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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무기

사용시기 : 근대
상세내용

한국 근대에 있어 무기는 크게 진보되지 못한 분야였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일본과 청의 침입을 받은 뒤 조선 정부에서는 무비강화와 신무기제조에 국가적 차원에서 진력하였다. 전란을 통하여 중국과 일본의 화기가 유입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모방한 무기의 제작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조총을 비롯하여 불랑기포, 호준포, 삼안총, 홍이포 등과 같은 화약무기를 제조하였으며, 화약의 제조에도 진력한 바 있었다.

이처럼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무기와 화약의 제조 및 기술 개발에 상당한 노력이 경주되었으나, 획기적인 발달은 이루지 못하였다. 그것은 같은 시기에 서양에 있어 무기발달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비교되는 일이었고, 나아가 근대에 들어서 무기 발달이 정체되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 청국의 한역서나 물품을 통한 서양과학의 유입이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무기부분에 있어서는 별다를 수용이 없었다.

예컨대 여러 차례에 걸쳐 서양의 소화기류를 접한 바 있던 조선에서는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무기를 제작하지는 못하고 계속 재래식 화승총의 사용에 머무르고 말았고, 다만 숙종 연간에 조총보다 성능이 뛰어나게 개발된 천보총이 영조 때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1860년대에 고종이 즉위하면서 무기발달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이 시기에 조선이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열강의 직접적인 침략을 받게 되었던 사실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와중에서 대원군은 신무기 개발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서양무기를 모방하는 등 부분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1876년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조선 정부의 관심은 신무기 개발보다 발전된 형태인 서양무기의 제조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정부에서는 무기 제조보다도 무기 구입의 방법으로 무비강화를 도모하였다. 무기구입은 외형적으로 무비강화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나 거기에 수반되어야 할 탄약의 구입이나 수리, 교육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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