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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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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이칭 : 갑주
사용시기 : 삼국
구분 : 갑옷
상세내용

적의 공격무기인 화살이나 창·검·총알 등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착용한 옷.

몸통을 방호하는 갑옷과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가 기본이며, 여기에 목가리개, 팔뚝가리개, 어깨가리개 등 여러 부속구가 있다. 그리고 문명의 발달에 따라 짐승가죽이나 뼈·나무·직물·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하였다.

갑옷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판갑옷과 비늘갑옷으로 나누어진다. 판갑옷은 몸에 맞도록 몇 개의 철판을 세모 또는 네모 모양으로 오린 뒤 이것들을 쇠못 또는 가죽 끈으로 연결하여 만든 것이다. 1972년에 출토된 함양 상백리 판갑은 삼각판을 7단으로 연결하여 제작하였다. 1964〜1974년까지 출토된 부산 복천동 판갑은 세로로 긴 철판(종장철판)을 두정으로 연결하는 기법을 보이고 있다. 1978년에 출토된 고령의 지산동 판갑은 장방형의 철판을 가로로 연결하여 제작하였다. 판갑옷은 큰 철판으로 만들어져 단단하여 방호에는 우수하였지만 활동하기에는 무겁고 불편했다.

비늘갑옷은 판갑옷에 비하여 활동하기가 편해 주로 말을 타는 군인들이 입었다. 고구려 쌍영총과 삼실총 서벽 및 북벽에는 갑옷을 입은 무사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기병들로서 미늘갑을 착용한 것이 특징이다. 싸울 때에 말을 보호하기 위하여 말에도 비늘갑옷을 입히고 말머리에도 투구를 씌웠다. 고구려의 갑옷은 중국과 북방지역 갑옷의 영향을 받아 비늘갑옷이 기본적인 형태이다. 그리고 목가리개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중국과 북방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고구려만의 특징이다. 신라· 백제·가야에서는 판갑옷과 비늘갑옷이 제작·사용되었다.

갑옷은 상의와 하의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의의 형태는 깃이 턱에 미치는 세운 깃으로 되어 있는 것, 소매가 손목까지 오거나 팔꿈치까지 있는 것, 소매가 달리지 않은 조끼 형태의 것 등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있다. 전체의 길이는 엉덩이를 가리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허리에는 띠를 매고 있다. 하의는 바지로 되어 있는데, 통이 넓고 길이는 복사뼈까지 내려온 형태를 하고 있다.

갑옷은 4세기에서 5세기를 넘어가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가야지역에서 4세기 때 각 지역의 중심 고분군 또는 주변 고분군 내의 대형 무덤에만 부장되던 것이 5세기대가 되면 주변 고분군 혹은 소형 고분군에서도 갑옷이 부장되었음이 발굴을 통해 확인된다. 또 4세기 때에 주류를 이루었던 종장판갑옷이 쇠퇴하며 5세기 중엽에는 제작이 완전히 중단되는 대신 비늘갑옷이 급증한다. 비늘갑옷은 판갑옷에 비해 몸을 움직이는 데 편리하여 기마전술에 더 적합하였다. 5세기 중엽에는 가야 전역에 갑옷이 확산되었다.

복천동 10·11호분에서는 최상층 무덤의 주곽에 갑옷이 일괄로 부장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 5세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삼각판갑옷, 횡장판갑옷 등이 등장하는 변화도 일어났다. 신라의 경우 5세기가 되면 황남동 3·4곽 등 경주 중심부에서 갑옷이 출토된다. 그러나 그 수량은 급격히 줄어든다. 대형 무덤에는 금공품화된 갑옷이 부장되기 시작한다.

가야의 갑옷은 6세기 중엽 이후부터 부장 풍습이 소멸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매장관념 혹은 매장습속의 변화에 기인한다. 방어구로서의 실용성은 여전히 강조되었지만 권력의 상징물로서의 그 의미는 축소되었던 것이다.

신라는 백제·고구려·가야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 때문에 갑옷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지만, 무덤에 부장되는 수량은 점차 줄어들었다. 대형의 적석목곽묘에 철제갑옷이 부장되지 않는 대신 금동제로 된 소찰이나 복발 등이 부장되었다. 이는 신라에서 철제갑옷이 사용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야와는 달리 권력의 상징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갑옷의 발달은 전장에서 방호력을 유지하면서도 가볍게 제작하여 민첩하게 활동할 수 있게 것이 열쇠였다. 고려 때에 새로운 형태의 갑옷은 쇠미늘과 쇠고리를 연결하여 만든 경번갑옷이 있다. 고려 말부터는 화약의 발명으로 화약병기가 개발되면서 갑옷은 그 실효성이 떨어졌다. 화약병기가 전쟁에서 주요한 무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검과 창, 그리고 화살의 이용은 계속되었다는 점에서 갑옷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갑옷을 가볍게 하여 전쟁터에서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갔다. 《대전회통》에는 갑옷을 만드는 장인인 갑장의 배치현황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갑옷의 제작은 조선시대에도 그 중요성이 컸다고 생각된다.

고려·조선시대의 갑옷은 포형 갑옷이 많다. 두루마기 모양으로 된 포형 갑옷은 상하의가 하나로 되어 있고 가운데가 열려 있다. 이러한 포형 갑옷에는 두석린갑옷·두정갑옷·피갑옷·면갑옷·흉갑 등이 있다. 고려시대 정지(鄭地) 장군이 입었던 경번갑옷도 포형갑옷의 하나이다. 가죽과 쇠사슬을 연결하여 만든 경번갑옷은 보물 제33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러한 형태의 갑옷은 중국·몽골·일본 등에서도 사용되었다.