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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검차(劍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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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차(劍車)

사용시기 : 고려
상세내용

수레의 전면에 설치된 방패에 검을 꽂아 만든 무기.

차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작 운용되었다. 검차는 고려 현종 1년(1010)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개발되어 큰 효과를 보았다. 강조(康兆)가 이끄는 고려군은 거란군의 공격로상에 검차를 배치하여 기병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거란군은 하루에 10여 차례씩 공격을 퍼부었지만 다수의 사상자만 내면서 패배하게 되었다. 그 구조와 형태는 《풍천유향》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길이가 2.7m(9척) 되는 두 개의 나무로 수레 채를 만들고, 앞뒤에는 나무를 가로대고 축을 받게 하여 외줄의 두 바퀴를 달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았다. 그리고 두 수레 채 중간 부분에 각각 바퀴 하나씩을 달아 속에 넣어 두었는데, 수레를 끌고 갈 때에는 두 개의 바퀴만을 사용하고, 수레를 멈추고 있을 때에는 속에 넣어두었던 두 바퀴를 내려 네 바퀴를 이용하여 고정시켰다. 수레 맨 앞에는 날카로운 칼날을 이중으로 꽂아 놓았고, 짐승의 얼굴 모양을 한 세 겹의 방패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검차 1대에는 25명의 병력을 배치하였다. 포수 2명과 대장 2명은 대포수를 겸하여 대포를 장진하고 발사하는 것을 전적으로 책임졌다. 검차의 양 옆에는 병사를 각각 10명씩 배치하여 한결같이 원앙진법에 따라 검차의 수레를 끼고 싸우게 하였다.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무기는 1번과 2번은 방패와 요도, 3번과 4번은 창과 활, 5·6·7·8번은 조총과 요도, 9번과 10번에게는 화전과 당파를 주었으며, 검차의 총책임자인 차정 1명이 수레 뒤에서 좌우로 독전하였다. 검차는 평지에서 4명의 병력이 밀고 갈 수 있으며, 할지라도 6명이면 가능했다. 검차의 전면에는 짐승의 얼굴을 한 모양의 방패를 세 겹으로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막도록 하였으며, 외면에는 귀면문을 그려 넣어 적의 말을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옆에서 대포를 발사하여 연기와 화염이 나오도록 하며, 따로 구멍을 뚫어 적의 상황을 탐지하게 하였다. 또한, 검차 앞과 위에는 길고 아래는 짧은 칼을 꽂아 적의 병력과 군마를 막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