를 둘러싼 웅장한 산성이다. 성벽은 앞뒷면을 다같이 모난 자연석과 가공석으로 단면 사다리꼴로 쌓았으며 동·서 두 곳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서문은 거의 허물어졌으나 동문은 너비 1m, 높이 1.5m 가량의 거석을 정연하게 쌓은 성문이 남아 있으며, 그 아래편에는 창녕조씨 시조에 관한 전설이 전하는 작은 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의 초축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화왕산 석성은 둘레가 1,217보이며, 성 안에 샘 9개, 못 3개와 군창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에서 이때에 수축한 성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미 허물어진 성들을 수축한 것이므로 원래의 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 분명하나 고려나 신라가 이곳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이 산성이 삼국시대 빛벌가야(非火伽倻)의 고성이라는 이 지방의 전설은 믿을 만하다 하겠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로 서부 경남지방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에 대비하여 빛벌가야가 여기에 견고한 산성을 쌓았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성은 그 후 성종 때 폐성되었으나 군사상의 요충지이므로 임진왜란 때인 1596년(선조 29)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수축하고, 이듬해에는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이 성을 지키며 내성을 쌓고 이곳을 본거지로 하여 영남일대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성은 이때 곽재우에 의하여 크게 수축되었고 임진왜란 후에도 한두 차례 중수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