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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장창(長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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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長槍)

사용시기 : 삼국
구분 :
상세내용

창자루의 길이가 1장 5척인 창.

1597년(선조 30) 조선에 왔던 타치바나 야스히로(橘康廣)가 “너희들 창자루가 너무 짧구나”라고 지적한 대로, 조선 초기에는 길었던 창이 상당히 짧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을 통해서 조선군의 창 제도는 조선 초기의 것보다는 길고 중국식과 같은 1척 5촌이 되었다. 중국식은 창날의 형태가 창날쪽으로 갈수록 점차 가늘게 하였다. 조선식은 창날에 움푹 파인 혈조(血槽), 창날 아래 부분에 작은 석반을 대고 창자루 위에는 희고, 검고, 붉은 세 층을 서로 사이를 두고 칠하였다. 창자루의 나무 재료는 일반적으로 딱딱한 나무의 동체를 제일로 삼았다. 다음으로는 나무를 쪼개서 댄 합목을 사용했다. 연하고 쉽게 굽어지는 가문비나무나 대나무는 피하였다.

기예로서의 장창법은 전보와 후보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기효신서》에 나오는 장창법 24세는 한교가 명 진영에서 전해져오는 12세에 새로운 자세를 창조하여 개발한 것이다. 즉 조선인의 체격과 정서에 맞도록 장창법을 체계화시킨 것으로, 명의 원병이 평양성을 탈환한 것은 바로 장창 돌격법에 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